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미니카공화국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여유가 넘친다. 약속시간 1분을 앞두고도 서두르지 않는다. 그들의 일상은 특유의 느릿느릿한 걸음과 환한 미소로 채워져 있다. 어느 누구 서두르는 사람이 없다. 반면 내가 20년 넘게 자란 한국의 사람들은 성격이 급하고 모르는 사람에게 웃지 않는다. 약속시간을 칼 같이 지키려고 한다.
365일 따사로운 햇살이 있는 도미니카공화국에서의 일상 속에서 매일 듣는 것은 바로 바차타와 메렝게 음악.
매일 밤 어김없이 동네 곳곳에서는 바차타가 흘러나오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않는다. 낮에 업무에 시달리고 밤에 돌아와서 한국과 화상회의라도 하는 날에는 이 노랫소리가 죽도록 싫었다. 나는 혼자 심각하고 일을 열심히 하고 힘든데 도대체 이들은 어디에서 여유가 나오고 즐거운지 매일 밤 그들이 즐기는 음악이 싫었다.
열심히 일하거나 직원들의 뜻에 따라 움직이지 않을 때 나는 매일 밤마다 공허감에 시달렸다. 펀드가 오는 한국에 보고를 마치고 난 후에는 더더욱 마음이 허했다. 이런 허함을 달래줄 길이 없어 핸드폰을 들여다보다가 늘 일찍 잠에 들었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나는 늘 밤 10시만 되면 잠을 잤다. 몸이 스트레스는 받고 있으니 잠으로라도 풀어야겠다는 의지가 강했던 것 같다.
도로에서는 차 안에 큰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는 예사였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캐나다와 또 생각해보면 굉장히 다른 모습이다. 내가 사는 동네는 다람쥐가 지나가는 소리가 들릴 정도로 고요하다.
한때는 도미니카 사람들과 어울려보고자, UN에서 일하는 (일 관계로 만났지만 친구가 된) 이탈리아 친구의 초대로 바차타 춤을 추는 곳에 가보았다. 주차장에는 차들이 가득하고 기둥만 있고 대충 얹어놓은 듯한 천장 아래 수많은 젊은 남녀가 뒤섞여있었다. 한쪽에서는 도미니카공화국의 자라인 프레지텐떼 맥주 큰 병(Jumbo)을 사람들이 얆디얆은 플라스틱 컵에 따라서 마시고 있었다.
혼자서 현장에 있고 안전문제게 민감해서 나는 일로 출장을 가면 나는 술을 일절 마시지 않는다. 소수력 프로젝트를 같이 진행하면서 알게 된 일 관계로 만나 친구가 된 이 친구와 술을 마신다는 게 조금 이상하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하지만 나의 도미니카공화국의 찐 경험을 위해 바차타 춤 장에 나를 초대해주었다. 클럽과 같이 큰 음악이 야외에 흐르고 모두가 자연스럽게 음악과 춤이 하나가 되어 즐기고 있는데 나만 부자연스러웠다.
자꾸만 나는 여기에 속하지 않는 이방인 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이 곳에 일만 하러 온 것일 까? 그들이 잘 살기를 원해서 사명 감을 갖고 왔는데 매일매일 이렇게 행복 하지 않은 것은 정상일까? 분명 이탈리아에서 나고자란 이 친구도 도미니카공화국 문화와 이질감이 있을 텐데, 이 친구는 본인만의 것을 지켜가면서 잘 융화가 되어 보이는 듯했다. 이탈리아 친구랑 지방 출장을 몇 번 갔는데 지방 사람들이 정성스럽게 만들어준 밥이며 치킨이며 일절 입에 대지도 않는다. 하지만 도미니카인 남자 친구와 동거를 하면서 꽤나 오랜 시간 도미니카공화국에 있었다.
조금은 냉정해 보이기도 혹은 진지해 보이는 이 친구가 도미니카 남자 친구와 바차타를 추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런 방식으로도 이 나라에 융화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들의 삶의 방식을 흉내 내지 않아도 되는구나. 같이 옆에서 융화되어 내가 갖고 있는 직업 소명을 이루는 것도 한 삶의 형태이구나. 나의 것을 유지하면서도 조화를 이루면서 살 수 있다는 생각이 스칠 즈음 누군가 바차타를 추자고 내 팔을 잡아끌었다.
