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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초 Nov 24. 2020

내가하는 일은 '봉사'가 아니에요

내가 하는일은 ‘봉사’가 아니에요

봉사를 하시다니 대단하세요.

어떻게 그런 마음을 먹으셨어요 

내가 현장에 있는 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감탄 섞인 칭찬을 받는다. 나에게는 현장에서 개발 전문가로 일을 하는 것이 봉사라고 만나는 사람들은 생각한다.

어려운 나라에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은 ‘봉사’라는 단어 외에는 마땅히 떠오르지 않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이 일은 돈을 받고 일하는 직업중에 하나이다. 단지, 비영리이자 동시에, 사람들의 필요를 채우는일들을 하는 것이다. 

봉사라는 단어에서는 헌신 희생이 들어가지만 직업이라는 단어에서는 전문성과 댓가의 의미가 반영된다. 나는 매달 월급을 받고, 주거비용을 지원받는 파견근무자이다. 그래서 봉사와는 거리가 멀다. 봉사는 내 시간과 재능을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나는 댓가를 받고 일하고 직무를 진행하고 있기 때문에 차이가 있다. 

비영리에 관심이 없는 분들은 그저 해외에서 봉사하러 다니는 멋진 젊은이들이라고 생각을 하신다. 그래서 실제로 해외 현장에서 만나는 많은 어르신들께서 나에게 ‘봉사’를 하는 나를 대견하게 보신다. 

내가 비영리 기관에서 일하기 위해서 공부를 한것은 아니지만, 빈곤문제 차별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시작으로 내 인생에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기를 보내면서 영국에서 공부를 마쳤다. 공부만 하면 나는 스스로 고민하던 답을 얻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공부를 마치고 나면 모두가 당연시 여기는 빈곤문제에 대해 내가 할 수 있는 일, 내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명확하게 설 줄 알았다. 하지만, 수많은 자료와 책을 읽고 에세이를 쓰고 학교에서 토론을 해도 혼란만 가중되었다. 막시즘 사람들은 자본가를 비판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었고, 자본주의 시스템은 옳지 않다에 촛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럼 나도 좌편에 서서, 자본주의를 거세게 비판하는 일을 해야하는가? 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정책적 측면에서 접근하고 싶어서, 공부를 마치고 영국 내에서 취업 시도를 그만두고 한국으로 귀국했다. 그렇게 국책연구소에서 나의 석사 후 직장 생활은 시작되었다. 국책연구원에서 국가 경제 정책을 연구한다는 기대감에 정말 신이났다. 하지만 몇달이 지나고 나서 나는 알았다. 진짜 연구는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리고 호흡이 정말 긴 연구가 또 나에게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있는 것 같았다. 그렇게 모든 석사연구원들이 고민하는 박사진학을 해야할 것인지 다른 일을 해야 할지 기로에 섰다. 

사람이 환경에 놓여있는지가 정말 중요하다고 느끼는 것이, 내가 속한 연구원에서는 모두가 박사학위를 바라거나 갖고 있었다. 별다른 고민 없이 박사과정을 지원했고 장학금받는데 실패했다.장학금 없이 박사과정에 진학 할까 아니면 장학금을 주는 박사과정을 찾아야 할까...? 


같은 연구원내에 있는 동료가 어느 날 해외로 파견 나가는 비영리 단체 공고를 나에게 보내줬다. 비영리에서 내 커리어를 쌓는 것에 관심이 없었으나 경험을 쌓을 수 있다는 것에 큰 매력을 느꼈다. 동시에 정책연구는 맞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강력해서 바로 지원했다. 다행히 그 기관에서는 연구경력있는 사람이 선호했고 나는 필기부터, 프린젠테이션, 면접을 마치고 휴가 중에 합격 소식을 받는다. 


그렇게 나의 비영리 기관 현장 디렉터의 업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도미니카공화국이라는 당시 한국사람들에게 매우 생소한 나라에 파견이 되었다. 원래는 내가 봉사활동을 가봤던 케냐로 가고 싶었다. 내 석사 논문도 사하라사막 아래 아프리카 개발에 관련한 논문을 써서 아프리카 대륙에 발을 딛고 싶었지만, 기회가 왔을때 무조건 잡아야했다. 

그렇게 한달 뒤 홀로 파견되어 오피스를 찾고 이미 주어진 후원금으로 우물을 만들어여 했다. 개발학의 매뉴얼 대로 물이 없는 곳으로 가서 지역조사를 마치고 주민들이 공동으로 사용하고 관리 할 수 있는 우물을 지었다. 우물회사를 섭외하고 견적서를 비교하고 무엇보다 약속 된 시일안에 완료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했다. 

