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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영 Aug 02. 2020

[윤리에세이] 밀그램 실험 속 윤리적 의사결정력의 비밀

골룸과 악의 평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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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씨네21




골룸과 스미골 이야기

“My precious!” 이 대사 기억나시죠? 네, 그 유명한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골룸의 대사입니다. 아마 반지의 제왕을 안본 사람들은 있어도, 골룸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 같아요. 충격적인 비주얼과 소름 끼치는 목소리는 한번 보거나 들으면 쉽게 잊기 어려워요. 


출처 : 반지의 제왕


그런데 이 골룸도 원래는 호빗과 비슷한 부족의 일원이었다는 거 알고 계신 가요? 

스미골이라는 이름의 평범한 인물이었습니다. 어느 날 스미골은 친구 데아골과 강가에서 낚시를 하던 중, 우연히 반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데아골이 먼저 이 반지를 발견하는데요, 언뜻 보기만 해도 좋아 보이는 이 반지를 보고 스미골은 욕심이 생겨요. 그래서 데아골과 몸싸움을 벌이고, 친구 목을 졸라 살해하는 지경에 이릅니다. 결국 이 반지를 차지하게 되는데, 이 반지가 바로 ‘반지의 제왕’의 핵심 매개물인 ‘절대반지’입니다. 절대반지를 차지한 스미골은 마을로 내려오게 되고요, 절대반지의 신묘한 힘 또한 알게되요. 점점 그는 탐욕스러운 행동으로 마을 주민들을 괴롭히고, 결국 추방당하는 신세가 됩니다. 그리고 놀라운 능력을 가진 절대반지에 집착하게 되죠. 지나치게 반지에 집착한 나머지 인생의 모든 목적과 이유가 절대반지가 되어버려요. 그 와중에 신들의 저주로 외모도 흉측하게 변하고, 자신의 이름도 잃어버리게 되죠. 결국 콜록콜록 기침소리를 본뜬 의성어, 즉 골룸이 자신의 이름이 됩니다. 시간을 더해가며 골룸은 더욱 탐욕스러운 본성만 남게 되어 우리에게 잘 알려진 충격적인 모습이 되어버립니다. 


출처 : 예스24


1937년 L.R.R 톨킨이 출간한 ‘호빗’이라는 소설에 처음 등장한 골룸의 이야기는 흥미롭게도 그리스 신화에도 등장합니다.

이디아라는 어느 왕국에 가이게스(Gyges)라는 매우 충직한 목동이 살고 있었어요. 어느 날 들판에서 양떼를 돌보던 가이게스는 갑자기 큰 폭풍우를 만나게 되고, 이를 피하기 위해 우연히 작은 동굴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죽은 시체들이 널려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데요, 그중 한 시체의 몸에서 이상하게 생긴 반지를 발견하고 그 반지를 빼내어 냅니다. 이 반지역시 신묘하게도 자신이 보이지 않게 만들어 주는 힘을 가지고 있어요. 그는 이 사실을 안 순간부터 사악하고 탐욕스러운 사람으로 변해요. 결국 그 반지를 이용해서 국왕을 살해하고 왕비를 빼앗고 그 나라의 국왕이 됩니다.


놀랍게도 반지의 제왕 속 골룸과 그 모습이 상당히 닮아 있죠?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평범’했던 스미골과 매우 ‘충직’했던 목동 가이게스라는 지점입니다. 그들은 결코 원래부터 사악한 존재가 아니었다는 건데요, 절대적 능력을 가진 반지를 만나면서부터 탐욕스럽게 변하게 됩니다. 그들은 왜, 괴물로 변해야만 했을까요? 그들의 이기심, 즉 개인적인 탐욕 때문이었을까요? 


두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반지는 인간의 탐욕을 대변하는 상징적 도구예요. 

어쩌면 우리 모두는 마음속 하나씩의 절대반지를 가지고 있을지 모릅니다. 누군가에게는 돈이 그 절대반지가 될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명성이 그 절대반지가 될 것이며,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아름다운 외모가 그 절대반지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얻기 위해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죠. 그리고 나보다 더 가진 그들을 가끔 부러워하기도, 시기하기도 하며, 더 많이 더 빨리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잡기위해 노력하며 삽니다. 물론 열심히 최선을 다해 목표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나쁘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절대반지에 매몰될 수 있는 본능을 가지고 있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우리 모두는 언제든지 골룸이 될 수 있어요. 


