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심는 엄마, 싹을 틔우는 책
모든 진리를 가지고 나에게 오지 말라.
내가 목말라한다고 바다를 가져오지는 말라.
내가 빛을 찾는다고 하늘을 가져오지는 말라.
다만 하나의 암시, 이슬 몇 방울, 파편 하나를 보여 달라.
호수에서 나온 새가 물방울 몇 개 묻혀 나르듯
바람이 소금 알갱이 하나 실어 나르듯.
Latte is horse.
꼰대가 자주 한다는 그 말. 나 때는 말이야. 나는 이 말을 안 쓰려고 무던히 노력한다. 나도 듣기 싫으니까.
지금까지 들었던 교육 중에서 마음에 꽂힌 말이 있다. 심리학자가 했던 강의에서 부모의 잔소리를 한마디로 일축한 적이 있다. 잔소리는 '옳은 개소리'라고.
아무리 옳은 소리라 한들 아이에게 들리지 않는다면, 구구절절 맞는 잔소리가 누구에게 도움이 되겠는가? 물론 아이 키우면서 잔소리 한마디 안 하고 키우기란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내가 아이에게 하는 잔소리가 '옳은 개소리'에 불과하다는 걸 마음에 자꾸 새겨보았다. 어느 날은 잊어버렸다가 아이를 혼내고 밤중에 내가 잔소리를 했다는 생각이 들어 후회하기도 했다. 또 어떤 날은 잔소리를 하면서 속으로 '이제 그만 멈춰!'라고 되뇌어 보았지만 입에서 떠나간 잔소리를 그치기는 쉽지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잔소리도 줄어들고, 아이한테 하는 잔소리의 강도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뚝배기에는 찌개를 끓이고, 대접에는 국을 푸고, 종지에는 장을 담듯이 각자 그릇 크기에 따라 쓰임새가 다르다. 보통 잔소리는 부모의 걱정이 담긴 말이다. 그러나 나와 아이는 같은 사람이 아니다. 엄연히 다른 사람이다. 내 자식이라 어느 정도는 나와 닮은 구석이 있기는 하지만, 가까이 들여다보면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르다. 내 경험은 내 경험일 뿐, 아이에게 그대로 적용될지는 알 수 없다.
류시화 시인이 《시로 납치하다》책에서 소개한 시 중에서 노르웨이 시인, 올리브가 쓴 시 <모든 진리를 가지고 나에게 오지 말라>는 부모로서 가는 방향을 일러주는 듯하다. 특히 류시화 시인이 자신만의 방식으로 읽고 덧붙인 글에서 내 마음과 맞닿는 지점이 있었다.
누군가가 모든 해답을 알고 있다고 주장하면 그를 따르지 말 일이다. 그 해답은 당신의 목적지가 아니라 그의 목적지로 데려갈 것이기 때문이다.
삶의 의문은 다른 사람이 가져다주는 해답으로는 풀리지 않는다.
아이의 생각과 행동, 특히 저렇게 행동하면 뻔히 실수할 거라는 걸 알지만 그때마다 눈을 감고 모른 척하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모든 사람은 실수를 한다. 나도 내 아이를 낳고 처음 엄마 역할을 하는지라 말로 다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아이에게 온갖 실수를 하는데 만날 아이더러는 이래라저래라 한다면 입장 바꿔 생각할 때 얼마나 재수 없겠는가.
나의 피나는 노력 중에 가장 공들여했던 시도가 바로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아이가 무슨 말을 하던 들어주는 것이었다. 학교 갈 때쯤 되니까 책을 보면서 무슨 할 말이 많은지, 책에서 나온 내용과 아이가 비슷한 일을 경험했다치면 친구 중에 누가 있는데라는 얘기를 듣곤 했다. 책에서 한 줄을 읽고 아이 말을 몇 분 들어주다가, 다시 또 한 줄을 읽고 또 아이 말을 들어주다가를 반복했다.
나는 아이에게 책을 읽어주면 얼른 읽어주고 재워야지라는 생각에 처음에는 아이가 하는 말을 중간에 잘라버렸다. 아이 말을 들어주려고 생각하고 나서는 아이 말에 '알았어.'라고 대꾸했다가, 그다음에는 아이가 하는 말에 '그래서?'라며 대화를 이어 나갔다. 어느 때는 아이와 번갈아가며 책의 한 페이지는 내가 읽다가, 다른 페이지는 아이가 읽었다.
등장인물이 많이 등장하는 전래나 세계명작은 어떤 등장인물을 아이가 할 건지 정해서 함께 번갈아가면서 읽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는 중간중간에 참으로 나에게 할 말이 많았다. 책을 읽고 내가 물어보는 질문에 '몰라.', '좋아.'처럼 단답형 답을 하다가 '엄마는 이렇게 생각해.'라고 말했더니 어느 순간부터 자신이 생각한 대답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하는 대답은 때로 기발하기도 했지만, 정말 말도 안 되는 말을 할 때도 있었다. 그래도 아이가 하는 대답에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다.', '어쩜 진짜 그런 기발한 생각을 했지?'라며 반응하자, 아이는 점점 더 말이 많아지고, 굉장히 적극적으로 변했다.
엄마가 살아온 방식이나 생각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 해답을 찾아가려는 그 모습이 너무 기특했다. 잔소리 많던 내가 완전히 바뀌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아이와 책을 읽고 생각을 나눌 때만큼은 아이의 생각에 귀를 기울이고 맞장구쳐줬다. 시인 올리브가 썼던 시에서처럼 아이가 스스로 진리를 찾기를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