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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혜영 Aug 02. 2020

[윤리에세이] 나의 불행과 타인의 불행사이

윤리적 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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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나의 행복과 눈에 보이지 않는 타인의 불행사이

이번에는 밀그램실험과 비슷하지만 다른, 흥미로운 실험을 하나 살펴볼까요? 

하버드대 인지심리학자인 마크 D. 하우저 교수는 밀그램실험과 유사한 실험을 붉은 털 원숭이에게 진행합니다.


출처 : http://www.newspenguin.com/news/articleView.html?idxno=1502

 

실험의 원리는 간단합니다. 

붉은 털 원숭이 앞에는 버튼이 있고, 투명 칸막이 건너편에는 전기장치가 연결된 다른 붉은 털 원숭이가 있습니다. 이 원숭이가 앞에 있는 버튼을 누르면 맛있는 먹이가 나옵니다. 그러나 건너편 원숭이에겐 전기충격이 가해지죠. 과연 붉은 털 원숭이는 다른 원숭이의 고통을 개의치 않고 자신의 이익(먹이)을 추구할까요? 당신은 어떻게 예측하시나요? 


놀랍게도 붉은 털 원숭이는 버튼을 누르지 않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무려 15일동안 버튼을 누르지 않았고, 15일동안 먹이를 얻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고통을 당하는 원숭이가 자신과 함께 지내던 동료 원숭이일 경우, 더욱 오랫동안 버튼을 누르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 실험을 보니 ‘원숭이가 인간보다 낫구나!’ 싶으신 가요? 

그런데 여기엔 앞선 밀그램실험과의 환경에서 하나의 분명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그게 뭔 지 찾으셨어요? 네, 바로 주변의 제3자입니다. 실험진행자는 단지 관찰만 하지 않고 머뭇거리는 피실험자들에게 “계속하십시오”, “당신이 걱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학생의 학습능력을 높이기 위해선 어쩔 수 없는 겁니다”, “혹시 모를 일에 대해선 제가 책임지겠습니다”라고 피실험자를 종용했죠. 반면 붉은 털 원숭이에게는 강요하는 제3자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행동과 그에 따른 현상만이 있을 뿐이죠. 그렇다면 만약 제3자가 없었다면 65%의 수치에는 변화가 있었을까요? 아마 훨씬 더 낮아졌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처럼 주변인은 정말 중요한 존재임을 우리는 꼭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도 누군가의 주변인이 될 수 있음 또한 기억해야 합니다.
이건 좋은 어른이 되기 위해 반드시 기억해야할 제1명제이기도 합니다.


앞선 실험들에서 나의 행동은 바로 눈앞 누군가의 고통을 유발하는 했습니다. 그래서 죄책감 혹은 부끄러움이나 두려움을 보다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죠. 


그렇다면 나의 행동이 보이지 않는, 심지어 만나보지도 못한 타인의 고통을 유발하는 것이라면 어떨까요? 


출처 : https://m.yna.co.kr/view/AKR20200703107300508


몇 해전 햄버거를 먹고 신장 기능의 90%를 상실한 어린이의 이야기를 기억하실 것입니다. 용혈성요독증후군이라는 이 병은 햄버거 병으로 더 잘 알려져 있는 이 병은 고기를 잘 익히지 않거나, 살균되지 않은 우유, 오염된 야채를 섭취하면 걸릴 수 있다고 의료계에서는 밝히고 있습니다. 지금 이 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는데요, 완치약이 없는 현재로서는 생존을 위해 매일 10시간씩 투석을 받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무려 3년전 사건인데, 아직까지도 속시원한 해결이 안된 상황이예요. 그

런데 수사결과 밝혀진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사건 초기 이 햄버거속 패티를 만들어 납품하던 회사 담당자가 S시 공무원에게 문의를 합니다. 문제가 되는 패티를 경찰에 제출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말이예요. 아마도 두려움 때문이었겠죠. 그리고 공무원은 당시를 기준으로 시중에 유통된 모든 패티가 전량 소진되었다고 허위 보고하면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고 알려줍니다. 후에 밝혀진 것이지만 이 또한 올바른 정보는 아니었다고 해요. 어쨌든 패티 회사 담당자는 당시 10개매장에 잔여 하던 15개박스를 폐기해버립니다. 그리고 전량 소진되었다고 허위보고 후 제출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S시 공무원은 왜 그런 결정을 내린 걸까요? 위법한 것을 알면서 왜 옳지 못한 정보를 담당자에게 알려준 것일까요? 그는 5살짜리 어린아이를 해치기위해 의도적으로 행동을 한 것일까요? 

