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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현의 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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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화혜 Sep 18. 2024

사랑을 냉침하는 법

240824-0827

어릴 적이 선명하다. 조조 영화를 오천 원에 보았다. 요즘은 이모저모 따져도 비싼 느낌이다. 이만 원으로 두 편 예매한다. 서울국제여성영화제는 홍대로 터를 옮긴다. 연남에 종일 죽친다. 예산 삭감이 피부에 닿는다. 스케줄과 체력을 안배한다. 첫 작품은 <뒤죽박죽 내 인생>. 프랑스 개그는 마땅히 취향이다. 주인공 바르베리는 귀엽다. 사랑스러운 오십 대 아줌마. 단순한 일상을 반복한다. 밑바탕을 견고하게 다진다. 별스레 유용하지 못하다. 스멀스멀 균열이 생긴다. 균형 맞추기 어렵다. 직립하기 어지럽다. 벤치에 드러눕는다. 뒤죽박죽 네 인생, 뒤죽박죽 내 인생. 창작하고 싶다-되뇐다. 치열하지 않다. 방학 막바지다. 늘어지기 십상이다. 막연한 희망은 나태하다. 안주한다. 지금이 영원히 끝나지 않기를, 혹은 잽싸게 끝나 버리기를 바란다. 카세트테이프 늘였다 줄이듯, 입맛대로 시간을 바꾸고 싶다. 웃기는 심보다.


늦은 점심과 이른 저녁을 겸한다. 분식집을 향한다. 선생님들을 마주친다. 세상은 좁다. 우연은 우습다. 오늘 왜 이렇게 꾸미셨어요. 세 치 혀가 이성을 앞지른다. 빠듯하게 박장한다. 대소를 쏟는다. 제 갈길 간다. 순대를 시킨다. 내장까지 씹는다. 다음은 <지구 최후의 여자>. 한국 영화 선정은 <파일럿>에 이어 실패를 재생한다. 독립 영화감독끼리 스스로에 취해 자기 위로한다. 쑥스럽고 뿌듯하게 GV 진행한다. 일말 기대마저 전소한다. 자리를 박찬다. <메기>, <벌새>, <윤희에게> 이후 씨가 말랐나. 관객은 없고 광대만 넘친다. 심경을 이해한다. 광대 지망생 중 하나니까. 당연한 수순으로 성공 향해 달리는 이들이 부럽다. 질투를 원동 삼을 치열함은 부족하다. 기력 돋우어도 격정은 미진하다. 찜찜한 걸음으로 허탈히 귀가한다.


한 떨기 받는다. 장미꽃이다. 풍파 정통으로 맞았나. 빛바랜 달력 같다. 바스러져 먼지가 될까. 조심스레 살핀다. 코끝이 가렵다. 재채기를 삼킨다. 며칠 전 인화했어. 따끈따끈하지. 제인 호언은 믿기 어렵다. 전통 유구한 숙성 필름인가. 누리끼리한 사진이다. 닳아빠진 마음 같다. 설익은 밥처럼 지어둔 애정이, 식어서 쉰내 풍기는 비스듬한 오후 같다. 기분은 날씨보다 들쭉날쭉하다. 곱게 줄지은 쌀알 같기를 바라지만. 유난히 흐리다. 곁에 머무는 이들이 나의 봄이라면. 춘분은 미지하다. 팔월이 바닥날 무렵이다. 올해는 사랑을 알고 싶었다. 차가운 사랑은 존재할까. 유리컵에 담긴 얼음처럼, 달그락거리며 녹아내리는 속내를 살핀다. 몬드리안보다 차가운 추상이 나온다. 따뜻하게 만들고 싶다. 살점을 찾는다. 고운 조각보처럼, 여기저기 덧대려고.


귀청 찢는 음악으로 상념을 덮어도, 사지 흔들어 정신 뿌옇게 흐려도. 종내 반듯함에 끌리기 마련이다. 성품이 정갈한, 촘촘하고 단단한, 한낮을 닮은, 분침 같은, 바늘 하나 비집을 틈조차 없는. 디오니소스는 아폴론을 흠모했을 것이다. 불안이 크고 의심이 많으면 예민한가. 애정은 어째서 매번, 자기 세계로 가득 찬 사람을 향하는가. 만약, 혹시 생길지 모를 뜻밖의 경우. 살면서 간절히 바라는 일이 이루어진다면. 무척 좋을까. 한참 미래, 만남마저 흐릿한 옛일 된 때에. 오래도록 좋아했어, 툭 뱉는다면. 시도 없이 불뚝거리는 원망을, 삐뚜름한 입술처럼 뒤틀린 미움을. 향기롭게 냉침하고 싶다.


— 바다의 일기 中


240218
1. 불안이 크고 의심이 많은 사람은 예민한 사람인가?
2. 유난히 흐린 일요일 경화 장날에 호박죽을 사다
240219
1. 삶의 여기저기를 고운 조각보처럼 덧대어 따뜻하게 만들자
2. 내 곁에 머무는 이들은 나의 봄이다
240220
1. 만약 - 혹시 있을지도 모르는 뜻밖의 경우
2. 살면서 간절히 바라는 일이 만약 이뤄진다면 무척 좋을까?
240221
1. 삶에 적절히 균형을 맞추는 일은 참으로 어렵다
2. 반복적이고 단순한 일상은 삶의 견고한 밑바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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