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 바젤은 전 세계 화랑 3백여 곳, 예술가 4천여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미술 박람회로 ‘예술계의 올림픽’으로 불리는데, 세계 미술계를 주도하는 갤러리, 컬렉터, 미술 애호가들이 만나는 미술 시장인 동시에 미술계의 흐름과 최신 경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이벤트로 전 세계 미술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아트 페어 중 하나다.
아트 바젤은 바젤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아메리카와 아시아 대륙으로도 진출해 2002년부터는 아트 바젤 인 마이애미 비치, 2013년부터는 아트 바젤 인 홍콩이 매년 개최되고 있다.(며칠전에아트 바젤 홍콩이 막을 내렸다.)
내가 바젤에방문한 지금은 2월.
다른 전시가 열리고 있었지만전시장 앞은 환승을 기다리는 사람만이 몇몇 보일 뿐아트바젤이열리는6월의열기는쉽게상상이되지않는다.
아트 바젤은 1970년 바젤에서 활동하는 화상들의 주도로 시작되었는데, 이 화상들 중 한 명이 바로 지금 가는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의 그 '바이엘러(Ernst Beyeler 1921~2010)'이다.
# 바이엘러 파운데이션 Beyeler Foundation (1997, 2000)
재단의 설립자인 바이엘러는 바젤 출신의 세계적인 미술품 수집가로 바이엘러 뮤지엄은 그가 오랫동안 수집해온 현대미술의 거장들(폴 세잔, 반 고흐, 클로드 모네, 알베르토 자코메티, 파블로 피카소, 피에트 몬드리안, 앙리 마티스,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프란시스 베이컨, 알렉산더 칼더등)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바젤 외곽에 위치한 리헨 Riehen 역에 내리면 길을 따라 기다랗게 이어진 붉은 담장이 보인다. 담장이 만든 경계를 넘어서면 공원의 녹음 속에 담장과 같은 붉은 돌의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건축가들은 콘텍스트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로 해당 지역에서 생산되거나그 지역을 상징하는 소재를 건축물의 재료로 사용하는데,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은 바젤 대성당(Basel Munster)에서 볼 수 있는 붉은 반암(Porphyry)을 사용해 자신이 이 도시의 일부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붉은 석재가 눈에 띄는 요소이긴 하지만 가볍고 투명하면서도 자연이라는 대전제를 압도하지 않는 모습이 롱샹의 게이트하우스에서 보여준 그것을 닮아있다.
떠나기 전 상상했던 모습. 수련이 피는 계절에는 연못에 핀 수련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출처 https://fr.news.yahoo.com
하지만 오늘의 날씨는 '비'
거기다 우리가 방문한 기간 동안 바이엘러에서는 기획전으로 피카소 전(The Young Picasso - Blue and Rose Periods)이 열리고 있었고 상설전에서볼 수있는모네와자코메티는볼수없었다. 결국 두 가지 계획 모두 무산되었지만 피카소 전의 방대한 작품들을 소화하느라 당연히아쉬워할 새도 없었다.
거창한 콘셉트와 화려한 조형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애쓰는 많은 건축물들이 있다. 당연히 거기에도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지만 렌조 피아노는 미술관이라는 본질에 충실한 설계로 건축 자체보다 예술작품을 드러내면서 역으로 건축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방식을 취했다. 이 미술관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휴식, 교육, 오락의 기능을 겸비한 사회적 공간으로 그 역할이 변화하고 있는 21세기형 미술관으로의 도약을 위해 증축을 앞두고 있다.
자연과 건축, 예술의 비범한 조화를 보여준 렌조 피아노를 잇는 다음 건축가는 바젤 출신의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 1943~).
‘사람’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페터 춤토르가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게 될지, 다시 이곳에 와서 확인할 수 있을까.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렌조 피아노의 작품. 광화문 KT 사옥. 교보문고 옆이다. 출처 http://www.rpbw.com
# 팅겔리 뮤지엄 Tinguely Museum(2003)
피카소 작품의 방대함에 넋을 잃고 여행자의 특권인 점심 식사와 낮술을 즐기는 사이 시간은 오후 4시를 향하고 있었다. 그다음 일정인 비트라를 소화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던 우리는 이동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미술관 안내데스크에 요청해 택시를 불렀다. 아마도 무척 비쌀 것으로 예상되는 택시는 일정에 쫓기는 우리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십 분이 지나도 오질 않는다. 두 번째 가는 날이긴 하지만 두 시간 만에 비트라를 볼 수는 없지. 택시를 취소하고 일정을 변경해 팅겔리 뮤지엄에가기로했다. 팅겔리 뮤지엄이라면 가벼운 마음만 장착하면 된다.
바젤을 소개하는 많은 글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 장 팅겔리 Jean Tinguely (1925-1991)라는 인물은 빛, 소리, 움직임, 색채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키네틱 아티스트이다. 현대사회가 쓰다 버린 망가진 기계 등을 주워 모아 기계문명의 부조리를 이야기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사실바젤에 오기 전에 사진으로본 팅겔리의 작품은 나에게 그다지 흥미롭지 않아서 팅겔리뮤지엄은건너뛰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도심에서 만난 팅겔리 분수를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는데 끊임없이 물을 퍼올리고 있는 모습이 귀엽고도 애잔하여 그 앞에 한참을 머물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붉은색 석재, 기하학적 단순함으로 표현된 팅겔리뮤지엄은 한눈에 마리오 보타의 설계임을 짐작케 한다. 아마도 건축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어딘지 익숙한 느낌을 줄 것 같은데서울에서 가장 많은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강남역에 있는 교보타워와 리움미술관이 마리오 보타의 설계로 지어졌다.
리움미술관(2004)과 강남 교보타워(2003) 출처 http://www.botta.ch
티켓팅을 하고 나면 굳이 라인강을 끼고있는 통로를 통해 전시실로 향하도록 안내한다. 계단 대신 경사로를 통해 내부 공간과 바깥 풍경의 변화를 천천히 경험하면서 전시를 보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으라는의도이다. 이것이 마리오 보타가 이야기하는 건축적 산책로인데 롱샹의 건축적 산책로가 대서사시라면, 팅겔리 뮤지엄의 그것은 '건축적 산책로에 대한 사전적 정의'정도 되니안심하고이산책을즐겨도좋다. 조형적으로는 전체 건물에서 생뚱맞게 튀어나와 형태의 일관성을 거스르는 면이 있지만 라인강의 풍경이 주는 안도감덕분에미술관로비와전시실을 이어주는 전이 공간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전시를 보고 나오자 미술관 초입에서 만난 아이들이 떠올랐다. 도착한 미술관의 입구에는 미술관으로 소풍을 온 것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돌바닥에앉아 재잘대며 간식을 먹고 있었다. 이렇게 춥고 비가 오는데 괜찮은 것인지 안부를 묻고 싶은 심정이었는데미술관을 한 바퀴 돌고 나오자 머릿속에는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생동감만이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