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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향다 Sep 13. 2024

삶으로 가르친다는 것 – 엘레나

엄마의 꿈 인터뷰집

#62년생

#25년 직장생활 후 퇴직


Q. 엘레나 님은 어릴 때 꿈이 뭐였어요?  

선생님이요. 우리 어릴 때는 선생님 되는 게 직업으로 최고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시골이고 다들 어렵게 살다 보니 대학에 진학하는 건 드문 일이었죠. 특히 딸들은 우리보다 더 잘 사는 집도 초등학교 밖에 안 가르쳤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엄마는 ‘아들이고 딸이고 공부하려고 하는 애는 시키겠다.’ 하셨었죠. 그래서 그 시대사람치곤 드물게 내가 고등학교까지 나왔어요. 대학도 가고 싶었지만 없는 집, 5남매 형편에 쉬운 결정은 아니었고, 장학금을 받을 정도의 성적도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냥 막연하게 선생님이라는 꿈이 있었다 해요.

지금은 애 키우면서도 일 하는 엄마들이 많지만 우리 때만 해도 그렇지 않았어요. 그냥 집에서 살림하고 애 잘 키우기를 바랐죠. 나도 크게 다르지 않았었는데 IMF를 만나면서 일을 할 수밖에 없게 됐어요. 딱 1년만 일 하자 했었는데 어쩌다 보니 25년을 일했네요.


Q. 직장 다니시면서 아이들을 키우신 거네요?
   맞아요. 처음 직장 나가던 때에 둘째가 5살이었요. 그때는 토요일에도 일을 나갔으니, 애를 집에 두고 나가야 하잖아요. 애한테 ‘아가야, 엄마 회사 가야 하는데 비디오 보고 있으면 형이 학교 갔다가 바로 올 거야 놀고 있어’ 하니까 애가 ‘무서워요. 엄마가 밖에서 문 잠그고 가세요’ 해요. 이제 거실에 비디오 틀어놓고 나가가지고 열쇠로 현관문을 ‘딸깍’ 잠그는데 ‘우다다다’ 안방으로 뛰어가는 소리가 들려요. 비디오는 안 보고… 무서우니까…. 그 발자국 소리를 뒤로하고 계단을 내려가면서 ‘내가 왜 이렇게까지 일해야 하나’ 하는 생각에 가슴이 아팠죠. 아직도 그 안방으로 뛰어가던 작은 아이의 발자국 소리가 가슴애 맺혀있어요. 큰 애고 작은 애고 항상 가방에 매달아 줬던 현관 열쇠도 아직까지 눈에 선해요.


Q. 그렇게 눈에 밟히는 아이를 뒤로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셔서 꼬박 25년 동안, 한 회사에 있으셨어요. 정말 대단하신 것 같아요.

 하하, 그렇죠. 나름 정말 열심히 일했어요. 돌이켜 생각해 보니 초창기에는 회사 대표님 하고도 많이 싸웠었네요. 회사가 막 커가던 시기라 공휴일 안 논다는 것도 ‘그런 게 어딨 냐!’ 따져가지고 직원들 다 쉬게 하고, 여직원들 보건휴가 안 주는 것도 쓸 수 있게 하고 보너스도 타게 했죠.

기억에 남는 일화가 우리가 1년 근무하고 보너스를 300% 받기로 했는데, 안 주더라고요. 그러면서 조회시간에 ‘보너스라는 개념은 회사가 이득이 없으면 줄 수 없는 거다.’ 말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손을 들어서 ‘지금은 이득이 없어서 못 주는 거면 나중에 이득 많이 나면 많이 나는 만큼 주시나요?’ 했어요. 물어볼 수 있잖아요? 그랬더니 조회 끝나고 대표가 저를 따로 불러요. 그러더니 ‘더 이상 선 넘지 마라’ 하더라고요. ‘이제 곧 잘리겠구나’ 했는데, 얼마 뒤에 약속했던 상여금을 소급해서 전 직원에게 다 줬어요.


Q. 어찌 보면 대표님도 엘레나 님처럼 똑똑하고 바른말할 줄 아는 사람을 자기 사람으로 만드신 거네요.  

 그렇죠. 회사생활 하면서 저는 아닌 건 아니라고 항상 해왔어요. 근데 그게 대책이나 근거가 없는 부정은 아니었어요. 언젠가 한 임원분의 지시에 제가 부정적인 의견을 드린 적이 있었는데 한참 동안 들으시다가, ‘다른 팀장들도 내가 시킨다고 바로 ‘네’ 하지 말고, 각자의 의견 내봐라’ 하신 적도 있었어요. 오히려 제 의견을 어필했던 것이 회사 전체적인 방향설정에 도움이 된 거죠.

어쨌든, 그때 대표님이 약속했던 성과급을 다시 주시면서 저도 밑에 직원들에게 더 인정받게 됐어요. 직원들이 제 덕분에 성과급을 받았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애들이 그때 고맙다고 14k로 된 핸드폰 고리 사주고 그랬어요. 그리고 성과급 받는 게 정례화 됐죠. 그거 외에도 위에서 미운털 박혀가며 노동자 편에서 많이 생각했어요. 그렇게 잔업수당, 특근수당, 휴가 등등 기본적인 틀은 다 만들어 놓고 나온 것 같아요.


Q. 직원들에게 정말 의지가 되는 팀장님이었을 것 같아요.

 그렇게 기억되길 바라요. 일적으로는 정말 할 만큼 했어요. 그리고 모두에게 그러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직원들에게 미래를 대비하라는 말도 참 많이 했어요. 제 말 듣고 연금저축 든 직원들도 있고, 월세 아껴 전세 구한 직원도 있고, 적금을 든 직원도 있어요.

