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표를 향한 질주
가치 있는 일에 목숨 걸면서 나의 20대를 보냈다 연마해왔다. 나의 열정과 열심은 어느 누가 나를 만나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나는 지속 가능한 국제개발에 푹 빠져있었고 내 열정과 비전을 불태우고 싶었다.
20대 에너지 넘치는 당시에 영리를 취하는 기업에 취직하는 것을 죄악시 여겼으며 영국에서 취업을 하지 못해 재정난에 시달리는 시기에도 대기업 법인에 면접을 보고 나서 한국행을 정 했을 정도로 대기업에 취직해서 일하는 것을 꺼렸다. 그리고 한국에 돌아와서 일주일도 안되어서 영국에 한국법인 잡오퍼를 받게 된다. 후회하냐고? 그때 영국에서 더 있었더라면, 어떤 일 들이 벌어졌을까? 궁금한 마음은 있지만 후회는 하지 않는다.
하지만 방식과 실천 형식 내 생각은 지금은 굉장히 바뀌어있다. 그래서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다. 내가 어떤 방식으로 어떤 일을 겪으면서 나의 비전을 추구하는 방식이 바뀌었는지.
도미니카공화국으로 해외개발전문가로 사업의 책임자로 해외로 파견을 나가게 되었다. 마음은 무거웠으나 드디어 나의 열정대로 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을 펼칠 수 있겠구나 하는 신나는 마음이 앞서있었다.
책으로 토론으로 배운 국제개발 프로젝트를 드디어 시작할 수 있겠다 ~! 신나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 철없는 생각이었으나 20대 후반의 나이로 엄청난 책임감을 무거워하지 않고 일을 재미와 열정을 느꼈으니 처음 몇 달은 적응과 재미로 지나갔다.
나는 여러 나라에게 1년 정도의 기간을 산 경험이 있어서 새로운 문화 새로운 시스템을 알아가는 데는 전혀 두려움이 없었다. 스페인어를 쓰는 나라이지만 나는 구글 번역기와 영어를 써가면서 핸드폰 개통부터 집 계약 그리고 직원 채용 나의 첫 프로젝트 우물 장소 섭외 및 우물설치 등을 빠르게 해치워나갔다.
오랫동안 여러 가지 이유로 미결되었던 사업이고 실제로 개인이 실행하기에는 장벽이 너무 높았었던 터였다.
통역을 소개받아 그 친구와 이리저리 다니면서 지역 사람을 만나고 왜 필요한지 물소 스는 어디에 있는지 우물이 없어서는 안 되는 이유 등등을 최대 베이스라인 조사를 해가면서 개발 매뉴얼을 참고해가면서 FM대로 움직였다.
그런 내가 기특해 보였는지, 도미니카공화국 대사님은 정말 조촐한 우리 기관의 개소식도 참석해주시고 그 뒤로도 종종 불러서 맛있는 식사도 사주셨다. 다들 좋은 일 한다고 어린(?) 사람이 와서 고생한다고 대부분 많이 격려를 해주셨다. 그러나 이런 후딱후딱 일처리가 과연 국제 개발의 정신과 맞는가? 자발적인 주민들의 참여에 의해 이루어졌는지? 이 우물의 주인의식은 누가 갖고 있는지? 이 모든 질문들이 쏙 빠져있은 채 나는 내일에 열중했다.
그렇다 나는 애초부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던 거였고 나의 비전을 정당하기 위한 일을 향해 달려왔던 것이다. 하지만 지역개발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속도도 더디다 사람들이 진정으로 동기부여가 되지 않으면프로젝트는 움직이지 못한다. 우리 기관은 후원자들의 돕고자 하는 열망을 담은 돈이 있다. 이 거리감을 어떻게 좁힐 수 있을까?
나는 소그룹 저축 프로그램을 하시는 분을 소개받게 되었다. 한국분이신데 UN자원봉사자로 석사논문을 쓰시면서 와계신 분이셨다. 옆에서 어떤 프로그램을 진행하시는지 보았다. 그리고 우리 지역 프로젝트 지역에도 이 프로그램을 소개하고 싶었다. 그렇게 개인적 자발적 동기가 '돈'이 되면 사람들의 행동변화 및 긍정적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선생님은 스페인어 유창하게 잘하실 뿐 아니라, 사람들과 소통부터 모든 게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까지 잘 이끄시는 모습을 보고 개인적으로 반했다. 그분의 프로그램이라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긍정적인 변화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직도 정답을 알지 못하지만 나아갈 방향성은 점점 확립이 되었다.
