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념을 지키는 선택(나쓰메 소세키의 <마음>과 영화 <여인의 향기>)
나쓰메 소세키의 소설 <마음>은 기묘한 이끌림으로 집어 든 책이었다. 주인공 화자가 선생님에 대해 담담하게 읊조리는 이야기, 그리고 3부에서 선생님이 스스로에게 들려주듯 펼쳐놓는 유서와 마주하게 된다. 그 서늘한 고백에 붙들려 책장을 계속 넘겼다.
"나는 미래의 모욕을 피하기 위해 지금의 존경을 물리치려는 것이지. “
선생님은 철저히 자신만의 잣대에 비추어 살고자 했던 이였다. 그러나 가장 가까운 친구 K를 배신하고 사랑을 쟁취한 순간, 그는 자신의 기준에서 어긋나 버린 자신을 직면한다. 사랑은 때로 눈을 멀게 하지만, 멀어진 눈으로도 끝내 외면할 수 없는 진실이 있는 법이다. 스스로를 용서하기 힘든 삶이었으나 겉으로는 평화로운 나날이 지속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선생님의 신념은 생을 마감하는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만큼 삶 깊숙이 뿌리내려 있었다. 한 인간이 지향하는 철학적 잣대가 자신의 생명을 끊을 '각오'로 이어진다는 사실이 경이롭기까지 했다. 그 극단적인 선택이 한편으로는 티끌 없는 순수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생각에 깊은 공감이 일었다.
주인공이 선생님의 편지 내용을 읽어 내려갈 때는 마치 내가 직접 편지를 받고 읽는 듯한 느낌이었다. 한 인간의 성장 과정에서 겪는 강력한 기억들은 평생의 가치 판단 기준에 작용함을 선연히 보여주었다. 이처럼 개인의 경험은 아무리 사소해 보여도 한 사람의 삶에서 중요한 분기점을 형성하는 토대가 되기도 한다.
문득 어제 본 영화 <여인의 향기>가 떠오른다. 고학생 찰리가 퇴학 위기에 처하게 됨에도 불구하고, 동급생의 부적절한 행위를 목격하고서도 끝까지 그들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자세, 곧 자신의 가치 판단기준에 따르는 올곧은 찰리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타협과 안위를 위해 쉽게 무너지곤 하는 세속에서 타협을 불사하고 신념을 지켜내는 용기는 힘든 만큼 가치가 있음을 영화는 통쾌하게 보여주었다.
찰리와 선생님의 차이는 명확하다. 찰리는 신념을 지켜 살아남았고, 선생님은 신념을 저버린 자신을 용서하지 못해 스스로를 지웠다. 신념을 끝까지 수호하는 용기와, 신념을 배반한 자신과 마주하는 용기. 그 두 가지 무게는 인간에게 얼마나 가혹한 것인가. 결국 삶이란 ‘나와의 약속’을 얼마나 정직하게 지켜나가는가에 대한 끊임없는 시험대일지도 모른다.
<마음>의 선생님은 자신이 세운 관념의 잣대와 끊임없이 갈등하고 타협하다, 결국 그 기준에 미치지 못한 자괴감을 죽음으로 갚았다. 누가 그 선택에 감히 옳고 그름을 논하겠는가. 그것은 순수한 이상이 현실의 모순 앞에 무너진 비극인 동시에, 실패를 무마하지 않고 그 대가까지 당당히 받아낸 아름다운 고독의 기록이다. 그 길이 죽음일지라도 끝내 자신을 저버리지 않으려 했던 선택이기에, 슬프도록 아름답게 느껴졌다.
창밖으로 차고 세찬 바람에 나뭇잎들이 휘리릭 떨어진다. 저들 중 누군가는 생의 미련을 접어두고 스스로 낙하를 선택했을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시선보다 무서운 것은 나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는 일인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나 자신과의 약속을 온전히 지켜나가고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