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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초 Feb 03. 2021

누구를 위한 미라클 모닝인가

기독교 집안에서 자란 나에게 새벽 기상은 생소하지 않다. 엄마 아빠가 새벽 예배를 참석하기 위해 매일 아침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나서 교회로 향하시는 것을 보고 자랐기 때문이다. 내가 인생 최대 가난하고 외롭고 힘든 유학시절을 견뎌 낼 수 있었던 것도 사실 새벽예배 덕분이었다. 하지만 한 번도 새벽예배 참석을 위해 혹은 여행을 가서 아침 일찍 비행기를 타거나 특정한 목적 외에 스스로 아침 5시에 일어나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작년 즈음 우연히 5AM club이라는 책을 접하면서 미라클 모닝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알고 보니 한국을 비롯 전 세계에 아침 5시 일어나기 열풍이 불고 있었다. 책을 읽고 나도 한번 새벽에 일어나 보자는 생각으로 바로 실천을 해봤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은 크게 힘들지 않았다. 책에 의하면 60일이면 새벽 기상도 습관으로 자리 잡는다고 하니 꾸준히 두 달만 해보자는 생각으로 진행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운동을 하고 명상을 하고 성경을 읽고 책을 읽는 시간을 확보하자, 그러면 더 나은 내가 되어있겠지?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 인생이 바뀐다는데 나도 성공한 삶을 살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코로나로 재택근무 및 사람들과 접촉이 없어지면서 나는 온라인을 통해 아침 5시에 일어나는 사람들을 알게 되고  그들과 새벽 기상해서 운동하는 사람의 유대감을 형성할 수 있게 되었다. 


몇몇 유튜버는 아침 5시에 일어나는 일상을 찍고 미라클 모닝으로 이룬 것들을 나열하면서 기적적으로 아침에 일찍 일어나기만 하면 원하는 모든 것을 이룰 것 같은 희망을 안겨주었다. 궁금한 것은 바로 해보는 나 역시 60일이 지나도 그것이 습관으로 자리 잡는지도 궁금했고,  미라클 모닝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것을 이룰 수 있는지 살펴보았다. 


당시 나는 늘어진 뱃살이 너무도 싫어서 날씬한 몸을 갖고 싶었다. 5AM이라는 책에서는 운동복을 입고 잠들어서 바로 운동을 하라고 조언을 하였고 그대로 해보기로 했다. 그래 일단 운동을 하고 에너지를 갖고 성경을 읽고 묵상을 하자는 루틴을 머릿속으로 그렸다. 운동복을 입고 잠을 자지 않았지만 알람이 울리면 바로 일어나서 운동복을 입고 안방 안에 작은 옷방에서 운동을 시작했다. 겨우내 요가 매트 두 개 정도 놓을 좁은 자리였지만 우리 집 모든 사람이 자고 있는 시간에 일어나 나의 아름다운 몸매를 위해 운동을 하는 나 자신이 그렇게 대견스러울 수가 없었다. 


자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많이 푸는 나는 보통 8시간을 자야 해서 미라클 모닝은 당연히 일찍 자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꾸준히 6개월 정도 했을까? 늘 아침에 일찍 일어났던 것처럼 5시만 되면 눈이 떠졌고, 기계적으로 운동을 하고 명상을 하고 책을 읽거나 언어 공부를 했다. 그러다가 내 몸을 만드는 온라인 프로젝트에 참가하면서 나는 아침에 운동하는 것을 매일 기록하고 인증하기 시작했다. 인스타그램으로 만난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내가 인증하는 피드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나의 미라클 모닝 루틴이 점점 익숙해지면서, 온라인 친구가 많아지는 시기였다. 


어느 순간 일어나자마자 운동복을 입고 바로 운동을 하는 게 아니라,  핸드폰을 켜서 인스타그램 댓글을 확인하고 블로그 댓글을 확인하면서 30여분을 보내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운동하는 프로젝트는 인스타그램 포스팅으로 인증하는 것이 룰이었다. 그 룰에 따르고자,  매일 아침 운동하는 내 모습을 타임랩스로 찍어서 Vllo라는 앱으로 편집을 해서 인스타그램에 포스팅을 했다. 이쯤 되면 나를 위해 아침에 일어나 운동을 하는지 인증을 하기 위해 미라클 모닝을 하는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무렴 어때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만 하면 되지 이런 생각이 들다가도 타인의 시선이 자꾸 신경이 쓰이고 재미를 느끼면서 미라클 모닝이 인스타그램 모닝이 되어갔다. 좋아요가 100개가 넘어가는 포스팅과 대단하는 댓글들을 보면서 혼자서 하는 미라클 모닝을 칭찬받는 것 같아 괜스레 뿌듯해하면서 그렇게 시간을 보내고 나니, 어느덧 나의 귀한 아침 에너지를 타인의 코멘트에 집중하느라 쓰고 있었다. 