결코 스미골이 특별히 나쁜 사람이어서 골룸이 된 것이 아니라는 말이죠. 

그가 특별히 도덕적으로 타락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말이기도 합니다. 또한 그가 특별히 의지가 약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도 의미합니다. 그저 우리 주변의 평범한 인물이었다는 점을 우리는 기억해야해요. 그럼 우린 이런 의문이 생기죠. ‘그렇다면 유혹이 있을 때 마다 모든 사람은 탐욕적으로 변할 수밖에 없는 걸까?’ 라는 합리적인 의문 말이예요.


악의 평범성

1933년부터 1945년까지 히틀러가 독일을 독재적으로 지배했던 기간을 나치즘시대라고 합니다. 

나치즘은 국수주의와 권위주의를 표방하는 파시즘 가운데에서도 가장 야만적인 독일의 파시즘을 말합니다. 나치즘의 핵심적 이데올로기는 민족적 전체주의와 아리아 인종우월주의, 그리고 조직적 반유대주의 였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어떤 논리적 근거도 없는 이유(독일인이라는,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극단적인 차별과 혐오가 발생하고 유지되었다는 게 믿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러나 이성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나치즘 사상은 광적으로 삽시간에 퍼져 나가고 이로 인해 세계사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기게 됩니다. 그 속에는 잔혹한 학살을 주도한 사람들이 있었어요. 그중 핵심인물로 아돌프 아이히만(Adolf Eichmann)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출처 : 한국일보 2018.05.11

 

1960년 5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버스정류장에서 자동차정비원 한 명이 퇴근길에 이스라엘 비밀 정보원들에게 체포됩니다. 그리고 곧 법정에 세워진 그는 살면서 한번도 법을 어겨본 적이 없다며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그가 바로 아돌프 아이히만으로 독일 나치의 친위대 장교였어요. 

유죄를 인정하느냐는 법원의 물음에 그는 일관되게 부인합니다. 


“도대체 무엇을 인정하라는 말입니까? 저는 사람을 학살하는 것에는 관심 없습니다. 제가 관심있는 것은 맡은 일을 잘 해내는 것뿐입니다.” 


그는 그저 직업이 필요했던 독일 시민이었으며, 힘들게 갖게 된 직업이 군인이었고, 그가 맡은 업무는 유대인의 재산을 몰수하고, 추방하고, 학살하는 것이었다는 겁니다. 그는 그저 본인의 일을 열심히 했을 뿐이라는 거죠. 그의 정신을 감정한 6명의 의사들은 “아이히만은 지극히 정상이며, 준법정신이 투철한 국민이다.”라고 판정했습니다. 

사실 그가 체포되기 전까지 사람들은 아이히만은 뻔뻔한 철면피에 악마 같은 모습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했어요. 그런데 재판장에 선 그는 옆집 아저씨 와도 같은 수더분한 모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심지어 정신상태도 지극히 정상이라니 이해할 수가 없었죠. 곧이어 수많은 유대인을 학살하는 것에 양심의 가책은 느끼지 못했냐는 질문에 그의 가치관이 고스란히 담긴 답변을 내 놓습니다.


“월급을 받으면서도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지 않았다면 저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 겁니다. 저는 제일을 성실히 수행했을 뿐 잘못이 없습니다."


상부의 지시를 충실히 수행했을 뿐 유대인 학살에 자신의 의지가 조금도 없었기에 자신은 죄가 없다는 논리입니다. 이 답변을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죄도 없는 유대인들을 광신적인 이유로 학살할 수 있지?’ 라고 생각하시나요? 

만약 당신이 나치시대의 아이히만이었다면 어떻게 행동했을까요? 



이런 비정상적인 행동이 무려 12년 동안 지속될 수 있었던 이유를 밀그램실험(Milgram Experiment)을 통해 우리는 조금 이해할 수 있어요. 


