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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의 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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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Sep 22. 2024

요점은 행복

240903

해발을 가늠하며 그늘을 헤친다. 수풀이 꺼진다. 탁. 고지가 트인다. 윗세오름이다. 숨은 낙원이다. 무념히 걷기에 능숙한 모녀다. 아치 당기고 무릎 꺾여도 의연하다. 발을 딛는 행위와 글을 짓는 일과는 일편 유사하다. 반복할수록 투명해진다. 수첩 한 페이지 간신히 채우던 뭉치가, 갈수록 말갛게 속내를 비친다. 일일이 말로 하지 않으면 마음을 알아채지 못하는 남자와 한 집에 산다니. 풍선껌처럼 팡. 연분홍 웃음이 터진다. 막바지로 내달린 진심, 대체로 말하는 요점이 행복한 결혼이라면. 그럭저럭 다행이다.


땀을 한바탕 흘린다. 밥솥을 실컷 푼다. 뱃가죽이 부푼다. 눈두덩은 가라앉는다. 빙수를 한 큰술 뜬다. 덜 갈린 얼음을 아작아작 씹는다. 이를 덜덜 떤다. 섭지코지에 주차한다. 잿빛 예식 장갑을 낀다. 묵직한 셔터 소리를 듣는다. 낯익은 얼굴을 발견한다. 노랗게 탈색한 여성이다. 어제 공항에서 마주친, 볼륨 선선히 줄이던 중국인이다. 좁은 세상이다. 섬찟한다. 바르게 살아야지. 다시금 다짐한다. 저녁은 야심하다. 어김없이 맥주잔을 기울인다. 대화하면 보람이 전해진다. 자식 낳고 길러 만족한 듯하다. 당신 기쁨이 되어 기쁘다,라고 문단을 맺는다. 아니. 아직이다. 문장을 지운다.


여태 모르겠다. 결혼이니, 임신이니, 출산이니, 육아니. 당연한 소리다. 아집으로 똘똘 뭉친 어린 어른이다. 영원한 사랑이나 완전무결한 가정을 꿈꾸기에 섣불리 낡았다. 결혼 제도는 이성애 정상선 행진이다. 성격 잘 맞는 애인과 알콩달콩 연애하는 동기를 보면 기특하고 부럽다. 언젠가 마음이 동하는 상대와 평생 함께할 욕심이 든다면 자연히 이루겠지. 성급한 표명은 차치한다. 탄생을 축복이라 여기는 사고가 신기하다. 가라앉는 배에서 동반 익사할 소비재 창조하는 행태 자처하다니. 무모한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비아냥이 아니다. 진심에서 우러나온 존경이다.


스물여섯 해 전, 지구에 인간으로 던져졌다. 성장은 평범함을 끊임없이 마주하는 과정이었다. 납작하게 표현하면 화목한 가정에 반듯한 학창이다. 도달도 형용도 어렵다는 ‘평범한’ 성인 여성이 된다. 달리 불만 품지 않는다. 단지 우주 관점에서 불필요한 사건 아닌가, 생각할 뿐이다. 그럼에도 당신과 만난 인연은 소중하니까. 당신이 당신 탄생을 불필요하다 여기면 섭섭할 테니까. 서로 다른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서 함께하니 마냥 즐거우니까. 이제 말한다. 글은 거짓말을 못 해서. 투명해서. 당신 기쁨이 되어 기쁘다.


240228
1. 대체로, 요점만 말해서 나의 결혼은 행복하다
2. 일일이 말로 하지 않으면 나의 마음을 알아채지 못하는 남자랑 한 집에서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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