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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의 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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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Sep 21. 2024

다정한 어깨동무

240902

오후 세 시 이륙이다. 일찌감치 도착한다. 무려 네 시간이나. 아마추어 같다. 커리어 우먼을 상상한다. 공항에서 작업하는 어엿한 성인 여성을. 노트북을 챙긴다. 짐을 무겁게 만든다. 창작은 순조롭게 표류한다. 작심 이틀 차부터 난관이다. 딴짓이 팔 할이다. 휴대폰을 부수거나, 잠그거나. 조치 취해야 뭔들 짓겠다. 국가고시 공부는 어떻게 해냈을까. 새하얀 자취방에 틀어박힌 과거가 용하다.


김포국제공항 국내선 카페테리아는 중국인이 우점종이다. 국적 알아챌 심산 없었다. 스피커로 뿜어대는 영상 소리 요란하다. 모른 척하기 어렵다. 참지 못한다. 조심스레 양해 구한다. 볼륨을 조금만 줄여 주시겠어요? 선뜻 사과한다. 머쓱한 오전이다. 당신을 만나는 낮이다. 오늘도 당신이 쓴 조각을 읽는다. ‘오늘’을 관찰한다. 자주 집지 않는 단어다. 초등학생이었다. 일기 숙제였다.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다. 매일이 오늘입니다. 언급할 필요 없어요. 오랜만에 ‘오늘’을 적는다. 간지럽다.


당신은 오늘 싱싱하다. 자유롭고 충일해 보인다. 쾌청한 하늘 아래, 태양광 잔뜩 받은 관엽식물 같다. 방울방울 생기를 흩뿌린다. 용눈이 오름을 씩씩하게 오르는 당신. 소매를 걷어붙이며 경양식 돈가스를 써는 당신. 거품 자잘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는 당신. 당신의 지난 오늘은 어떠했을까. 혼자여도 쓸쓸하지 않은 사람이 되고자 작심한 그날은. 혼자여서 쓸쓸했을까.


필연은 진자 운동이다. 우리는 함께와 혼자를 오가며 살아갈 것이다. 무르익은 벗을 두었더니 일찌감치 늙어감을 염두한다. 신중하고 심각하게, 공손하고 겸손하게. 당신 목표처럼 늙어갈 수 있을까. 매일 글을 쓰는 일은 매일 글을 읽는 일보다 어렵다. 계곡에서 절망으로 허우적거린다. 물이 들어올 때까지 노를 저어야 할 텐데. 비탈을 지치지 않고 올라야 할 텐데. 다정한 어깨동무를 소원한다. 우리가 함께하는 동안만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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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혼자여도 쓸쓸하지 않은 사람이 되자
2. 신중하고 심각하게 공손하고 겸손하게 늙자
3. 다정한 어깨동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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