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아름다움
최근 초등학교 동창에게서 카톡이 왔다. 빅뉴스를 담은 유튜브 링크와 함께. 오래전 한 번 내 오피스로 찾아왔고, 이후로는 뜸하게 연락이 이어지던 친구다.
"자랑스러운 친구여. 축하와 경의를 표하네."
짧은 답장을 보내고 나니, 오래된 기억 하나가 불쑥 고개를 들었다.
"똑똑"
'선생님, 혹시 저를 기억하시겠습니까?'라는 글이 적힌 쪽지를 내밀며 서 있던 중년의 남자. 약간 긴 머리, 검은 와이셔츠에 검은 재킷 차림이었다. 이름도 생소하고 모습도 생소하여 "누구... 신지..." 갸우뚱하는 순간,
"아..."
초등학교 때 같은 반 했던 남자아이. 고아원에서 학교 다니던 친구였다. 어린 시절보다는 슬픔이라든가 절망과 같은 삶의 아린 흔적이 희미해진 채, 나름의 평온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런 친구의 모습을 마주한 내 가슴에는 반가움과 기쁨, 그리고 설명하기 어려운 뿌듯함이 차올랐다.
초등 3학년 때의 일이라 한다.
당시 극장에서 '용가리'라는 영화를 상영하는데 돈이 없어 볼 수가 없었다. 그때 내가 부끄러웠는지 5원짜리 동전을 그 친구 앞에 툭 던지고는 도망을 갔단다. 그 5원으로 그는 그토록 보고 싶었던 영화를 볼 수 있었고, 언젠가 금으로 똑같은 '5원'을 만들어 나에게 되돌려주겠노라는 마음을 간직하고 살아왔노라 했다.
기억조차 못하는 일이었다.
내 기억에는 5-6학년 같은 반 때 그 아이가 고아원에서 다니는 아이들 중 유독 눈에 띄었다. 항상 눈빛에는 우수를 가득 담은 채 까만 교복 같은 옷을 입고 다니던 모습, 특히 고개를 한쪽으로 약간 비스듬히 한 채 애절한 목소리로 노래하던 모습이 되살아났다.
"해는 저어서 어두운데 찾아오는 사람 없어, 밝은 달만 쳐다보니 외롭기 그지없네..."
노래를 잘해서 가끔 수업 시간에 선생님께서 시키면 노래를 불렀었다. 초롱한 눈망울에 눈물보다 더 뜨거운 기운을 가득 담고 고개를 숙이며 부끄러워하던 모습. 이제야 선연히 떠오르는 아득한 옛날, 그 아이의 모습들이 영상처럼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차를 대접하려고 스위치를 눌러놓았건만, 지나간 기억의 파편들을 모으며 짜맞추느라 마음은 좀처럼 현재로 돌아오지 못했다. 결국 차 한 잔 제대로 대접하지 못한 채, 헤어질 시간이 되었다.
그가 나가면서 책장에 놓인 내 딸 사진을 보았다.
"딸은 대학생이겠구나...우리 아이들은 다 국졸이야."
그는 초등학교 졸업 후 중학교 진학은 포기하고 상경하여 거친 세상 속으로 들어갔다. 아빠와 발맞추어 자녀들도 국졸 후 검정고시를 치르며 제도권 밖의 선택을 했지만, 각자의 자리에서 능력을 발휘하며 살아가고 있었다. 자녀들을 학력과 무관하게 당당한 청년들로 키워낸 그 친구의 모습에서, 어린 시절 당시 그 아이의 예사롭지 않았던 눈빛이 되살아났다.
"야, 너 멋있다. 앞으로의 시대는 이런 친구들이 주름잡게 될 거야."
"다른 사람들은 다 미쳤다고 하던데, 넌 날 이해해 주네."
"얼마나 대단하고 멋진지, 감동이야."
우리는 아쉬운 짧은 만남을 여미며 악수를 하고 헤어졌다.
그가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는 내 마음은 묘한 떨림으로 가득했다. 그가 나를 기억해 주었다는 것, 그리고 오늘날 길 위에서 방황하는 아이들도 이렇게 멋있게 성장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본 것. 내 안의 또 다른 마음 하나가 꽃을 피운 것 같은 슬픈 아름다움이었다.
오피스로 돌아온 나는 북받쳐 오르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