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것은 정작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많다. 행복, 사랑, 감사, 기쁨, 희망 등등 이러한 가치를 찾아서 헤매다가 정작 진짜 파랑새는 내 바로 옆에 있게 되는 경우가 흔하다. 나는 늘 행복은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다. 그래서 행복이 목적이 아니라 그냥 내 옆에서 느끼는 것이라고 생각해 왔다.
오랜시간 동안 나를 괴롭히고 있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인정욕구. 이 인정욕구는 나를 갉아먹었다. 직장 상사가 인정해 줘야 내 스스로 만족이 되고, 주위 사람들이 인정해 줘야 내 자존감이 올라가는 것 같았다. 한국 대학서열제도를 강하게 비판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나에게 영영 씻지 못할 학벌 컴플렉스는 여전히 내마음에 상처로 남아있다.
사실 나는 촉망받는 학창시절을 보냈다. 학창시절 내내 성적은 상위권이었으며 대외 활동도 활발하게 하고 학교선생님들이 굉장히 좋아했다. 성격도 활발해서 어른부터 또래 친구까지 잘 어울리면서 보냈다. 그런데 원하는 대학교를 들어가지 못하고 집안 형편에 맞춰 지방 국립대학을 들어가서 부터 나는 알게 모르게 학벌이라는 꼬리표에 마음에 상처를 안고 살았다.
한국사회 안에서 출신대학을 묻는자리에서 내 마음은 늘 작아졌다. 똑똑하고 공부잘하는 아이로 인정받던 사람이어야하는데 소위 스카이 대학을 진학하지 못해서 깊은 상처가 남아있다. 영국에서 대학원을 다녀와서 한국에 취직을 했을 때도 학부 대학교 꼬리표는 지워지지 않았다. 대학교 서열화로 SKY를 나오지 않은 모든 사람들은 그런 컴플렉스를 안고 살아야하는 한국사회가 싫었다.
내 안에 자존감이 매우 높아서 뭐 어때 대학교를 이미 들어갔고 출신대학이 다가 아니잖아 하면서 넘기면 좋았을텐데 대학이름만 나와도 자존감이 낮아졌다. 그리고 나는 인정욕구가 굉장히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사실도 도미니카공화국에서 심하게 우울함을 느낄 때 내 내면의 마음을 들여다 보기 시작하면서 알게 되었다. 20여년이 지나도록 내 마음을 살피는 일을 소홀히 했으니 당연히 내가 왜 힘들고 무엇이 나를 괴롭게 하고, 원하는 직업을 얻고 소외된 이웃을 위해 열심히 일하고 있는 좋은 일을 하는데도 지치는지 모르고 살았다는 것이 억울했다. 그리고 더 알고 싶었다. 그런데 아는 방법은 심리학과를 들어가거나 대학교육을 통해서만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편협한 시각이다.
심리학적으로 어릴 때부터 강한 통제와 평가를 받으며 자란 사람들은 타인의 반응에 민감하고 안정의 증거가 있어야 안정을 느낀다고 한다. 나는 이 분석을 읽으면서 꽤나 엄하고 굉장히 통제가 심한 아빠의 모습과 학창시절 말 잘듣고 공부를 잘하는 사람에게 모든 칭찬과 특권이 몰리는 사회안에서 당연한 결과 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대학교까지는 타인의 평가, 증거를 모으기 위해 나는 무던히 애를 썼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인생 첫 심리상담을 받을 때 상담사 선생님의 '얼마나 애썼니 그래'라는 한마디에 폭풍같이 눈물을 흘렸던 것이었다. 도미니카공화국에서는 내가 기관의 책임자로 직원들을 인정하고 평가해줘야했고 내 위에 상사는 없었다. 멘토가 있었으면 좋겠고 나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좋았을텐데 없었다. 누군가가 나에게 잘하고 있어라는 그 한마디 없이 기관을전체를 맡아야 하는 무게에 사업을 진행하면서 온갖 생각하지 못한 일들을 처리하느라고 내 스스로를 돌보지 못했다.
결혼을 하고 내 있는 모습 그대로를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고 나는 심리적으로 굉장히 안정감을 찾았다. 내 존재 자체를 사랑해주는 남편, 그리고 마음 공부를 늘 하고 있는 남편 옆에서 나는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는일이 많이 사라졌다. 내 삶의 최고의 축복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떠한 모습이라도 조건없이 사랑하는 내 모습을보고 나도 나를 조건없이 사랑해줘야겠다는 생각의 전환이 들기 시작했다.
여전히 나는 인정욕구가 있다. 내가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자연스럽게 받아드리기로 했다. 이런 인정욕구가 나쁘지 않고 잘 활용하면 행동의 동기부여 만족을 주고 나의 직업적 성취를 이룰 수 있게 해준다. 타인의 평가가 나를 잡아 먹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조건없이 나를 사랑해주고, 어떤 결과에도 나를 얽매지 않을 것, 조금 더 만족스러운 내 모습을 만들기 위해 더 나은 나를 위해서라는 말로 나를 벼랑끝으로 밀어 붙히지 않을것, 나를 위한다는 말로 나를 스스로 갉아먹지 않도록 경계했다. 과정 속에서 만족을 느끼는 법을 스스로 배우면 된다는 생각의 전환이 일기 시작했다. 타인의 인정이 없어도 내가 나를 인정해주면 된다는 생각의 전환이 일기 시작했다.
내 자신을 모든 것의 한 가운데로 넣고 내 마음이 어떤지 묻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취의 결과가 어떠하든 노력하고 있는 내 자신을 다독여주기 시작했다. 내가 나를 조건없이 사랑해줄 때 비로소 보이지 않는 가치들이 빛나기 시작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것도 내 스스로의 행복을 위협하지 않도록 매일 연습하고 있다. 무의식 역시 훈련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매일 아침 저녁으로 나에게 오늘도 메세지를 보낸다. 향아 오늘도 이렇게 노력한 니가 참 대견해 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