불과 한달전만 해도 연구원 작은 큐비클 안에 앉아서 데이터를 보던 내가 직접 픽업 트럭을 몰고 다니면서 시골에 물이 없는 곳에 주민들을 만나고 이야기하고 완전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당시 나는 스페인어를 전혀하지 못했기 때문에 통역을 구해서 다녀야만했다. 우물회사와 업무소통은 구글 번역기를 써가면서 이메일로 진행했다.  도미니카에 계시는 모든 교민들이 한국하고 똑같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 그렇게 빨리 진행하기 못할꺼에요라고 말하셨다.  놀랍게도 나는 시일안에 지역조사를 마치고, 공동 관리가 가능한곳 3곳에 우물설치를 2주안에 마쳤다. 그렇게 주 도미니카공화국 대사님을 초대해서 세레모니를 진행하였고 지역주민들은 환호했다. 그때 어떤 할머니가 나에게 축복을 해주셨다. 지역 주민들은 진심으로 좋아했다. 그들의 언어도 이해하지 못하고 나의 임무는 단기봉사팀들이 진행 하는 법한 첫임무였으나, 실제 주민들에게 필요한 곳에 필요한 물 자원을 제공한다는 것에 의의를 두었다. 

나의 촛점은 지속가능한 개발에 촛점이 맞춰있어졌기 때문이 나와 함께 고민하고 일을 진행해갈 현지직원 채용이 급선무였다. 공고를 내고 인터뷰를 보기 시작해서 3명의 직원을 뽑아 기관을 공식적으로 시작하였다. 기관에서 내려온 매뉴얼을 매일 밤마다 읽고 또 읽으면서 기관의 방향에 맞게 나의 철학에 맞는 프로젝트를  발굴하고 진행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운이 좋게 혼자서 다니면서 강도한번 당하지 않고 불미스러운일 없이 3년의 도미니카 생활을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혼자 시작한 오피스는 내가 결혼을 해서 아이티로 갈 무렵에는 약 40여명의 풀타임 직원들이 있었고 약 100여명이 넘는 지역 자원봉사자들이 있었다. 개인의 성취라기 보다는 기관의 서포트와 현지 직원들의 리더쉽이 결합된 성취였다. 

연구원 시절 이 현장 파견직을 지원할 때 나에게 주어진 프리젠테이션 주제는 직원들에게 어떻게 지역개발을 훈련시킬 것인가가였다. 나는 그때 준비했던 자료들을 꺼내들고 매일 직원들에게 프리젠테이션을 하면서 기관이 나아가야할 방향 기관의 비젼을 훈련했다. 그때 나와 함께 했던 직원은 지금도 연락을 주고받으면서 내가 도미니카공화국에 여행갔을 때도 개인적으로 만나는 친구가 되었다. 

한 조직을 만들고 이끌고 고민하면서 한 커뮤니티에 가장 필요한것 그들이 원하는 것을 알아내는것 그리고 자발적으로 참여를 이끌어내어 나중에는 기관의 도움없이도 자립을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복지로 따지면 복지 수혜자에서 세금을 내는 정도 개념이 될 수 있다. 실제로는 훨씬 더 복잡한 요소들이 들어가있지만 간략하게 단순화 하면 지역개발사업이란 그러하다. 

 예산을 수립 및 집행 모금을 하고 모아진 예산으로 지역에서 가장 필요한 것을 지원하고 모니터링하고 지역주민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는 것 그것이 내가 3년내내 했던 일이다. 한번도 갖아보지 못했던 전적인 책임감, 해보지 않은 분야까지도 다 하는 것이 힘에 겹지만 동시에 재미가 있었다. 동시에 모든 것이 급박했다. 나에겐 일이였으나 그들에게는 생계였다. 사람들에게퀄러티 있는 의사 진료를 제공할 수 있고, 전기가 없는 곳에 수력으로 전기를 제공할 수 있다. 돈에 대해 전혀 관념이 없는 사람들에게 돈을 모으고 목표하는 것을 쓰는 성취감을 맛보게 해 줄 수 있고 부모님이 일하느라 바빠서 거리에 방치된 아이들에게 방과후 프로그램을 제공해 줄 수있다. 학교가 문을 닫는 방학기간에 캐나다에서는 너무도 흔한 여름 캠프 프로그램을 마을 전체 아이들에게 제공할 수도있다. 책이 읽고 싶지만 구하기 힘들아이들에게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안전하게 와서 책읽고 쉴수 있는 공간들을 제공 해 줄 수 있다. 근본적인 불평등을 가난을 해소할 수는 없었지만 임시방편이지만 꼭 필요한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싶었다. 

내가 처음 도시빈민가를 방문했을 때 충격을 잊을 수가 없었다. 이미 대학교1학년 불평등한 세상을 위해 내가 일하겠다는 생각을 갖았을때의 충격보다 훨씬 더했다. 왜냐하면 나는 그들에게 필요한 것을 함께 고민하러 온 사람이였기 때문에 첫 방문해서 주민들과 이야기하면 도대체 난 무엇을 여기에 할 수 있을까, 무기력과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느끼던 그때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4km가 안되는 곳에 무수히 많은 양동집들이 빽빽하게 모여있었다. 가난하면 가난할 수록 강가 가까이에 살아야만했다. 비가 오면 홍수는 늘 겪는일이고 강에서 역류하는 물로 피부병 전염병 질병은 예사였다. 이들은 이 공간에서 나가고 싶은 마음이 없다 무단으로 자리를 차지하고 그것이 본인의 집이 되고 정부가 사고팔 수 있도록 한 그 타이틀을 사고팔면서 그안에서 머물러산다. 내 삶의 터전이고 내 고향인 그 곳을 정부는 몇년전부터 완전히 철거하고 새로운 계획을 세우고 있지만, 내가 도미니카공화국 떠난지 7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그대로 있다. 