재밌어 보이고 하고 싶은 건 무조건 하는 나 역시도, 스포츠 댄스를 대학교 교양 과목으로 접하고 나서 직장을 다니며 홍대에 살사 동호회를 들어서 몇 달은 살사에 미쳐 살았다. 그때 살사 바에서 어깨너머로 배웠던 바차타를 췄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 같이 빵빵한 엉덩이에 타고난 춤 선과는 거리가 멀지만 손끝을 부여잡고 바차타와 살사를 한동안 췄다. 음악은 신기하다. 잘 못 추는 춤이지만 어색하고 쭈뼛거리던 생각은 사라지고 그냥 이 파트너와 어떻게 잘 호흡을 맞추며 출 수 있을까 지금에 몰입하게 된다. 그래서 음악은 내 슬픈 마음을 극대화시키기도 하고 내 기쁜 마음을 극대화시키기도 하다. 그래 한번 정도의 경험이면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동양 여자인 나는 도미니카 사람들의 관심을 충분히 끈다. 길을 가면 매일매일 사람들이 나를 부른다. 거기 중국 여자애 Hola Chinita.. 그곳에 오래 산 한국인 친구는 늘 발끈한다. 그리고 무섭게 대응한다. 나 같은 경우는 그냥 무시한다. 친근감의 표시 인사라고 생각하고 그냥 hola 하고 지나가기도 한다. 그렇게 길에 지나가는 모든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여유는 지금까지 내가 경험해본 모든 것을 통틀어 이곳이 최고이다.
편견과 차별은 내 경험에 근거해서 만들어진다. 내가 3년 동안 살면서 경험으로 나 마음속에는 어느 순간 편견을 만들어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들의 습관적 말이 한 가지 또 있다. Si Dios Quiere 한국말로 직역하면 신께서 원하신다면… 꽤나 기독교적으로 들리는 말인 듯 하지만 문화적인 면에서는 오늘을 산다. 내일 일은 신께 맡기다는 전제가 깔려있는 듯하다. 그리고 나의 의지는 저어 멀리 가있다. 나의 삶에 내 의지를 반영하지 않겠다는 말도 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마무리를 짓는 단기적 프로젝트에는 주민 도서관 개관식, 커뮤니티센터 준공식 등 크고 작은 행사들이 있다. 공지를 하고 다 같이 모이는 자리니 신신당부하고 몇 시까지 어디에서 만나자 고해도 제시간에 나타나는 사람들 거의 드물다. 예를 들면 우리 내일 3시에 만나요 하면 당연하죠 ‘Claro que si’라고 대답을 하지만 생략된 말이 있다. Si Dios quiere.. 신께서 원하신다면..
입버릇처럼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사말로 잘 자 다음에 보자 라고 말하면 습관처럼 신께서 원하시면.. 신이 원하지 않아도 만날 수 있고 내가 의지를 가지면 진행될 수 있는 일이 많다. 그 덕분에 모든 일처리는 1시간은 기본 혹은 반나절을 보내야 한다. 은행 안에 사람이 아무도 없어도 나는 1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공공기관에서 무조건 밖에서 줄을 서서 4시간을 기다려서 필요한 서류를 뗀 적도 있다. 시간은 금이라는 말은 통하지 않는 나라이다. 혼자 바쁘고 발을 동동 굴려본 듯 전혀 필요 없다. 나 혼자만 바쁘고 그들은 바쁘지 않으니. 그중에 10명 중에 1명을 일을 엄청 빨리 처리한다. 그런 사람을 만나면 그날은 엄청난 행운이 있는 날이다. 비효율과 시간 개념이 없는 이곳에서 다들 어떻게 사업을 하고 일을 진행하는 것일까? 일주일면 될 일이 1년이 가도록 진행이 되지 않을 때도 있다.
이런 답답함 속에서 고통은 누가 받는가. 바로 내가 받는다. 성격이 원래도 급한데, 이런 내 성격에 내가 혼자 힘든 상황을 여러 번 겪고 나서는, 조금씩 포기하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20여 명이 온다고 약속한 장소에 단 한 명이 나타나도 허허 웃고 마는 나를 발견한다. 이들의 신 중심적인 사고를 보면 그다지 신을 원하는 것에 의존하고 ‘나’는 빠져있다. 물론 다음날 무슨 일이 생기면 약속을 못 지겠지만 나의 의지가 빠진 채 신께만 의존하는 것은 신도 원하시는 삶의 방식이 아닐 것 같다는 생각을 하지만 이렇게 신에게 의존하고 음악을 즐기면서 사는 나와는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들과 3년을 보냈다는 것이 조금은 신기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