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려면 나를 내려놓고
우리가 되어야 했다.
내려놓지 않으려면
서로 존중할 줄 알아야 했다.
친구관계의 소속감으로 마음의 안정을 찾지는 않았지만 친구들을 그리워해서 외로움은 달고 살았다. 나는 일을 좋아하는 성향이라 우정에 관해서라면 늘 패배자 같았지만, 일을 하면 다음으로 연결되었고 이기는 기분이었다. 이런 인간관계는 연애할 때도 똑같았다. 관계에서 오는 소속감보다는 내가 하고 있는 고민을 나눌 수 있는 사람이 좋았다.
소개팅할 남자와 통화를 몇 번 했다. 자신은 일을 하게 되면 연락이 끊기는 유형이라고 본인을 소개했다. 본인을 연락 끊기는 유형, 가진 게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라고 해서 만나면 안 될 사람 같았다. 통화를 여러 번 길게 했는데 만나지 않는 것도 이상해서 우리는 약속된 날에 만났다. 주선자가 둘이 잘 맞을 것 같다고 하고 주선해준 것이라서 그런지 우리는 금세 연인이 되었다.
남자 친구는 주말에도 일했다. 남자 친구가 주말에 일해서 나는 내 시간이 너무 많았다. 혼자 놀기 지칠 때쯤에 남자 친구가 퇴근해서 같이 데이트를 했다. 남자 친구는 일에 빠지는 성격이라 여자 친구를 잘 못 돌보는 성격이라서 연애가 힘들다고 우려했지만 난 늘 하고 싶은 것이 있고 혼자서도 잘 노는 편이라 우리의 연애는 유지되었다.
이직을 못해서 한 회사를 오래 다니면서 회사가 우물이라고 생각하며 살던 나는 여기저기 옮겨 다니면서 일을 하는 남자 친구가 신기했다. 결혼하고 부모가 되었을 때 나는 회사를 오래 다녀서 출산휴가, 육아휴직을 쓸 수 있었지만, 남자 친구는 그만 움직이고 자리를 잡아야 했다. 연애 때 멋있어 보이던 모습이, 남편이 되니 가족을 나 몰라라 하고 일만 하는 것 같았다. 대부분의 시간을 아이와 단둘이 있었다. 아이가 너무 어리니 나는 나 혼자 사는 것 같았다.
결혼하면 퇴사할 줄 알았는데 현실은 복직이었다. 아침에 눈뜨면 아이를 챙겨 어린이집에 보내고, 회사서 일하고, 집에 오면 온통 일 투성이었다. 주말에도 늘 집에서 아이랑 둘이 있었다. 남들 가정은 주말에 가족끼리 놀러 다니는데 내 가정은 왜 이럴까란 우울감에 자주 빠졌다. 내 것이라도 챙겨야지 덜 억울할 것 같았다. 힘들 때마다 공부했다. 결혼 전에 하고 싶었던 공부가 있었던 게 다행이었다.
사랑했던 남자 친구는 제일 싫은 남편이 되었다. 내가 남자 친구를 만나서 자유로움을 느꼈지만 그가 일에 매진함으로써 집에 있는 시간이 더 많아진 나는 외로웠다. 연애 때는 돈도 잘 쓰더니 결혼해서는 돈도 찔끔 벌어다줘서 미웠다. 지난 5년, 아껴준 마음보다 미워한 마음이 더 컸다.
미워하기 싫어서 이 인간을 남편 말고 친구로 받아줘야 하나? 형제로 받아줘야 하나? 어떻게 받아들이고 살아야 할까라는 고민도 꽤 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지쳐갈 무렵, 남편은 말했다.
"내가 잘한 것이 없어서 말할 입장은 아니지만, 너도 잘한 거 없다고."
그가 시작한 모진 말에 대한 반격으로 나는 그대로 계속 돌려줬다.
좋아하던 남자를 그토록 미워하게 되었을까? 서로를 미워한다면 결혼 전의 선택을 후회해야 하는 것인가?
일기를 쓰게 된 것도 나에게 말을 건 여러 사람들이 있지만 사랑이 유지하기 힘들어서 쓰게 된 것이다. 미워하는 마음을 멈추고 싶었다.
지금까지 살아온 시간을 무를 수도 없고. 지금 내가 남편을 미워하면 과거의 내 선택을 부정하는 것인가?
남편이 남자 친구가 되기 전에도 지금처럼 꽤나 지쳐 있을 때, 내 남자 친구는 나를 조건 없이 사랑해줬고 잘해줬다. 남자 친구는 나를 자기에게 맞출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다. 남편을 만나면 계속 나로 살아도 될 것 같았다. 나는 남편이 미워질 때마다 내가 처음 남편을 만났을 때를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하면 남편이 덜 미워진다. 남편이 내 삶에 도와주는 것은 없지만 존재감만 있어서 지금까지 하고 싶은 것들 하면서 살았던 것이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고 남편은 저녁형 인간이다. 아침에 내가 애들을 보고, 저녁에 아빠에게 아이들을 보게 한다면 나는 덜 힘들게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맨날 일하고 주말에 늦잠 자는 남편을 게으르게 여기고 주말 아침잠만 자서 나들이도 못 가는 신세라고 생각하면서 보냈다.
남편이 힘들다고 말하면
"나도 일해. 나도 힘들다"라고 말해줬다.
난 왜 미워만 하고, 주말에 남들처럼 놀지 못하는 것을 한탄만 했을까?
남편과 아이들에게 미안했다.
그래 봐야 몇 년인데 마음 좀 쓸 걸 그랬다.
법적 가족 구성원이 된 건 오래전이지만,
이제야 가족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