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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의 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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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Sep 19. 2024

수국부터 장미까지

240828-0831

비누, 린스, 칫솔, 두루마리 휴지, 롤 클리너 리필, 브리타 정수기 필터. 생필품은 한꺼번에 동난다. 불운 또한 마찬가지다. 몰아닥치는 재능이 탁월하다. 일상은 실수를 무한 복제한다. 장을 보러 나선다. 마트 앞에 선다. 유리가 헤벌쭉 입을 벌린다. 찬바람이 쌩하니 빠진다. 맥주를 집는다. 가장 저렴한 제품으로. 제인은 선배를 떠올린다. 벤츠를 몰며 저렴한 주유소 찾아 빙빙 돈다는 그녀를. 호랑이는 이빨을 드러낸다. 씩 웃는다. 하나둘 구색 갖춘다. 구멍을 메꾼다. 매끈한 표정을 짓는다.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뗀다. 엉망진창 내달리던 팔월이다. 뚝. 끊긴다. 거짓말처럼, 벼랑에서 떨어지는 바위처럼.


새로 구한 근무지는 평이하다. 급여가 월급날 들어온다. 국장은 어깨를 툭툭, 두드리지 않는다. 근무 약사를 닦달하지 않는다. 환자 빨리 쳐내라며 눈치 주지 않는다. 억지 매약하지 않는다. 등쳐 먹지 않는다. 겁박하지 않는다. 이럴 수 있나? 제인은 놀란다. 물론, 일터가 완벽할 리 없다. 적어도 지구상에는. 점심시간은 불규칙하다. 배달 주문한다. 문이 열린다. 손님이 들어온다. 수저를 놓는다. 투약구로 뛰쳐나간다. 쌀알을 까끌까끌 씹는다. 알약을 허겁지겁 조제한다. 체하기 십상이다. 그럼에도. 상식 영위할 수준이다. 경영자 인성이 우선이다. 새삼 되새긴다.


커서가 깜빡인다. 눈꺼풀을 껌뻑인다. 빈 페이지는 여전히 광막하다. 한 땀 한 땀 자판을 누른다. 뽕잎 갉아먹는 누에처럼. 어떻게 지내냐, 근황 물음 받는다. 글 짓는다 답한다. 약은 짓기 싫어서. 고질은 인정에 기인한다. 창작이 오로지 자아실현 수단이면 무탈하겠다. 실상은 괴로움 수반한다. 타인 눈길 닿으려 발버둥 친다. 상대를 바란다. 텍스트를 정확하게 해석할 익명을 갈망한다. 방치된 창조는 무미한가. 당신 재능을 믿습니다. 후원금 쾌척할 거물을 그린다. 결국 밥벌이는 제 몫이다. 나를 먹여 살릴 자는 나뿐이다. 진작 알면 좋았을 텐데.


비록, 아무리 그러하더라도, 세상이 고통으로 가득하더라도. 극복할 힘 역시 충만하다면. 묵묵히 셔터를 누른다. 눌리지 않는다. 어느덧 서른여섯 번째다. 롤이 감긴다. 연분홍 수국을 선물 받은 장마 초입부터, 노란 장미를 엽서로 부친 폭염 끝물까지. 누런 한낮이었다. 감정이 탈색된 여름이었다. 위장을 쿡쿡 찌르던 더위였다. 톡. 떨어진다. 왼손에 놓인다. 숨을 다한 카나리아처럼, 자그맣다. 가뿐하다. 허탈하다. 제인은 필름을 갈아 끼운다. 마주할 가을을 물성으로 소유하고자. 한 발짝 늦게 초록으로 담고자. 구월은 어김없이 저벅저벅 다가온다.


240222
1. 헬렌켈러 - 세상이 비록 고통으로 가득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극복하는 힘 역시 세상에 가득하다
240223
1. 자신에게 부여된 삶의 조건들이 어떻든 간에 받아들이고 살아야 한다
2. 비록, (아무리 그러하더라도) 맘에 들지 않더라도
240224
1. 마음의 균형을 잃고 무기력이 찾아올 때
2. 미처 몰랐으나 지금은 알게 된 것들을 떠올리자
240225
1. 진작 알았더라면 좋았을 것들
2. 똑같은 실수를 무한 반복하는 일상의 생활
3. 세상에는 좋은 것들이 많지만 내게 가장 소중한 건 아무튼,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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