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자유
우리는 살아가며 끊임없이 선택의 순간과 마주한다.
때로는 벽 앞에서 앞으로 나아갈 것인가를 고민하고,
때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싶어진다.
이 글들은 그런 선택들이 한 인간의 자유를 어떻게 드러내는지에 대한 작은 사유의 기록이다.
벽.
무언가 나를 가로막고 멈춰 세우며 선택의 기로에 서게 만드는 것. 우리는 그것을 벽이라 부른다. 누군가는 그 앞에 주저앉고, 또 누군가는 외면한다. 어떤 이는 순응과 포기를 선택하며 현실에 적응하려 하고, 또 다른 이는 저항과 자유를 택하며 벽에 부딪쳐 쓰러지거나, 끝내 벽을 넘는 삶에 도전한다.
누구나 살면서 한 번쯤 넘지 못할 것 같은 벽 앞에 선다. 나 역시 지금, 그 벽을 마주하고 있다. 문득 그 벽을 응시한다. 감정도 의도도 없이 그저 거기 있을 뿐인 벽. 그러나 그 앞에 선 나는, 내 안 깊은 곳에서 낯선 목소리를 듣는다.
“이제는 어떤 것도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여기 있고, 그리스를 넘겨줌으로써 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그것을 거부했다. 이런 사실이 내게는 오히려 우스꽝스럽게 보였다. 그것은 고집에 지나지 않았다. 나는 생각했다. ‘고집은 부려야만 하나!’ 그러자 야릇한 즐거움이 나를 사로잡았다.” (장 폴 사르트르, 《벽》, 문학과지성사, 36쪽)
사르트르의 《벽》 속 인물 ‘파블로’. 처형을 앞둔 그가 느낀 ‘야릇한 즐거움’은 무엇이었을까?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그는 실존적 존재로서 마지막 자유를 움켜쥐려는 몸부림을 보인다. 그것은 모든 것을 잃은 자만이 느낄 수 있는 해방감이자, 동시에 공허에 가까운 웃음일지도 모른다.
그의 끝까지 고집스러운 거짓말은 뜻밖에도 동료 그리스를 향한 화살이 되어 날아갔다. 농담처럼 던진 말이 공교롭게도 실제 은신처와 일치했고, 그를 죽음으로 몰아넣었다. 파블로는 그 우연적 현실 앞에서 눈물이 날 만큼 큰 웃음을 터뜨린다.
이는 단순한 희비극이 아니다. 그 우연 속에서 사르트르는 삶의 한 단면을 포착한다. 우리의 삶은 언제나 우연과 필연 사이의 모호한 경계 위에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신념에 따라 선택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
파블로의 웃음은 그런 불확실성 앞에서 터져 나온, ‘내가 선택했다’는 사실에 대한 씁쓸하면서도 해방적인 웃음이다. 결과가 어떠하든, 그 선택은 온전히 그의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묻는다. 파블로가 선택한 것은 죽음이었는가, 아니면 삶이었는가? 그는 현실과 타협할 수도 있었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살아남기 위한 계산 대신 이해받지 못할 고집을 택했다.
그 순간 그는 자유로웠다. 그 자유는 감옥 안에서도, 죽음 앞에서도, 타인의 권력 아래에서도 발휘될 수 있는, 실존하는 인간만이 지닐 수 있는 존엄이었다. 자기 뜻대로 할 수 없는 세계 속에서 그는 단 하나의 자기결정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선언한다.
우리가 마주한 벽도 다르지 않다. 그것이 사회적 기대든, 경제적 압박이든, 혹은 내적 한계든 상관없다. 중요한 것은 그 벽 앞에서 내가 어떤 선택을 하는가이다. 벽을 넘으려 애쓸 수도 있고, 벽을 우회할 수도 있으며, 벽 앞에서 멈춰 설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선택을 하든, 그 선택의 주체는 바로 나 자신이다.
따라서 벽은 단순한 장애물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존재가 되고 싶은지를 비추는 거울이다. 파블로가 죽음의 벽 앞에서 자신의 마지막 자유를 발견했듯이, 나 또한 내 앞의 벽에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벽을 넘는 일이 아니라, 벽 앞에서 어떻게 존재하느냐이다.
결국 인간은 선택 앞에서 완전히 자유롭지도, 완전히 안전하지도 않다. 우리는 불확실한 결과를 알면서도 선택해야 한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에, 인간은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자신을 드러낸다. 나는 선택한다. 결과가 어떠하든 선택의 주체는 나 자신이기에, 그 선택 속에서 벽은 더 이상 나를 가로막는 장애물이 아니라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나는 오늘도 벽을 응시한다.
벽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나는 다시 그 앞에 선다. 어쩌면 인간의 삶이란 그 벽 앞에서 망설이고, 선택하고, 또다시 자신을 발견해 가는 끝없는 과정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