누구를 위한 미라클 모닝인 거지? 아침 5시에 일어나 정작 운동은 30여분 하고, 인스타그램 댓글 확인 및 대댓글, 인증 영상을 위한 편집 20분 등 운동 외에 온라인 인증 외 딸려오는 다양한 재미에 약 1시간을 쓰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세계 뛰어난 창업자들은 아침에 옷 고르는 에너지를 아끼기 위해서 매일 같은 디자인의 옷을 입는다는데 나는 아침부터 일찍 일어나서 너무 많은 에너지를 불필요한 곳에 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운동을 하고 묵상을 하고 공부까지 하는 것이 나의 미라클 루틴인데 이 루틴을 인증하면서 일어나자마자 댓글을 확인하고 댓글을 달고 다른 사람들의 포스팅을 보고, 인증을 위한 영상을 편집하면서 주객이 전도되어 버렸다. 인스타그램을 하려고 아침에 일찍 일어난 게 아닌데 라는 생각이 가득 차면서, 아침에 애써서 만든 나의 습관이 크게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그래서 인증을 하는 것을 그만두고 이젠 내 몸이 원하는 시간에 일어나기로 하고 5시에 일어나기 강박에서 벗어나기로 했다. 


그렇게 마음 편히 6시에도 일어나고, 어떤 날은 7시에도 일어나고, 아이들 학교가 온라인 수업이 바뀌면서는 온라인 수업하기 직전 8시에 일어나기도 하고, 들쑥날쑥 기상 기상이 시작되었다. 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시간을 생산적으로 쓰지 않는다면 차라리 내 몸을 더 쉬게 해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최근엔 다시 5시에 일어나기를 한다. 수면시간 7시간을 확보하면서 일찍 일어나면 확실히 아침에 집중하는 에너지가 밤보다 좋다는 것을 느꼈고 인증하기를 그만두니 이젠 확인할 댓글도 없고 온라인상에서 소통에서 해방이 되었다.  이전 경험으로 핸드폰을 아예 거실에 두고 침대로 가고 일어나서도 내가 원하는 시간을 다 보내고 나서 집어 든다. 성공한 사람들 대부분이 미라클 모닝을 했대. 나도 해보아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시작하면 얼마 못 가서 열정이 식는다. 진짜 이유가 필요하다. 내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이루고 싶은 것들. 나만의 시간으로 정말 하고 싶은 것들. 


단순히 인증을 위한 기상은 이제는 의미가 없어졌다. 이제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워지기로 했다. 그리고 나를 위한 진짜 미라클 모닝을 꾸리면서 어느 누구도 뺏어갈 수 없는 소중한 나만의 시간에 온전히 집중하기로 했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은 우리에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해주고 아이디어를 주지만, 정말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나도 눈치 채지 못하는 사이에 뺏어간다. 


귀한 나의 에너지를 모아서 나를 위한 시간, 내면의 소리를 귀 기울이고 영혼과 몸을 위한 시간으로 쓰기로 마음먹었다. 특정한 목표가 없고 시간이 쫓기지 않는 사람에게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생산성 넘치는 일을 하고 단지 5시 기상을 위해 수면시간을 줄이는 것도 내 몸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충분한 수면시간 확보가 전제되고 정말 나에게 맞는 시간을 찾아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잘 쓰는 것이 미라클 나잇이든 미라클 모닝의 핵심인 것을 깨달은 요즘이다. 

 

내가 밤늦게까지 일하고 왔는데 새벽 기상을 인증하기 위해서 내 몸을 혹사시키는 것은 정말 의미 없는 인증을 위한 새벽 기상일 뿐이다. 내가 일찍 일어나지 못했다고 스스로 자책하면 이 모든 자기 계발의 의도에서 벗어나게 된다. 진짜 나의 내면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서 그것을 듣고 따르는 것을 위한 고요한 아침. 그런 고요한 아침을 나는 원하기에 나의 미라클 모닝은 계속된다. 몰입의 기술보다는 차단의 기술이 더 필요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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