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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초 Dec 05. 2020

스스로를 증명하고 싶은 마음


모두가 잘사는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으로 20대에는 아낌없이 자기 계발에 힘을 썼다. 소위 원하는 국제기구를 들어가 위해 가장 기본인 언어 (영어)를 공부했고 그리고 더 공부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들어서 국제정치경제를 공부하러 영국으로 떠났다. 


세계빈곤은 어디에서 오는가. 지금 이 자본주의 사회안에서 부의 불평등을 해소 할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이있는가. 자본주의는 어떻게 해서 생겨났는가? 누가 이득을 보고 누가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인가? 

그럼 부의 불균형은 해소 할 수 없는가? 


이런 혼자 고민해도 티도 안날 주제들을 갖고 치열하게 읽고 토론하고 보고서를 쓰면서 대학원생활을 마쳤다. 심도있는 공부를 하고나면 내가 갖고 있던 질문에 답을 찾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나는 그럼 이 자본주의가 사람들을 빈곤하게 만드니 내가 할일은 뭐야? 하는 물음에 시달렸다. 


공공정책분야에서 일하면서 사람들을 이롭게 하자라는 순진한 생각을 기반으로 열심히 경제적으로 사회으로 소외 된 사람들을 위한 일을 하고 싶었다. 동시에 경제적으로 접근하는 분야에 일하고 싶었다. 자연스럽게 나는 경제분야 연구가 이어지는 국책연구원에 눈을 돌리게 되었고. 연구인턴이라는 제도로 시작하였다. 역시 상상과 현실은 달랐다. 내가 하는 일은 박사연구원들의 보고서를 위한 자료조사가 전부였다. 불평을 하는 것은 아닌데 이상하게 마음에 성이 차지 않았다. 


성격이 급한 탓에 내가 깊게 참여할 수 있는 연구프로젝트가 있는 곳에 가고싶었다. 그래서 에너지경제를 연구하는 곳에 이직을 했다. 분야는 내가 정할 수 없었다. 왜냐면 나는 그야말로 갓 석사를 졸업한 새내기에 내가 연구분야를 선택할 수 없는 석사연구원이였기 때문이다. 가까이서 연구를 어떻게 하시는지 보고싶었다. 하지만 내앞에 떨어진 일은 온 세계 각종 자료를 집계하고 정리하는 일이였다. 


그것으로 역시나 난 만족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 일단 영국유학하면서 졌던 빚부터 갚자는 마음으로 매달 나오는 월급의 절반 이상을 학자금을 갚는데 썼다. 그렇게 갚아야 할 학자금이 0이  되었을 때 박사를 해야할지 다른곳으로 이직을 해야할지 고민을 해야했다. 내가 과연 연구하는 일이 내 몸에 맞는 일일까 고민했지만 일단 기회가 오면 움직이자는 신념으로 박사 연구 계획서를 써서 영국에 환경경제연구로 저명한 교수님께 게획서를 제출했다. 친절하게 피드백을 해주셨고 그에 맞춰서 연구계획서를 수정해서 제출했더니 바로 박사과정을 시작하자는 말씀을 해주셨다. 


이렇게 쉽게 박사과정을 들어간다고? 의아했지만 문제는 등록금이였다. 그래서 장학금 제도가 있냐고 물었고 내가 지금 당장 지원 할 수 있는 장학금은 영국정부에서 주는 장학금이였다. 결과는 불합격. 나는 너무 가난하게 유학을 해서 자비로 박사를 갈 마음이 없었다. 전혀 없었다.  가난하게 4년을 살 자신도 없었다. 그래서 정중히 나를 거두어주시겠다는 영국에계신 교수님께 장학금이 되지 않아 못간다고 말씀드리고. 다음 기회에 연락을 드리겠다고 했다.  


어차피 연구를 하면서 사는게 나에게는 맞지 않은 길이였을지도 모른다며 스스로를 위안했다. 사실 저개발국가에 가서 개발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싶은 마음이 늘 있었는데 유엔기구에 문은 너무도 높게만 느껴졌다. 제2외국어도 잘해야 할 것만 같고 경력도 더 많아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던 중에 국내 큰 비영리기관에서 아프리카 개발 담당자를 뽑는 공고를 같은 연구원에서 일하는 언니가 보내줬다. 직무설명을 보니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정확히 일치했다. 


1차 서류 2차 필기시험 3차 영어프리젠테이션과 간부 면접 이렇게 꽤나 까다롭게 오니는 전형을 진행했다. 영어프리젠테이션 시험과 면접을 보는 날은 혼자 태국으로 여행을 가려고 휴가를 잡아놓은 날이였다. 나는 정장원피스를 사서 입고 여행캐리어를 끌고 프리젠테이션과 면접을 마쳤다. 간부님들이 너무 좋은 인상이였고 나의 대답을 온화한 미소로 듣고 계셨다. 몇명을 뽑지 않은 자리에 꽤나 많은 지원자들이 있었다.  


일단 나는 최선을 다했으니 휴가를 떠나자. 바로 공항으로 가서 면접용원피스를 캐리어에 넣고 태국 방콕으로 몸을 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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