 강위에 다리에는 수많은 차들이 오간다. 나는 그 다리를 수백번도 넘게 건넜다. 교통체증이 어김없이 있을 때 다리밑을 내려다보면 나는 마음이 늘 무겁고 답답했다. 나의 첫 지역개발프로젝트지역에 대한 사랑. 나아가 우리 기관이 할 수 있는 것을 무엇일지에 대한 생각.. 

전기가 없는 시골 코코아 농장에는 먹을 것이 천지이고 맑은 물이 흐른다. 전기가 없어도 그곳에는 한적하고 공기가 아름답다. 하지만 3시간달려 도심으로 오면 도시빈민지역은 악취가 난다. 사람들이 많아 질병에 걸릴 확률이 많다. 정부에서 주는 보조금으로 술을 먹는 사람들이 많고 늘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아이들이 정말 많다. 내가 처음 갔을 때 느낌은 전쟁이 휩쓸고 간 곳에서 볼 법한 현장이였다. 그곳이 그들의 삶의 터전이자 사랑하는 집이였다. 아이들은 맨날과 발가벗은 몸으로 더러운 물을 갖고 놀고 있었고, 돌보는 이모, 할머니.. 알 수 없는 이분들은 늘 낮에 플라스틱 의자를 갖고 집 앞에 앉아있는 풍경은 흔하다. 그래서 첫번째로 생각한게 커뮤니티 한가운데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제공하자였다. 프로포절을 쓰고 후원을 받아 커뮤니티 센터를 만들었다. 나는 이 지역 사람들을 알지도못하고 누가 믿을 만할지 전혀 알수가 없었다. 우리 직원들로만 역부족이였다 그래서 동네 청년중 일단 젊고 대학을 갈의지가 있고 돕고자하는 사람들중 자원봉사를 지원받았다. 뜨거웠다. 많은들이들이 지원을했고 현지 직원들과 인터뷰를 하면서 자원봉사자를 추리고 이들과 같이 커뮤니티센터를 짓고 도미니카 냐 한국 기업전기회사 지원을 받아 2층 확장공사까지 진행가능했다. 


그렇게 완공이 되고 직원들이 일하는 오피스로, 방과후 활동을 제공하는 곳으로 2층은 방문의사가 진료보는 곳으로 도서관으로 활용할 공간으로 탄생했다. 어떤 부모님은 직접와서 왜 돈을 주지 않느냐라고 따지는 경우도 있었고 자신의 집을 보여주면서 얼마나 어려운지 자기 상황을 토로하는 사람도 많았다. 나를 환영해주는 분들도 계셨다. 공간을 활용하는 프로그램외에도 각자 집 공간을 활용한 저축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미혼모 집 화장실 개선사업, 방역사업, 학교를 한달간 빌려서 여름캠프 (이제는 시그니쳐 프로그램이 된) 당시 약 1천여명의 아이들을 후원받아 이 모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지역 자원봉사자들이 현장 코디네이터 직원이 되고 현장 코디네이터에서 대학을 다니고 더 공부해서 헤드오피스 직원이 되고 매니저까지 되는 과정을 보면 정말 감동이다. 작년에 전세계직원이 모이는 컨퍼런스에 참여했는데 그때 자원봉사자에서 현지 직원이 된 친구가 와서 인사를 했다. 그리고 나에게 기회를 줘서 정말 감사하다고 이야기했다.현재 직원은 도미니카 본부에서 어카운팅 매니저로 일을 하고 있다. 이런 감동의 일들이 나를 지속적으로 개발현장에 참여하도록 부르는 것 같다. 


누군가가 꿈을 꾸게 할 수 있도록 하는 것 기회를 제공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지속가능한 발전이라고 생각한다. 모든 변화의 시작은 개인에서 일어나야한다고 믿는다. 내가 새로운 삶을 꿈꾸고 기회를 기다리고 그 기회를 주저없이 선택할 때 내가 생각하지 못한 길이 열린다. 


그렇게 나의 길도 열렸고 동시에 그 직원의 길도 열렸다. 만들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은 쉽고 안전하다. 하지만 만들어지지 않은 길을 걷는 이들 때문에 모두가 꿈을 꿀 수 있다. 나도 길을 만들 수 있구나 그렇게 되면 친구도 지인들도 그 길을 따라갈 수 있고 동시에 길을 만들어가 용기가 생기는것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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