 회사생활 하고 돈 버는 이유가 미래를 대비하고 더 잘 살려고 그러는 건데, 종종 자기의 경험과 상황에 갇혀서 헤어 나오지 못하는 친구들이 있더라고요. 옆에 있으면 안타깝고 기특한 마음에 이런저런 도움 되는 말들을 많이 해줬어요. 시간이 지나고 나서 그때 부장님 말 듣길 잘했다고 하는 거 보면, 제가 했던 이야기들이 도움이 됐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해요.


Q. 엄마이자 회사의 팀장역할을 하면서 스트레스가 많았을 것 같은데, 관리하는 비결 있으셨나요?

 일을 시작하면서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산에 갔어요. 해결하지 못한 일, 마음이 불편했던 사건들은 산을 오르다 보면 하나씩 떠오르거든요. 나름 머릿속에서 시나리오 A, B 다 그려놓고 스토리를 짜보죠. 그리고 떠오르는 생각들은 항상 메모를 해 놓았어요. 사실 모든 상황이 생각대로 되지는 않잖아요. 항상 바뀌고요. 나 나름의 최선을 생각해 두면 바뀐 상황 속에서 내 생각을 잠시 접어두고 따라갈지 계속 밀고 나아갈지를 결정할 수 있어요.


Q. 상황에 맞게 유연한 대처가 또 있으셨군요. 혹시 과거나 미래에서 무언가를 의지대로 바꿀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바꾸고 싶은 것 있으세요?

 글쎄요. 나 스스로는 조금 더 부유한 집에서 태어났다면 내가 이루고 싶었던 꿈을 이루면서 편하게 살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지만, 지금의 내가 열심히 일해서 아주 풍족하지는 않더라도 100세까지 자식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나 스스로 준비를 해 왔다는 생각에 불안하지도, 두렵지도 않아요. 자식들도 제 앞가림하면서 잘 살고 있고요.

얼마 전에 퇴직하고 집에서 쉬고 있는데 째가 300만 원을 통장에 입금했더라고요. 그동안 고생했으니 여행도 다니고 맛있는 것도 사 먹으라고요. 월급의 85%를 저축하고 이것저것 재테크도 열심히 하는 녀석인데, 아마 퇴직할 때 주려고 꾸준히 모아 왔나 봐요. 능력 있는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고기를 잡아주는 엄마가 아니라 고기 잡는 방법을 알려준 엄마가 된 것 같아서 나름 뿌듯하고 성공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렇게 자식을 키울 수 있는 저 역시도 제 엄마의 삶에서 배웠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 퇴직하고 엄마한테 가서 ‘엄마, 엄마 덕분에 내가 25년 동안 일할 수 있었어’ 하면서 부둥켜안고 한참을 같이 울었어요.

우리 엄마가 올해 97살이에요. 여전히 건강하고 정정하게 지내셔요. 그 시대 분들 한글 모르는 분들도 많은데, 우리 엄마는 그 옛날 시골에 개척교회에서 목사님들이 가르쳐주는 한글을 배워서 성경도 읽고 쓰고 했어요. 노인정에서 총무를 하셨는데 어느 날 집에 가니까 구구단이 붙어있어요. 계산기로 하면 편하다고 알려드렸는데도 아니라고 구구단도 알아야 된다고 굳이 또 외우시더라고요. 그림도 진짜 잘 그려요. 이거 우리 엄마가 그린 거예요. 나 진짜 깜짝 놀랐잖아요. 이 꽃잎 하나하나 진하고 연한 거 표현한 것 좀 봐요. 다른 사람들은 막 밖으로 튀어나가고 그런단 말이에요. 글씨도 너무 잘 쓰지 않았어요?  

97세 엘레나 님의 엄마가 그리신 그림


Q. 꿈을 이룰 수 없었던 가난한 가정형편 속에서도 어머님께 배운 삶의 태도를 감사할 수 있다는 게 감동이에요.

 그럼요. 꼭 돈이 아니더라도 아끼고 사는 것, 끊임없이 배우는 것, 열심히 사는 것, 삶의 태도로 가르칠 수밖에 없는 것들이 분명 있어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는 최선을 다해 살자. 우리 엄마가 그렇게 살았어요.


Q. 그 꿈이 사람이 돼서 이야기를 한다면 혹은 그때의 18살 엘레나가 환갑이 지난 지금의 엘레나를 보고 뭔가를 얘기한다면 어떤 얘기를 할 것 같으세요?

 선생님이라는 게, 꼭 학교에서 뭘 가르치는 것만이 선생님은 아니잖아요. 내 삶을 통해 자식들에게, 그리고 직장생활을 하면서 직원들에게 일상으로 많이 가르쳐줬다는 생각이 드네요. 나는 이미 선생님이었네요.

18살의 엘레나가 63살의 엘레나에게



 엘레나 님 과의 인터뷰는 ‘최선을 다하는 용기’로 가득 찬 시간이었다. 일을 나가야겠다 결심했던 그때, 아이들을 두고 먹먹한 마음을 다잡던 그때, 직원들을 위해 나서야겠다 마음먹은 그때, 할 말은 해야 한다고 생각했던 그때, 그 모든 순간들이 최선을 다하는 엘레나 님의 마음이었다.

 비록 선생님이라는 어린 시절의 꿈은 이루지 못했지만, 97살 노모의 삶에서 배운 최선을 다하는 용기를, 아이들에게, 직원들에게 그대로 가르친 진정한 선생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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