혹시 스튜디오에서 증명사진을 찍어본 적이 있는가? 혹시 증명사진을 찍을 당시, 카메라의 모습이 기억나는가? 나는 기억이 난다.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는 듯한 카메라와, 눈싸움 하듯 바라보며 카메라 외형을 살피던 나. 무언가 시선을 보내면, 시선을 받는 대상은 그 시선을 온전히 외면하기 어렵다. 이 영화는 시선과 시선을 마주하는 자에 대한 영화이다. 그 시선은 때로 불보다 강렬하다.
타닥타닥.
불이 나무를 삼키는 소리. 침묵도 왁자지껄함도 아닌 그 사이 어드메를 나타내는 소리. 타닥거리는 소리는 영화 내내 이어지며 내게 속삭여왔다. 말이 이어지는 순간은 아니지만, 저 사람들 사이에는 뭔가 타닥거리고 있다고, 마냥 고요한 침묵과 같이 아무일도 없는 사이가 아니라고.
영화는 치맛단에 불이 붙은채 뒤돌아 서있는 여성의 그림에 주목하며 그 그림을 그린 사람, 엘로이즈를 비추면서 이야기를 시작한다. 결혼을 위한 초상화를 그려야하는 여성 화가 마리안느. 초상화가 완성되면 이뤄져버릴 결혼을 거부하며 그려지길 거부하는 귀족여성 엘로이즈. 산책친구로 위장한 마리안느는 몰래 그림을 그리기 위해 엘로이즈를 관찰한다.
그림과 사진은 피사체를 사랑하는만큼 아름답게 담아낼 수 있는 분야라 했던가. 그저 그려내거나 찍어낼 수는 있지만 애정 없이는 좋은 작품이 나오질 않는다지. 하지만 나는 그런 생각도 한다. 집요하게 좋은 순간을 잡아내려 관찰하다보면, 찰나의 순간만이라도 피사체를 사랑하게 되는게 작가의 운명일지도 모르겠다고. 작품 생성에 더욱 기나긴 시간이 소요되는 그림은 더더욱 그럴지도 모르겠다고.
관찰은 관찰대상을 더 이해할 수 있게 만든다. 관찰하지 않으면 그것은 보편적인 특성을 가진 하나의 대상에 불과해보인다. 저 물고기도, 이 물고기도. 관찰하기 전에는 그저 반짝거리는, 물에서 사는 한 생명체. 하지만 관찰할수록 그것과 다른 것을 나누는 기준을 인지하게 된다. 아, 이건 이래서 다르고, 저래서 다르구나. 동시에 다양한 대상을 관찰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으니 대체로 관찰이란 관찰대상과 관찰대상 외의 것을 구분하는 형태로 이루어진다.
사랑은 그 사람을 다른 사람과 구분되는 특별한 존재로 인식하는 것으로부터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특별한 사람에게 끌리기도하지만 ‘사랑’이란 흔하디 흔한 사람 중 그 사람을 특별히 애정하게 되는 행위에 더 가까우니. 그 인간이 다른 인간과 어떤 점에서 다른지, 어떤 점에서 특별한지, 그것이 내게 어떤 긍정적인 감정을 주는지 인식하는 순간이 사랑의 설레임의 시작일 것이다. 누군가와 사랑에 빠진 순간은 언제인가요, 라는 질문에 대한 답으로 ‘눈동자가 바다 같이 깊어서’, ‘목소리가 아름다워서요’, ‘가진 생각이 평소 내 생각과 비슷해서요’가 있을텐데 이는 모두 그 대상이 타 대상과 구분되는 특별함을 가졌다고 인지한 순간들이 아닌가.
생각해보면, 관찰한다는 것은 사실 사랑에 빠지는 일일지도 모른다. 관찰을 통해 사랑에 빠지는 과정 / 사랑에 빠진 후 온갖 것을 뜯어다보는 것의 차이란, 단지 그 시선의 시작과 흐름이
그 사람의 눈을 바라보다… 다른 것을 더 바라보기 위해 시선을 돌려 보는 영역을 넓혀가는 과정인지,
그 사람의 모든 면모를 바라보다… 마침내 그 사람의 눈을 보게 되는 것인지,
정도의 차이 아닐까.
또한, 사랑에 빠지지 않으면 관찰이란 지독하게 지겨운 일이기도 하다. 사랑하지 않으면 아무리 시간을 들여 계속 보아도 더 이상 찾아낼 수 있는 특성이 없거든. 관찰할수록 더 많은 것이 보인다는건, 실은 내가 그 대상과 사랑에 빠지고 있다는 뜻일 것이다.
