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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의 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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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Sep 23. 2024

익숙한 냄새가 밴 공간

240904

가을이다. 바야흐로 예술제 계절이다. 아트 페어가 열린다. 키아프, 프리즈. 갤러리는 역량을 뽐낸다. 행사 규모로 저력을 과시한다. 저녁 개장 파티하며 무료 리셉션 제공한다. 대감집 축제 기간이다. 프롤레타리아는 잔치판 콩고물 얻으러 삼청동 일대를 향한다. 국제갤러리는 신뢰를 저버리지 않는다. 푸짐한 케이터링을 베푼다. 작년과 비등한 수준이다. 스텐딩 바에 접시를 둔다. 누군가 다가온다. 테이블 함께 써도 될까요. 데님 셔츠에 꽂힌 뿔테 안경이 예사롭지 않다. 관심사 공유하는 공간에서 마주친 상대는 여러모로 흥미롭다. 물 흐르듯 대화한다. 근무지가 화성이다. 삼성전자 4 년 차다. 대단하다. 물경력 전전하는 내게 근속은 존경스럽다.


저는 이런 걸 좋아해요.


전시, 영화, 사진. 동시에 셋을 향유하는 인재다. 귀하다. 하나 건들면 줄줄이 소시지처럼 따라 나오기 마련이다. 정작 주변에서 찾기 힘들다. 서먹함을 깬다. 명작을 언급한다. 필승 해법을 내민다. 댄 콴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세 번 보았고 세 번 울었단다. 더욱 친해지고 싶다. 좋아하는 영화를 묻는다. 고심한다. 답한다. 자비에 돌란 <마미>. 순간. 머릿속 퓨즈가 나간다. 이성을 잃는다. 본심이 후드득 튀어나온다. 천재 감독이죠. 연기까지 병행하고. 젊은 나이에. 저는 <마티아스와 막심> 개봉하며 처음 접했어요. <로렌스 애니웨이>로 필모그래피 깨기 시작했고요. 당황한 기색이다. 다행히, 아직 즐거워 보인다.


어떤 영화 좋아하세요.


질문받는다. 가뭄에 단비 같다. 눈동자를 빛낸다. 선택지를 제공한다. 첫째, 일반인용 평범한 답변. 둘째, 마니아용 진심 답변. 선뜻 후자를 고른다. 현생을 부지런히 살아가는 직장인은 잔인하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속절없이 무방비하게 만든다. 진심을 활짝 개방한다. 아피찻퐁 위라세타쿤 <메모리아>, 팜 티엔 안 <노란 누에고치 껍데기 속>, 자크 타티 <플레이타임>. 보고 만다. 흔들리는 초점을. 어리석다. 무난한 거장을 꼽아야 했다. 왕가위, 하마구치 류스케, 루카 구아다니노, 요르고스 란티모스, 라스 폰 트리에. 한숨짓는다. 작년에서 발전이 없다. 식사 자리였다. 사촌 오빠와 대화했다. 영화로 주제가 튀었다. 무난히 언급했다. 쿠엔틴 타란티노 <펄프 픽션>. 동공이 떨렸다. 대화가 끊겼다. 학습하지 못했다. 더한 감독을 들먹였다. 자만했다.


본가 들른 날이었다. 예고하지 않았다. 방에 숨었다. 현관에 들어선 당신은 말했다. 낯선 향기가 난다. 짙고 깊은 숲 같다. 얼굴 보지 않아도 네가 온 줄 알겠다. 피톤치드 인간인가. 그래서 모기들이 다가오지 않나. 익숙한 냄새가 밴 공간이 가장 편하다. 나다움을 찾다가도, 내 체취에 질식하겠다. 옳고 그름은 미지다. 못지않게 뚜렷한 친구를 떠올린다. 모친 장례를 치르고, 서류 더미 깔린 일월을 회상한다. 그 애는 말했다. 부모님 두 분 다 살아 계신 지인이 안타까워요. 수많은 절차를 어떻게 두 번이나 처리할지. 저는 이제 한 번이면 되는데. 등짝을 후렸다. 어디 본인만 가능한 블랙 코미디를. 당신과 아빠는 앞으로 같은 밥을 몇 번이나 함께 먹을까. 무의한 궁리하면 자신이 생긴다. 우리가 계속 우리다워도. 숨 막히는 몸내 흩뿌리며 유한을 달려도. 어떠한들 괜찮으리라.


240229
1. 부분적으로 보면 부부는 함께 밥을 먹기 위해 함께 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다
2. 익숙한 냄새가 밴 공간, 우리 집이 제일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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