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틀비가 남긴 질문
우리는 때로 벽 앞에서 앞으로 나아갈지 고민한다.
그러나 어떤 이는 나아가는 대신 멈추기를 선택한다.
지난 글에서 나는 벽 앞에 선 인간의 선택에 대해 썼다.
이번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선택,
그 낯선 자유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한다.
“I would prefer not to —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허먼 멜빌의 《필경사 바틀비》에서 이 한 문장은 기묘한 울림으로 오래 남는다. 온순하고 말없는 필경사 바틀비는 어느 날부터 변호사의 지시에 같은 말만 반복한다. 거부도, 반항도 아닌 듯한 그 담담한 문장. 그는 설명하지도, 설득하지도 않는다. 그저 선택한다. 안 하는 편을.
맨해튼의 질서 정연한 사무실에서 이 작은 선택은 균열이 된다. 변호사는 분노하기보다 당황하고, 해고하기보다 망설인다. 바틀비의 고요한 부정은 소란스러운 저항보다 더 큰 힘으로 공간을 흔든다.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가장 급진적인 질문을 던진다.
인간에게 선택하지 않을 자유는 있는가?
바틀비의 ‘부정’은 단순한 게으름이나 반항이 아니다. 그것은 기존 질서가 당연하게 요구하는 참여와 순응을 조용히 거절하는 태도다. 자본과 효율의 논리 속에서 그는 스스로를 한 발 물린다.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선택은 역설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끝까지 붙드는 방식이 된다.
그의 태도는 연약하고 병적으로 보이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쉽게 병리의 언어로 설명하려 한다. 그러나 바틀비를 단순히 비정상으로 규정하는 순간, 우리는 불편한 질문 하나를 피해 간다.
우리 역시 각자의 방식으로 세계에 순응하기를 거부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은 누구나 보이지 않는 강박 속에서 살아간다. 해야 한다는 생각, 이래야만 한다는 규칙,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력. 그 틈에서 가끔씩 고개를 드는 작은 거부의 충동. 바틀비는 어쩌면 그 충동을 극단까지 밀어붙인 형상인지도 모른다. 우리가 애써 눌러두는 어떤 가능성의 그림자.
결국 그는 음식마저 거부한 채 죽음에 이른다. 그의 선택은 비극으로 끝나지만, 그 침묵의 궤적은 오래 남는다. 변호사의 마지막 탄식 — “아 바틀비여, 아 인류여” — 는 한 개인을 넘어 인간 전체를 향한 질문처럼 들린다.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는 원하는 것을 마음껏 하는 능력일까, 아니면 원하지 않는 것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일까. 바틀비는 후자를 택한다. 그는 세상을 바꾸지 못했고, 자신의 생을 지켜내지는 못했다. 그럼에도 그의 선택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 흔적을 남긴다. 존재가 마지막까지 붙들 수 있는, 어쩌면 가장 근원적인 선택.
우리는 살아가며 수많은 벽을 만난다. 어떤 벽은 넘고, 어떤 벽 앞에서는 멈춘다. 때로는 돌아서고, 때로는 부딪친다. 그리고 드물게,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싶어지는 순간이 온다. 그때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
바틀비는 극단적인 방식으로 그 질문을 살아냈다. 그의 삶은 해답이라기보다 하나의 물음표에 가깝다. 그러나 어쩌면 인간의 자유란, 명확한 답보다 그런 물음을 끝까지 붙드는 데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문득 생각한다.
언젠가 나에게도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할 순간이 온다면,
그때 나는
자유의 무게 앞에 잠시 멈추게 될 것이다.
우리는 과연, 선택하지 않을 선택의 자유를 감당할 수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