관찰을 넘어, 실물을 눈앞에 두지 않은 상태에서도 그릴 수 있을 경지로 스스로를 끌어올려야했던 화가가 떠오른 형상을 캔버스에 옮기며 사랑에 빠지는 것은 당연했을지도 모른다. 보고있지 않아도 누군가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린다면 그건 대체로 강렬한 감정 때문이지.
더 나아가, 집요하게 관찰하는 시선을 받아내는 피사체는 본인의 시선을 보낼 다른 특별한 대상이 없다면 집요한 시선을 쏘아대는 대상을 바라보게 된다. 내 시선을 보낼 무언가가 있는 와중에 무언가 내게 시선을 쏘아대는 것과, 멀뚱한 와중에 무언가 내게 시선을 쏘아내는 상황은 다르다. 그 결과로 내 시선은 어디로 가게되는가가 달라지니까.
넓다란 바다로부터 둘러쌓인 성에서 산책을 금지당하고, 즐길 음악이란 먼지 쌓인 하프시코드가 내는 것이 전부인 텅 빈 공간. 본인을 관찰하는 시선을 마주하는 자의 눈이, 외면해도 느껴지는 시선을 계속 보내는 대상으로. 다른 주목할 것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을 관찰하는 자에게 시선이 향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일 것이다.
이후, 마침내, 서로를 치열하고 뜨겁게 바라보던 눈이 마주쳤다. 이때부터는 사랑 이야기였다. 관찰이 관측 가능한 사랑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관찰이 곧 사랑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영화를 다시 살펴보면, 두 인물이 응시하는 방법, 떨리는 눈빛, 피하지 않는 눈맞춤과 같은 시선의 교환의 의미를 더 풍부하게 음미할 수 있다.
(약한 스포일러)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하지만 관측 가능한 그 사랑은 지속될 수 없었다. 세상이 허락하는 형태의 사랑도 아니거니와, 귀족 여성으로서 다른 귀족 집안 남성과 결혼을 해야한다는 당시 세상의 문법을 거부할 수 없었다. 도망치듯 출구로 향하는 마리안느의 모습, 뒤돌아 마주한 모습을 마지막으로 이별해버린 둘. 이별의 장면은 영화에서 몇 차례 언급되는 오르페우스 신화와 닮아있다. 연인을 되살리기 위해 망자의 세계에서 돌아오는 길, 뒤돌아보며 그 순간 연인을 다시 영영 떠나보내는 모습. 그들은 같은 세상에서 사랑한 사람과 서로를 인식한 채로 살아갈 기회를 다시는 얻을 수 없었다.
그럼에도 마리안느는 그녀를 떠오르게하는 음악, 비발디 사계-여름의 형태로 엘로이즈의 곁에 계속 남는다. 시각의 힘은 강하지만, 기억력에 끼치는 영향으로는 청각의 힘이 더 강하다 한다. 얼굴은 잊어도 노래는 잊기 힘들다.
마리안느와 오르페우스 사이에는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할 줄 알며, 연인에게 그 음악을 알려줄 줄 안다는 추가적인 공통점이 있다. 이 장면을 통해, 오르페우스와 에우레디케 또한 떨어져있지만 에우레디케는 오르페우스가 언급한 음악을 들으며 그를 사랑했던 추억을 떠올렸으리라 생각이 이어졌다. 영화가 신화의 뒷이야기를 그리는 형태로.
얼굴은 잊기 쉽지만 음악은 잊기 어렵다. 그렇게 둘은 사랑했던 이의 곁에서 평생 사랑하며 살아갈 수는 없었으나, 이후 이어질 긴 여생동안 기억에서 사라지지 않을 것. 음악이 흘러나오면 눈물도 함께 흐를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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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란 얼마나 오랜 시간 정을 나누었는가와는 크게 상관없이 충분히 강렬할 수 있는 감정이다. 오랜 시간을 함께 한다해서 감정의 깊이가 그에 비례하여 깊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일주일을 보아도 10년 가는 사랑이 있는 것이고, 10년을 보아도 일주일을 슬퍼하고 끝나는 사랑이 있다.
어떤 사랑은 떠나간 후에도 평생에 걸쳐 흔적을 남긴다. 그녀들에게 타올랐던 감정의 시간은 짧았지만 강렬하여 그들 인생에 내내 까만 그을림이 남아있지싶다. 28페이지에 묻은 손때마냥 까맣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