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0901
매달 첫날마다 생경한 탄식을 뱉는다. 지난날을 맺자마자 새 달이 펼쳐지다니. 믿기 어려운 심경을 번복한다. 어제 나와 오늘 나는 거의 비슷한데, 달력 한 장 넘겼다고 작심 달리하니 우습다. 당신은 작년 시월부터 올해 삼월까지 수첩을 채웠다. 나는 올해 사월부터 구월까지 글을 짓는다. 온전하지 않아도 열두 달 전부 도장 찍는다. 일 년은 어떤 시간인가. 매일을 비슷하게 사는 듯해도, 지구가 태양을 한 바퀴 도는 동안 영화 한 편에 담아내기 개연성 부족한 일들을 치렀다. 드디어 구월이다.
녹음 끝물 만개한 낮이다. 꽃샘추위 헤아리기 생뚱한 계절이다. 고단한 당신은 목이 아팠다. 팔월 말일은 더웠다. 카메라를 들었다. 캐논 대리점에 들렀다. 직원은 놀랐다. 기계를 고대 유물 다루듯 만졌다. 오오, 이것이 전설의 오두막입니까, 뉘앙스였다. 렌즈를 후임에게 보여주며 말했다. 습기가 차면 곰팡이가 펴서 뿌옇게 보여요. 귀한 교육 자료입니다. 터지는 웃음을 참기 어려웠다. 엉겁결에 새 렌즈를 구매했다. 예상 못한 출혈에 통장은 아파했다.
출사는 문래동이었다. 사진 모임이었다. 익히 알 만한 사실을 언급한다. 괴팍한 성격 소유자다. 본인보다 실력 부족한 집단에 머물지 않는다. 글쓰기 모임장 맞춤법 틀려서 도망친 일례를 든다. 해당 군집에 고인 물 얼마나 분포할지 짐작 가능하다. 면전에서 연초 피우는 아재조차 실력 인정한다. 그들보다 월등해지면 미련 없이 떠나겠다. 그날까지 아득바득 배워야지. 그악스러운 성정이다.
풍경은 기대에 필패했다. 거리 출사 전형이었다. 골목마다 카메라맨이 분포했다. 빈손보다 사진기가 많았다. 외국인 관광객이 떠들었다. 말을 걸까 고민했다. 빠르게 앞질렀다. 포기했다. 회화 공부를 실전에 적용하고 싶다. 기회 드물어 아쉽다. 성인 남성은 코끼리처럼 먹는다. 성인 여성 중 적게 먹는 편은 아닌데, 회식하면 돈이 아깝다. 몇 점 집기 전에 머릿수대로 비용을 나눈다. 불참 다짐해도 마땅한 핑계를 대지 못한다. 우유부단한 회원 같다.
으레 그렇듯 글은 밀린다. 카페를 찾는다. 평창동이다. 갑작스러운 행선지다. 고요한 언덕에 바람이 분다. 부자 냄새가 실린다. 정갈하고 고급스러운 전원주택이 띄엄띄엄 똬리를 튼다. 박탈감 따위 들지 않는다. 갤러리 겸한 공간이다. 금액은 터무니없다. 드립 커피 구천 원. 브라우니 만 원. 여섯 시 마감이다. 네 시간 안에 이만 원어치 글을 써내야 한다. 마음이 급하다. 종종걸음 치듯 자판을 두드린다.
<현의 혜석> 마지막 달인 만큼, 텍스트에 집중하고 싶다. 당신 인생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겠다. 칠 팔월은 묵혀둔 뭉텅이를 지었다. 반성한다. 다잡는다. 하루 한 편씩 쓰겠다. 수첩 동날 때까지 편지를 쌓겠다. 하잘것없는 하루를 공개로 부치려니 민망하다. 번안과 창작 경계는 규정하기 어렵다. 실화 기반 허구가 탄생할지 모른다. 녹차 예상한 케이크를 베어 물자 멜론 맛이었던 비엔나처럼. 눈으로 분간 못할 반전이 숨어도 흥미롭겠다. 농으로 짐작하나 한 치 거짓 없는 순진으로.
당신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대상은 누구일까. 나는 아닐 것이다. 잠자리에 누워 웅얼거린 언어까지 포괄하면 당신 남편일지 모른다. 아닌가, 옥 이모인가, 이 여사일까. 답을 찾으면 알려 주시길. 우리는 대화보다 글을 나눈 사이다. 당신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가장 많은 글을 나눈 대상은 나이리라 짐작한다. 아니라면 섭섭해도 분발해야지. 당신과 나는 내일 제주에서 만나니까.
240226
1. 꽃샘추위다. 목이 취약하다는 걸 느낀다. 고단하면 목이 아프다.
2. 세상에 태어나서 지금까지 가장 많은 대화를 나눈 대상은 누구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