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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다 Jul 25. 2024

#5.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가(完)

육아회색지대 - 번외


오늘은 솔직한 저의 이야기를 드러내야 하기에 조금 더 편한 어투로 ‘육아회색지대’ 마지막 글을 완성해 보려고 합니다.      


 육아회색지대라는 인터뷰를 시작한 목적은 분명했습니다. '일과 육아에 대한 다양한 사람들의 경험과 생각을 들여다보고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동시대의 비슷한 일을 겪는 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달하는 것'이었습니다만, 무엇보다 저는 그 과정속에서 일과 육아에 대한 저만의 정답을 찾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에 드는 답을 찾으려 할수록 방황하게 되는 아이러니에 빠졌습니다.    


출처 : Unsplash

 모든 인터뷰이의 삶이 그 나름의 향기가 있어 그들의 일과 육아를 자세히 들여다보는 동안은 저마다의 향기에 온전히 취해 있었습니다. 직장 다니는 이들을 만나 인터뷰를 하고 나면 ‘아, 나도 일 다니고 싶다.’가 되었다가 육아에 몰두하는 이들을 만나고 나면 ‘온전히 내 힘으로 아이들을 키워내야지’가 되었습니다. 


그러다 문득 어떤 인터뷰이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일과 육아를 고민하는 사람들도 어떤 경계를 기준으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나는 엄마가 되어서 다른 세계로 넘어왔는데, 자꾸 엄마가 되기 이전의 삶으로 넘어가려고 하는 거잖아요. 더 이상 나의 삶의 위치는 그곳에 있지 않아요. 아이를 낳은 건 산이 생긴 거예요. 이 큰 산을 얻어 놓고 산 뒤에 있는, 육아하기 전에 내가 정성을 들여서 가꿔 놓았던 정원으로 자꾸 돌아가고 싶은 거잖아요. 이제 기존의 정원과 산을 한 풍경에 같이 담아서 봐줘야 해요.”

출처 : Unsplash

 아이가 태어난다는 것은 삶에 커다란 산 하나가 생기는 것과 같았습니다. 출산 전의 삶은 잘 정돈된 공간 위에 내가 원하는 풀과 꽃을 심고 물을 주어 예쁜 정원을 가꾸는 행위였다면, 출산 후의 삶은 세상에서 처음 만나는 커다란 산과 마주하고 그 산을 잘 보존해 내는 일과 같았습니다. 혹시 모를 산불이나 병충해의 피해로부터 지켜내면서 적당한 햇살과 바람, 때 맞춰 내리는 빗줄기를 기다리는 일. 산속에서 저마다 움트는 생명력에 감탄하며 날마다 새로워지는 풍경에 울고 웃는 일상이 내 앞에 생긴 것이었습니다.      


 육아회색지대에서 방황하는 저는 앞선 인터뷰이의 말처럼, 달라진 내 삶의 풍경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때때로 밤낮없이 일에 몰두하고 멋지게 성과를 이뤄내던 출산 전의 제 모습을 그리워했습니다. 아이들에게 쏟는 에너지를 일에 쏟을 수 있었다면 어땠을지 상상하며기대에 미치지 못한 성과들을 아쉬워했습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숨 막히는 성과주의의 사회생활을 뒤로하고 가부장제의 수혜자로서 일상의 소소한 기쁨들을 누리며 살고 싶어 하는 제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공존할 수 없는 모순된 욕망이 내 안에 뒤엉켜 있었습니다. 


 언제까지나 엉켜버린 욕망의 실타래를 두고 볼 수는 없어 집요하게 하나하나 풀어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내 그렇게 모순된 욕망 아래에서 혼란스러워야만 했던 이유가 드러났습니다. 


 그렇게 일에서도 육아에서도 부족함을 느끼며 회색지대에 있을 때만 이상적인 내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일을 할 때는 ‘애들도 제대로 못 돌보는 나’라고 비난하고 육아를 하면서는 ‘집에만 있으면서 돈도 못 버는 나’라고 나무라야 ‘(그 어느 곳에도 존재하지 않는)아이도 잘키우면서 일적으로도 성공한 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에 놓여 있을 수 있었습니다. 환상 속의 나를 좇는 일을 그만두고 현실에 있는 나를 제대로 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나를 외부의 잣대로 끊임없이 평가하면서 더 나은 내가 될 수 있다고 믿기만 했지, 정작 내 안의 진짜 나는 제대로 바라봐 준 적이 없었습니다.

출처 : Unsplash


 어린아이처럼 하나씩 스스로에게 물어보았습니다. ‘나는 무엇을 좋아하지? 나는 무엇을 잘하지? 나는 무엇을 하고 싶지?’ 인정받기 위해 혹은 남들이 하니까 어쩌다보니 이렇게 30여년을 살아왔다고 생각하니 아찔해졌습니다. 

 내가 느끼는 것들을 편안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내가 감각하고 생각하는 것들을 외부의 기준으로 폄하하고 있지는 않은지, 타인의 생각임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너무 가까이 있어서 내 것이라고 착각한 것은 없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이제 저에게 중요한 것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느냐’가 아니라, ‘그것을 내가 어떻게 느끼고 해석하는지’가 되었습니다.      


 육아회색지대 인터뷰에서 만난 15명의 삶이 하나도 빠짐없이 빛나게 느껴진 것은 그들이 어떤 삶을 살든 그 삶을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방식이 각자의 삶에서 너무도 당연하고 의미 있었기 때문이었음을 다시금 되새겨 봅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통해 저도 저만의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의 삶도 감히 그 누구와 비교할 수 없는 고유한 삶임을, 그래서 당신 삶의 어떤 장면은 반드시 누군가에게 의미 있는 기록이자 교훈이 될 거라는 확신의 말을 건네고 싶습니다.      


당신의 오늘을 궁금해하며 지금까지 [육아회색지대] 향다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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