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견디게 해 줄 힘은 무엇인가

영화 <The Goat>가 던진 질문 ※ 스포일러 있음

by hym

나를 끝까지 견디게 해 줄 힘은 무엇일까?

영화 <더 고트>(The Goat)를 보며 내내 이 질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영화를 보면서 쓰라린 눈물을 흘린 건 정말 오랜만이다. 몇 번이나 off 버튼을 누를 뻔했지만, 차마 눈을 뗄 수 없었다.


인도의 작은 마을에 사는 나집. 맑은 영혼의 눈빛을 지닌 그에게는 사랑하는 아내와 곧 태어날 아기가 있다. 가족의 보금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그는 집을 담보로 거액의 대출을 받아 중동 취업 알선금을 마련한다. 이웃 동생 하킴과 함께 희망을 품고 사우디로 떠난다.


공항에서 약속된 고용주는 나타나지 않고, 낯선 농장주에게 사기를 당해 짐칸에 실린 채 사막 한가운데로 끌려간 그들. 언어가 전혀 통하지 않는 상황에서 농장주의 폭압에 의해 고된 강제노역의 나날이 이어진다.


백미러에 비친 얼굴

한 줄기 빛도 없는 캄캄한 동굴 속에 갇혀버린 신세가 된 나집. 어느 날 트럭의 백미러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고 나집은 소스라치게 놀란다. 정글 속 사자처럼 길게 헝클어진 머리와 턱수염을 한 짐승 같은 사내. 그는 그 자리에서 벼락이라도 맞은 듯 멈춰 선다. 한 인간이 인간으로 살아갈 최소한의 존엄마저 박탈당한 순간, 거울 속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순간, 인간은 무엇으로 남는가?


"안에 있으면 밖에 못 나가고, 밖에 있으면 안에 못 들어와 “


그곳 염소 치기로 살던 노인이 가끔 흥얼거리던 말이다. 세월의 무게만큼 초연해진 노인의 일상은 마치 다른 세상 사람처럼 신비롭기까지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노인이 보이지 않았고, 새들이 푸드덕거리는 소리에 다가가 보니 모래에 반쯤 묻힌 노인의 시신을 새들이 쪼아 먹고 있었다.


그 순간 나집은 직감했다. 저 모습이 곧 나의 미래라는 것을. 그는 본능적으로 끝없는 사막을 향해 무작정 달아났다. 하지만 낙타를 타고 감시하는 농장주의 망원경을 벗어날 순 없었다. 붙잡혀 돌아온 나집은 참혹한 구타를 당했고, 그 후유증으로 다리를 절뚝거리며 다시 노역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신의 가호를 빌며

농장주들은 서로를 만나면 '신의 가호가 있기를' 하며 인사한다. 타인의 생명을 손톱만큼도 귀하게 여기지 않으며. 노예보다 못한 삶을 강요하면서도 태연하게 신의 가호를 비는 그들의 모습은 당혹감을 너머 섬뜩함을 자아냈다. 한 인간이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이 다른 한 인간의 삶을 지옥으로 밀어 넣을 수 있다는 사실. 도대체 어디서부터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목숨을 건 탈출

그러던 중, 다른 곳에서 염소 떼를 몰고 나온 하킴과 극적으로 상봉한다. 목소리만 겨우 알아볼 뿐, 이미 야생동물처럼 변해버린 서로를 부둥켜안은 채 통곡하는 소리만이 사막의 모래알에 박히고 있었다.


결국 나집은 결심한다. 암흑 같은 삶을 사느니 탈출하다 죽는 길을 택하기로. 농장주의 친구 자녀 결혼식이 열리던 날, 지리를 잘 아는 아프리카인 동료와 하킴, 그리고 나집 세 사람은 목숨을 건 탈출을 감행한다. 끝없는 사막 위, 추적을 피해 절뚝거리는 다리로 걷고 쓰러지며 다시 걷는다.


해가 뜨는 방향으로 앞서 걸어가던 아프리카 친구는 탈진해 쓰러지는 하킴의 입술 위로 땀 한 방울로라도 축여주려 애를 쓴다. 극도의 탈진에 빠진 하킴은 사막 저편에 신기루처럼 즐비한 건물들을 보는 착란 증세를 일으키다 결국 사망한다. 남은 둘은 하킴을 애도할 겨를도 없이 모래 폭풍에 휘말리며 생사를 오가는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보기 힘들었다.


아프리카인은 나집의 부르터진 발을 자신의 옷을 찢어 감싸주고, 자신의 신발을 벗어 신겨주며 말한다.


"죽을 때까지 걸어야만 한다."


마치 가상의 구원자처럼 사막의 능선 위에 명상 자세를 취한 그의 모습이 실루엣으로 드러나며 배경음악이 흐르는 장면은 한 편의 예술 작품 이상의 몰입감을 높여주었다.


또 다른 지옥

구원자 같던 동료마저 어디론가 사라지고, 홀로 남은 나집은 탈진 직전에 극적으로 외국인 노동자 수용소에 도착한다. 하지만 그곳 역시 또 다른 지옥이었다. 고용주들이 정식 계약으로 데려온 도망자들을 색출하여 다시 데려갈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복도 양쪽에 두 줄로 서 있는 노동자들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고용주들에게 몇몇이 끌려간다. 나집의 농장주도 나타났다. 그가 점점 다가오는 동안 나집의 심정은 과연 어떠했겠는가? 또다시 그 암흑의 동굴 속으로 끌려갈 극심한 두려움에 영혼의 마비 현상이 온몸의 세포 하나하나에 번져갔을 것이다.


농장주는 나집을 알아보았으나 데려갈 수 없었다. 그는 나집을 정식으로 데려온 '고용주'가 아닌 '사기꾼'으로 법적 권한이 없었기 때문에. 악마의 사슬에서 풀려난 나집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오열한다.


사랑의 힘

구사일생의 세월을 건너온 나집, 이제 사랑하는 가족에게 줄 수 있는 건 "내 인생의 남은 시간뿐"이라 되뇌며 귀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나집이 절망의 사막 한가운데서도 한 발 한 발 내딛게 만드는 건 무엇이었을까? 백미러에 비친 낯선 얼굴을 마주하고도 '나'를 잃지 않게 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사랑하는 아내와의 행복했던 기억, 그리고 얼굴을 보지는 못했으나 세상에 나와 자라고 있을 분신에 대한 본능적 부성애. 결국 사랑의 힘이었다.


내가 나집의 처지였다면, 어떠했을까? 어쩌면 우리 모두는 각자의 사막을 건너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 사막의 크기와 모양은 다르지만, 우리 모두는 '견디게 해 줄 무언가'를 필요로 한다.



영화 <더 고트>가 내게 남긴 질문, 나를 끝까지 견디게 해 줄 힘은 과연 무엇일까? 나는 아직도 그 질문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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