아니요, 그렇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자신의 결정으로 어린 아이가 보상도 받지 못하고 평생 장애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의도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평소 친분이 있었던(밝혀진 바는 없습니다만), 혹은 다급하게 부탁하는 안쓰러운 사람을 도와주려고 했던 것일지 모릅니다. 위법의 방법을 요청하는 아는 사람의 고통이 선량한 모르는 사람의 고통보다 더 크게 작용했기 때문입니다. 혹은 지금 지인의 위법한 부탁을 들어주는 것이 내 맘의 편안함에 도움이 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누군가의 고통에는 둔감해집니다. 더구나 한번도 만나본 적이 없는 타인이라면 더더욱 그러합니다. 아니 그들의 고통을 자각할 필요도 없을테죠.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과 관계가 있는 지금 눈앞의 행복이 타인의 불행을 야기한다 하더라도 선택하게 되는 겁니다. 이렇게 A라는 측면에서 볼 때도 옳고, B라는 측면서도 볼 때도 옳을 때 선택이 힘들어집니다. 그런데 이 말은 A라는 측면에서 볼 때도 옳지 않은 결과를 야기할 수도, B라는 측면에서 볼 때도 옳지 않은 결과를 야기할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윤리적 딜레마(ethical dilemma) 상황이라고 합니다.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커피를 마실 것인지, 차를 마실 것인지를 선택합니다. 지하철을 탈것인지, 버스를 탈 것인지를 선택합니다. 무단횡단을 할 것인지, 조금 더 걸어서 횡단보도를 이용할 것인지를 선택합니다. 내 앞의 지인의 부당한 부탁을 들어줄 것인지, 거절할 것인지를 선택합니다. 우리 인생은 이처럼 크고 작은 선택으로 이어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선택은 필연적으로 파장을 야기합니다. 우리 인생은 선택하고 그 파장을 감내하고 책임지므로 연속됩니다.


윤리적 딜레마

 당신은 지금 바이어와의 중요한 약속을 앞두고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보다 도로사정이 너무 좋지 않습니다. 간신히 약속장소에 도착하긴 했지만, 장애인 주차구역 외에는 주차할 곳이 없습니다. 


출처 : https://m.post.naver.com/viewer/postView.nhn?volumeNo=7268068&memberNo=2744973


당신은 고민하죠. 조금 더 올라가서 공영주차장에 주차할 것인가, 아니면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할 것인가? 

이때 선택의 기준은 무엇이 될까요? 주차할 곳을 찾아 십여 분을 돌아 공영주차장에 주차를 하고, 되돌아올 경우 바이어와의 약속시간은 늦을 것이고, 이는 당신 비즈니스에 신뢰를 무너뜨릴 위기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반면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할 경우 과태료(10~50만원 선)를 내게 되지만, 바이어와의 신뢰를 지킬 수는 있습니다. 


당신은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요? 

10만원의 과태료를 내더라도 바이어와의 신뢰를 지키는 것이 더 옳다고 판단했을까요? 이는 10만원보다 바이어와의 신뢰를 유지하므로 발생할 수 있는 경제적 가치가 더 높다고 판단했기에 가능한 선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선택은 경제적 가치판단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과연 선택의 순간에 경제적 가치판단만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는 것이 늘 옳은 것일까요? 만약 장애인 주차구역에 이처럼 경제적 여유가 되는 사람들이 과태료를 감수하고 모두 주차를 했다고 가정해봐요. 그렇다면 정작 주차를 해야 하는 장애인분들은 주차를 하지 못해 불편을 겪게 되겠죠. 다른 곳에 주차하고 걸어서 약속장소로 가는 대안을 가진 비장애인과는 달리 장애인 주차구역이 아니면 다른 대안이 없는 장애인들에게는 불편함 이상을 의미할 것입니다. 지하철로 이어진 엘리베이터가 만석이라면 당신은 조금 더 기다리실껀가요? 아니면 걸어 내려가거나 에스컬레이터를 타실껀가요? 반면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어떨까요? 계단도 에스컬레이터도 그들에겐 대안이 되지 못합니다. 유일한 이동수단은 엘리베이터이죠. 그렇다면 우리는 생각을 조금 바꿔봐야 합니다.


자, 다시 장애인 주차구역의 이야기로 돌아와봅시다. 

과태료 10만원이 장애인 주차구역에 주차를 해도 될지 말지를 결정하는 의사결정 기준이 되는 것에 문제가 있다고 느껴지시나요? 맞아요. 우리는 모든 선택의 순간에 경제적 기준만으로 가치판단을 해서는 안됩니다. 적어도 누군가의 인권, 존엄, 생명, 안전에 관하여서는 더더욱 그러합니다. 


윤리적 딜레마는 개인과 조직의 경제적이익과 윤리적이슈가 충돌을 일으키는 상황을 말합니다. 이때 우리는 선택을 요구받습니다. 그리고 어떤 관점으로 그 현상을 바라보느냐에 따라 선택은 확연히 달라집니다. 경제적 가치판단기준으로 바라볼 것이냐, 아니면 윤리적 가치판단기준으로 바라볼 것이냐에 따라 말이죠. 의사결정도 우리의 선택이지만, 의사결정의 기준을 선택하는 것도 우리에게 중요한 선택입니다. 


출처 : https://m.blog.naver.com/PostList.nhn?blogId=jkh6564


마이클 센델교수는 그의 저서 <돈으로 살수 없는 것들, 와이즈베리, 2012>’에서 모든 판단의 기준이 경제적 기준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경고합니다. 그렇다면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선택해야하나...’ 걱정이 될 겁니다. 

그러나 다행히 정답은 있습니다. 복잡한 윤리적 딜레마 상황에서도 반드시 정답은 존재합니다. 복잡할수록 본질을 놓치지 않으면 됩니다. 그 문제가 야기된 상황의 본질, 그럼에도 불구하고 놓쳐서는 안되는 중요한 가치. 그것들에 집중하면 됩니다. 그리고 올바른 선택기준을 선택하고, 그 방법을 아이들에게 가르쳐주는 어른이야 말로 좋은 어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구체적인 방법은 천천히 함께 알아보도록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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