지속 가능한 지역개발에서 모든 동기는 개인에서 나와야 하는 것을. 개인이 의지가 아니면 공동체가 의지를 가질 수가 없고 그래서 개개인의 마인드 파워 및 마인드 컨트롤은 더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취약계층 사회적으로 구조적으로 억압받는 이들에게는 무조건적인 도움이 필요한 것은 맞다 그래서 이것이 무조건적인 지원과 지속 가능한 개발로 또한 맞닿아있다.
무조건 퍼부기만 해야 한다고? 무조건 퍼줘야 하는 것들이 있다.
예를 들면 교육, 의료, 식수, 주거.
주민들과 이야기해보면 필요한 것이 너무 많다. 그리고 그것을 우선순위 하기가 너무 힘들다 그만큼 우리네 삶이 복잡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교육만 해달 한다고 모든 가난과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전혀 그렇지 않다.
단순하게 접근 할 수록 더 힘들어지고 결과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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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열정은 직원들의 압박으로 이어졌다. 그래서 한 번은 정말 똑똑해 보이는 기대감을 심어주는 직원을 채용했다. 그 직원이 주말에 현장으로 나갔는데 미리 프로젝트 비용을 받아서 가서 여차여차한 이유로 그 비용을 다 쓰지 못해 본인 통장에 넣어놓았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한편으로 수긍이 되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수긍이 안되기도 하는 행동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중간 매니저가 용납하지 못하면서 결국은 기관에서 내보내게 되었다.
그 직원은 소위 black mail을 써서 본사 대표 이메일에 써서 실력이 있는 본인을 디렉터가 마음대로 잘랐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나는 억울한 마음이 있었지만, 그것이 기관 대표가 감내해야 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웃어넘겼다.
사실 일을 하다 보면 주인의식이 불명확하다 조직에서 내가 주인인지 주민이 주인인지... 혹은 도너가 주인인지 도너의 돈을 전달해주는 기관이 주인인지 이런 불명확성은 혼돈을 낳는다 그래서 시스템을 만들고 우리는 그 시스템에 순응해서 사는 것이다.
" 시스템이 길들여진 나"
나는 사회적 시스템에 순응하면서 사는 나였다.
그래서 늘 사회 내에 정답만을 찾으려고 했다.
대학원을 간 후에는 취업 그리고 결혼 그래서 독립적으로 혼자 무엇을 해볼 용기가 감히 나지 않았다.
타인의 눈에서는 하고 싶은 것을 다하고 사는 것처럼 보이는 나였지만 내 안에도 나름의 공식이 있었다.
나는 하고 싶은 것을 열정적으로 추구하면서 살았지만 사실 그 열정적으로 추구는 안전한 바운더리 안에서의 추구였다.
조금 위험할 것 같은 것은 뛰어들지 않았다. 늘 타협점을 찾았다. 그래서 늘 나 스스로가 궁금해진다.
그때 내가 만약 아빠의 반대를 무릅쓰고 외고를 갔더라면 내가 우겨서 재수를 해서 더 좋은 대학을 갔더라면
만약 내가 영국에서 모대기업의 오퍼를 받았더라면? 우리의 인생은 순간순간 수만 많은 갈래의 선택지가 주어진다. 정면 돌파하면 원하는 것을 얻기도 했고 대부분은 내가 선택해서 그것이 내 선택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네팔에 조혼 문제가 심각하다.
그 시스템과 문화 안에서는 당연하다 그래서 아직도 찬반 논란이다 그들의 문화를 존중해야 하다 혹은 인권문제기 때문에 반대해야 하고 고쳐야 한다...라고
그 아이는 선택권 없이 결혼했지만 순응한 것도 순응하기로 선택한 것이다. 이란에서 인권운동가 여성은 살해 협박을 받고도 성인권을 위해 일하다 탄압을 받는다
이것은 정치적으로도 이용되기도 한다.
이처러 복잡하게 얽혀있는 우리네 삶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나'이다.
내가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가 부정적인 무의식에 잠식되어 선택을 하지 않을 때 혹은 선택하기를 미루거나 결단을 미룰 때 그에 따르는 결과는 나에게 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