출처 : ebs 지식채널 e


1961년 미국 예일대 심리학과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 교수는 ‘권위적인 불법적 지시’에 대한 사람들의 복종정도를 실험을 통해 알아냅니다. 실험에는 실험진행자, 교사역할, 학생역할 이렇게 총 3부류의 사람들이 참가합니다. 실험은 이러해요. ‘징벌에 의한 학습효과를 측정하는 실험’이라는 표면적 주제로 4.5달러에 선생역할을 할 실험자들을 모집합니다. 그리고 20~50대의 평범한 사람들이 선발됩니다. 이윽고 진행된 실험에서 학생역할 실험자들은 의자에 손이 묶입니다. 그리고 전기충격장치가 연결되요. 이때 교사역할의 실험자들은 학생역할의 실험자들에게 문제를 내고, 그들이 틀릴 때마다 1.5V씩 증가된 전기충격을 450V까지 가할 수 있습니다. 참고로 450V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정도라고 합니다. 물론 전기충격은 가짜였으며 학생역할 실험자들도 배우들이었죠. 즉, 징벌을 집행하는 교사역할들이 피실험자였습니다. 1.5V씩 증가되는 전기충격에 학생들은 강도를 높여 비명을 지르고, 선생역할 실험자들은 머뭇거려요. 그때마다 흰 가운을 입은 예일대 실험진행자는 “계속 하세요.” “걱정할 일은 일어나지 않을 겁니다.” “제가 책임집니다.” 라는 말로 피실험자들을 독려합니다. 


실험 초 밀그램 교수는 고작 0.1%만이 450V까지 전기충격 수위를 높일 꺼라 예측했어요. 대부분의 참가자들은 치명적 수준인 450V까지 올리지 않을꺼라고 예측한거죠. 그렇게 예측한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는데요, 실험 얼마전 예일대생들을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결과 때문입니다.

“누군가 당신에게 비인간적인 행위를 요구했을 때 당신은 따르겠습니까?” 이 질문에 몇%의 사람들이 yes라고 응답했을까요? 고작 2%도 되지 않았어요. 98%이상이 비인간적인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럼 다시 밀그램의 실험으로 돌아가 볼까요? 학습능력을 향상시킨다는 그럴듯한 명목 하에, 누군가의 고통과 생명이 교사역할의 피실험자에 달려있습니다. 과연 몇 %의 사람들이 450V까지 전기 수위를 높였을까요? 한번 생각해보세요.

결과는 놀랍게도 65%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실험진행자인 밀그램 교수조차도 예상하지 못한 수치였어요. 

일종의 인지부조화 현상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요? 왜, 그들은 고작 4.5달러를 받고 비인간적인 행동을 선택한 걸까요? 

밀그램교수는 이런 현상이 ‘권위적인 명령에 대한 복종현상’이라고 설명합니다. 예일대라는 권위, 제복(흰 가운)을 입은 집단의 위력 그리고 4.5달러에 대한 의무감이 이런 비이성적이고 비도덕적인 행동을 가능하게 만들었다고 설명했어요. 성실하고 의무감이 강한 사람일수록 더욱 그러했겠죠. 밀그램은 실험을 통해 그저 평범했던 어쩌면 선량했던 사람들이 파괴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그들 자신의 도덕성 문제가 아니라 비윤리적인 상황 자체의 영향이라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을 거라 생각합니다.


출처 ㅣ 예스24


이제는 다시 나치즘시대에 악을 집행한 아돌프 아이히만으로 돌아가보겠습니다. 

그의 재판을 끝까지 지켜보던 사회심리학자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1963년 《예루살렘의 아이히만(Eichmann in Jerusalem : A Report on the Banalityof Evil)》 이란 책에서 <악의 평범성>이론을 발표합니다. 

비이성적인 유대인 대학살을 집행한 사람들은 광신도나 성격장애자가 아니라 상부의 비윤리적인 명령을 아무런 비판없이 실행한 지극히 평범한 사람들이라는 것이죠. 그들의 가장 큰 죄는 생각하지 않은 것. 사고의 무능이라고 그녀는 말합니다. 


“무사유가 인간속에 존재하는 모든 악을 합친 것보다 더 많은 파멸을 가져올 수 있다. 나치즘의 광기 든 뭐든, 우리에게 악을 행하도록 하는 계기가 주어졌을 때 그것을 멈추게 할 방법은 오직 깊이 성찰하고 사유하는 것이다” <예루살렘의 아이히만>


상부의 지시를 비판적으로 사고하지 않은 것, 그리고 피해자들의 상황을 이해하려 노력하지 않은 것이 아이히만의 죄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또한 스탠리 밀그램은 실험을 마치며 “상부의 불합리한 명령에 반항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바로 그 권위자와의 관계를 완전히 단절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말이죠, 우리 일상에서 상사의 혹은 조직적 차원의 부당한 명령에 반항할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요? 


이런 맥락에서 볼 때 밀그램 실험의 35%의 사람들, 450V까지 올리는 것을 거부한 35%의 사람들의 올바른 판단과 행동은 정말 위대하고 용기 있는 행동이었습니다. 정말 그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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