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아르바이트가 나에게 알려준 것들
경력이 단절된 지도 어언 2년이 되었다.
그동안 가정을 돌보며 육아를 했고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찾아 적지만 수익도 냈다. 그러나 퇴직금이 바닥나자, 현실과 타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원하는 일을 찾는 것도 중요했지만, 그보다 먼저 어른으로서 책임을 다하며 현실을 살아내는 것이 우선이었다.
일자리를 선택하는 데 있어 타협할 수 없는 조건을 먼저 세웠다. ‘아이들을 타인의 손에 맡기지 않고 내가 돌 볼 수 있는 시간이 적어도 주 3일 이상 확보될 것.’ 그 외의 다른 조건들은 모두 타협하기로 마음먹었다. 재택근무나 계약직을 찾으며 여러 곳에 이력서를 넣어보았지만, 결과는 없었다. 그러다 우연히 카페의 피크타임(11시~2시)에 스텝 아르바이트를 구한다는 공고를 보게 되었다. 아이들이 어린이집에 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지원하기 버튼을 누르기까지 많은 고민이 있었다. ‘이력서에 쓸 수 있는 경력이 될까?’ 현실에 대한 좌절감과 새로운 일에 대한 두려움이 몰려왔지만, 결국 아이들과 시간을 지키면서 꾸준히 수익을 낼 수 있는 일이기에 지원을 결심했다.
첫 출근 전까지만 해도 나는 카페 일이 쉬울 것이라고 생각했다.
“에스프레소만 잘 뽑아서 물에 넣으면 되고, 고객들에게 친절하면 되겠지?”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이거 아이스 아니고 따뜻한 아메리카노 주문이라 버리고 다시 만드셔야 해요.”
“컵 사이즈 더 큰 걸로 바꾸셔야 해요.”
두어 번 연달아 실수를 하고 나니 머리가 멍해졌다.
‘와 나 진짜 바보 아닌가? 10년 넘게 더 복잡한 일도 해온 내가 이렇게 간단한 것도 못 하다니?’
그때 문득, 20살의 내가 떠올랐다.
20살,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햄버거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아르바이트를 한 지 얼마 안 되어, 빅맥 주문이 여러 개 들어왔다. 정신없이 만들다 보니 빵의 순서가 잘못된 채 서빙이 되었고 제품을 받은 고객이 컴플레인을 걸어왔다. 관리하던 매니저는 같이 일하던 선배 동료에게 ‘중간 빵만 2개 들어갔대요.’라고 하고 나에게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나는 그 일이 너무 부끄러웠다. ‘아니 그 햄버거 하나를 제대로 못해? 이걸 왜 헷갈리지?’라며 자책했다. 그 뒤로 매번 아르바이트를 갈 때마다 그 사건이 떠올랐다. 아무도 나에게 뭐라고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쉬운 일 하나 제대로 해내지 못한 내가 한심하다고 느꼈다. 얼마 못 가 그 아르바이트는 그만두었다.
얼마 뒤, 학원 아르바이트 제안이 들어왔고, 그렇게 대학을 다니는 동안은 과외와 학원을 오가며 용돈 벌이를 했다. 그 시절의 나는 짧은 아르바이트 경력을 부끄러워하면서도 속으로 이렇게 생각했었다.
‘나는 머리 쓰고 말로 하는 일이 맞아, 몸 쓰고 단순노동은 안 맞는 거야’
카페에서 작은 실수들을 반복하는 순간 다시금 그 기억이 떠올랐다는 건, 나는 또다시 도망치고 싶어 한다는 뜻이었다. 37살의 나는, 20살의 나와는 달라야 했다. 또다시 도망칠 수 없었다. 적어도 20살의 나보다는 조금 더 버텨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나는 실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나는 직장 생활을 하며 꼼꼼함과 완벽주의가 나의 강점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뒤돌아보니, 내가 실수하지 않았던 건 내가 완벽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실수하지 않게 잘 리드해 준 사수들이 있었고, 동료들이 있었으며 그 일을 반복해 오는 동안 축적된 노하우가 있었다. 카페 일을 시작한 지 1주일도 안 된 나는 실수를 할 수밖에 없었다. 모를 수밖에 없었다. 날이 더해 갈수록 주문받는 메뉴의 종류들이 다양해지자 제조할 수 있는 음료와 쓸 수 있는 장비의 개수가 늘어났다. 일하는 동안 열두 번도 더 부르던 매니저님을 하루에 한두 번만 불러도 됐다.
다음으로 ‘일과 나를 분리’하는 감각을 키워야 했다.
이전 직장을 다닐 때는 ‘일이 곧 나’였다. 내가 해 놓은 일들의 성과를 보면 자식을 낳은 것 마냥 뿌듯했다. 내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이고 누구를 만나며 다니는지, 해외 출장으로 어디를 다녀왔는지를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카페 일은 성격이 조금 달랐다. 유니폼을 입고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일하니 내가 누군지 고객들은 알 수도 없고 알 필요도 없었다. 그저 자신이 주문한 음료가 문제없이 빠르게 나오면 된 것이었다. 유니폼을 입으면 나는 그저 직원이고 유니폼을 벗고 탈의실을 나서면 나는 그저 또 다른 손님일 뿐이었다.
그렇게 얼마를 버티고 나니 세상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마트에서 길게 늘어선 카트를 능숙하게 끄는 점원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저 사람도 정말 많은 노력과 시간을 쏟았겠지. 대단하다.” 빠르게 계산을 하는 캐셔분을 보면서도 “저분도 누군가의 엄마겠지. 퇴근 후, 하루 종일 서있느라 퉁퉁 부은 다리를 주무르며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시겠지?” 생각하게 됐다.
내가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여전히 ‘나는 머리 쓰는 일을 잘해서 실수하지 않는 관리자에 어울리고 그 일이 곧 나’라고 생각하면서 살았더라면 결코 마주할 수 없었던 세상이었다.
실수하기 싫어서 도망쳤던 20살 때부터 나는 완벽하다고 착각하며 살아왔던 지난 시간들이 얼마간의 카페 아르바이트로 무너졌다.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그 무너짐이 나를 다시 생기 있게 만들었다.
나는 이제 그 어떤 일도 두렵지 않다. 반드시 실수할 것이고 이따금 부끄러워지겠지만 시간이 더 나은 나를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경험으로 배웠다. 어떤 일을 하든, 얼마간의 시간이 지난다면 나는 꽤 괜찮아질 것이다. 그리고 남들이 내가 하는 일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하든 두렵지 않다. 직장이라는 껍데기를 두르지 않고도 온전히 두 발로 서서 이 땅에 존재하는 내가 있음을 이제는 안다. 경험을 통해 몸에 새긴 깨달음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값진 선물이었다.
우리는 경험을 통해서만 성장할 수 있다는 다소 진부한 메시지를 전하며, 이 글이 어떤 일의 선택을 앞두고 망설이는 누군가에게 작은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