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14] 서울 나들이

by 은가비

나는 경기도 수원에 살고 있다. 2014년에 이사왔는데 그동안 살아보니 나름 여기저기 가기에 좋은 위치이고 집주변에 웬만한 건 다 있어 생활에 불편함이 없다. 서울가는 버스를 타는 곳도 걸어갈만하고 지하철 역까지는 걷기에 좀 걸리지만 버스로는 2정거장 거리라 마음먹고 운동삼아 걸으면 걸을만하다. 평소에는 주로 운전을 하고 여기저기 다니지만 서울에 갈 때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다. 혹시라도 맥주를 한 잔 하게 될 수도 있고 주차하는 게 쉽지 않으므로 몸은 좀 힘들어도 마음이 편한 쪽을 택하게 된다.


오늘은 서울에서 약속이 있어서 외출을 했다. 보고 싶은 전시가 있어 약속 장소와 전시장을 찾아보니 그리 멀지 않았다. 일석이조, 일타이피! 나간김에 하고 싶은 걸 다 하고 오자. 좀 일찍 나서서 뱅크시 전시회를 혼자 느긋하게 관람하고 약속 장소로 가면 될 것 같아서 시간과 동선을 생각해두고 움직였다. 혼자 놀기 잘 하는 나는 전시회를 혼자 관람하면서 내 자신이 참 기특했다. 이렇게 알차게 하루를 잘 보낼 생각을 하다니 말이야.


뱅크시 전시회는 생각보다 작품 수가 많아서 보는 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그의 작품이 내포하고 있는 비판적인 시각과 우리를 딜레마에 빠지게 하고 질문을 던지며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하는 내용이 많다. 진지하게 생각이란 걸 다시 하게 되었다. 어제 밤에 뱅크시 그래픽 노블을 읽었는데 내용이 쉽지 않았다. 그래도 관련 내용을 보고 와서 좀 도움이 되기도 했고 책에서 설명했던 작품들을 전시장에서 보니 반갑기도 했다.



여유가 있을 줄 알았는데 관람하다보니 어느새 지인들과 만날 시간이 다 되었다. 서둘러 움직였다. 전시장은 종각역 근처였고 약속 장소는 망원동이다. 핫플답게 사람이 정말 많았다. 망원동 전통시장 안에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관광지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다. 아기자기하고 예쁜 카페도 많고 주택을 고쳐 무심한듯 인테리어한 식당도 많아서 신기하게 구경했더니 서울 사람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며 나에게 경기도민 티 좀 그만 내라고 한다.


오늘 만남의 목적이었던 중요한 계획과 일정에 대한 이야기를 마무리하고 밥을 먹으러 갔다. 삼겹살에 얼음잔 맥주를 먹자고 하는 지인들에게 나는 안먹겠다고 했다. 술을 못 마시는 건 아닌데 알콜이 조금만 들어가도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이라 지하철 타고 가렴면 챙피하니 안마시겠다고 했더니 얼마나 구박을 하는지. 서울 사람들은 너에게 관심이 없다며 그냥 마시라고 난리난리를 쳐서 결국 한 잔 했다. 시원해서 너무 맛있었는데 중간에 슬러시로 변하는 맥주를 홀짝홀짝 들이키며 속으로 생각했다. 안 마셨으면 후회할 뻔 했네. ^^


좋은 사람들과 맛있는 음식, 시원해진 가을 바람에 얼음잔 맥주까지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 가을밤인가.


배부르게 먹고 마시고 나오니 선선해진 바람에 감탄이 쏟아졌다. 진짜 여름 끝났구나, 반갑다 가을아, 드디어 왔구나! 이 기분을 놓치고 싶지 않아서 합정역까지 천천히 걸었다. 걷는 내내 "아~ 좋다! 너무 시원하다." 를 연발하며 가을밤을 충만하게 누렸다. 지하철역까지 걷고, 환승하며 오르락내리락 계단을 걷고, 버스로 갈아타고 내려서 또 걷고 했더니 오늘 왕복으로 움직인 거리가 만보가 넘었다. 평소엔 걸음수가 정말 얼마 되지 않는데 이렇게 서울 나들이를 한 번씩 하면 만보가 넘곤 한다. 주변에 스마트워치 차고 하루 만보 채우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생각보다 만보를 채우는 건 쉽지 않다. 사십 대 이후에는 걷기도 의식적으로 목표를 가지고 해야하는구나.


어쨋든 오늘 서울 나들이는 얻은 게 많아서 참 기분이 좋다. 내일부터는 바쁘게 움직여야 한다. 제주 여행 준비도 해야하고 미뤄놓은 일들도 처리하고 잔뜩 주문해놓은 책들도 읽고 자료 조사도 좀 더 계획성 있게 해야할 것 같다. 앞으로의 내가 어떻게 될지 궁금해진다. 나에게 어떤 능력이 있을지, 내 안에 있는 잠재능력이 제발 나와주면 좋겠다. 영감을 얻기 위해 노력하고 직접 해보면서 부딪치고 깨지며 노하우를 터득하며 그렇게 성장하는 길로 들어서고 싶다. 잘 할 수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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