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향다 Jul 22. 2024

#1. 나는 왜 나를 전업주부라고 소개할 수 없었나

육아회색지대 - 번외

 


 육아회색지대 인터뷰를 마무리 한지도 1년이 다되어 갑니다. 그동안 만났던 인터뷰이 삶의 이야기를 통해 제가 얻은 통찰들을 정리하고 싶어 15명의 인터뷰이들의 일부 인터뷰를 발췌해 몇가지 주제로 엮었습니다. [부켓]이라는 경력단절여성들을 위한 문화플랫폼에 '맘터뷰' 라는 이름으로 연재해 왔고 이제 해당 플랫폼에서의 완결까지 앞두고 있는터라 제 개인 브런치에도 해당 글을 옮겨봅니다. 


 12년 워킹맘 생활을 정리하고 전업주부가 되었지만, 아이들에게 엄마가 일을 그만두었다고 공식적으로 선언한 적이 없었다. 무슨 일이든 조만간 하게 될 것이라는 스스로에 대한 안일한 믿음이 있었다. 나에게 주어진 공백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모르겠지만 뭐라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갈피를 잡지 못하는 마음으로 인터넷의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검색하다 보면 어느새 아이들이 돌아오고 식사를 챙겨내야 할 시간이 되었다.      

대기업 MD로 10여년간 근무하고 퇴사한 랄라 역시 그러했다.     


출처 : unsplash

Q. 퇴사하고 나서 힘들진 않으셨어요?

A. (랄라) 너무 힘들었어요. 거의 매일매일 자아분열을 겪는 상태였죠. 저는 제가 곧 다른 일을 찾을 줄 알았거든요. 안일한 생각이기도 했지만 퇴사 소식을 들은 주변 지인들은 모두 ‘네가 가만히 있겠니, 인형 눈이라도 붙이겠지’라고 했을 정도로 저는 일하는 모습이 당연한 사람이었어요. 그랬던 제가 소속도 없고, 집 말고는 갈 곳도 없는 내가 되었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힘들더라고요.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는 모습의 제가 되어있었어요. 직업을 드러내야 할 순간이 많지는 않지만 종종 설문조사나 어딘가 가입하는 과정에서 ‘주부’라고 써야 할 때가 오면 굉장히 싫더라고요. 내가 주부가 되는 것을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때는 괴로웠던 것 같아요. 결국 내가 퇴사를 선택했고 그래서 주부가 된 것인데 나는 왜 괴로워하고 있나 하는 자책감과 함께요.     


Q. 주부가 된다는 건 왜 두렵게 느껴졌을까요?

A. (랄라)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먼저 사회적인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게 가장 큰 것 같아요. 그래서 저 역시도 제 가치를 인정할 수 없었겠죠.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의 쓸모를 증명하며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는데, 퇴사하고 주부가 되면서 나의 쓸모를 증명할 수 있는 수단이 없어졌다는 것도 크죠. 그리고 지금의 주부로만 대변되는 이 정체성이 언제 끝날지 모르겠다는 두려움도 있었어요.

 생각해 보면 우리가 장래 희망을 주부라고 쓰는 사람은 없잖아요? 그 지점부터 우리는 주부를 직업이라고 인정하지 않을뿐더러 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엄마가 저를 낳고 일을 그만두셨었는데, 저는 그게 싫었거든요. 생각해 보면 엄마는 집안일을 계속 해왔고 간헐적으로 가게도 하고 무언가를 항상 해오셨는데 그게 내세울만한 어떤 직업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나는 독립적인 경제력을 갖춘 내가 되고 싶었고 아이한테도 좋은 롤모델이 되길 바랐었죠.    

출처 : unsplash


 독립적인 경제력, 그것은 성인이 되고 나면 당연히 갖추어야 할 어른으로서의 자질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육아와 함께할 수 있는 경제활동은 생각보다 많지 않았다. 그리고 그마저도 어렵사리 기회를 얻고 나면 또 다른 사회적 담론과 맞서야 했다.

출산 후 3년간의 공백기 끝에 계약직으로 재취업을 하게 된 호롱 역시 육아를 하는 사람들이 마주해야 하는 사회적 시선을 단적으로 보여주었다.     


Q. 육아로 인한 공백도 있으셨는데 일자리를 찾기가 쉽진 않으셨을 것 같아요

A. (호롱) 취업 과정에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 어렵사리 잡은 면접에서 어떤 나이 있으신 남자분이 ‘애가 이렇게 어린데, 애 때문에 일에 지장을 주면 안 되죠!’라고 하시면서 화를 냈던 일이에요. 

 모순되게도 엄마들이 일을 안 한다고 하면 ‘집에서 뭐 하냐, 애 어느 정도 컸으면 일하러 나가야지’하고 직장 다니면 ‘얼마나 벌겠다고 일을 나가냐, 요즘처럼 험한 세상에 애 키울 시기에 애를 제대로 돌보아야지’ 해요.               

출처 : unsplash


Q. 전업주부를 벗어나 일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한 계기가 있을까요?

A. (호롱) 주변에 전업주부 하는 친구가 있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멘탈이 정말 강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어쩌면 직장으로 도망친 사람인지도 모르겠어요. 스스로는 아이를 돌보는 일도 너무 힘들고, 나를 노는 사람 취급하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견디기 어렵고, 내가 밤 11시까지 집안일을 하고 쉼 없이 움직여도 남편도, 심지어 나 조차도 뭘 잘했다고 알아주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빨리 일터로 도망쳤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그런 의미에서 전업주부를 하면서 집안일에서 의미를 찾고 전업주부에 대한 부정적인 사회의 시선을 개의치 않을 수 있는 친구가 새삼 대단해 보이더라고요.      


 요즘에야 가사노동이나 육아를 바라보는 시선이 많이 변화하고 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하더라도 사회적 분위기는 물론 우리 자신조차도 집안일은 그저 안정적인 가정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부수적인 기능에 불과하다고 생각하곤 했다.

 사적인 영역인 가정주부의 삶은 돈을 벌 수 있는 활동이 아니니 직업도 아니고 일을 한다고 말할 수도 없다고 치부되곤 했다. 그러나 그 사적인 영역의 안락함이 유지되기 때문에 공적인 영역에서 실질적인 이득을 얻고 권력을 누리는 주체가 존재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나면 ‘전업주부’라는 말은 정말 말 그대로 집안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었다. 

 육아와 집안일, 그것을 전문적으로 하는 이들의 삶은 어떠한 모습일지 궁금해졌다. 일과 육아 사이 그 어느 회색지대에서 방황하지 않고 육아를 온전히 자신의 ‘일’로 받아들인 그 마음과 생각들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