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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bridKIM Apr 06. 2019

11 바젤의 미술관들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바젤 여행기


# 메세 바젤 Messe Basel과 아트 바젤 Art Basel


버스가 메세플라츠 Messeplatz에 가까워지자 한눈에 담기지 않는 거대한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출처 https://www.herzogdemeuron.com

비트라에 갈 때는 이곳을 지나쳐갔지만, 오늘은 환승을 위해 이곳에 내려야 한다.

물론 환승만이 목적은 아니다.

하늘을 향해 열린 창  window to the heavens ©hybridKIM

하늘을 향해 열린 거대한 창(Window to the heavens)이 인상적인 메세 바젤 뉴 홀(Messe Basel New Hall, 2013).

바젤의 전시관 및 무역센터로 기능하는 건물로 헤르조그 & 드 뫼롱이 설계했다.

 

이 건물을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이유는 매년 6월 이곳에서 아트 바젤이 열린다는 것이다.

추운데 비까지 내린 메세플라츠 messeplatz ©hybridKIM


아트 바젤은 전 세계 화랑 3백여 곳, 예술가 4천여 명이 참가하는 대규모 미술 박람회로 ‘예술계의 올림픽’으로 불리는데, 세계 미술계를 주도하는 갤러리, 컬렉터, 미술 애호가들이 만나는 미술 시장인 동시에 미술계의 흐름과 최신 경향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이벤트로 전 세계 미술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아트 페어 중 하나다.

아트 바젤은 바젤에서의 성공에 힘입어 아메리카와 아시아 대륙으로도 진출해 2002년부터는 아트 바젤 인 마이애미 비치, 2013년부터는 아트 바젤 인 홍콩이 매년 개최되고 있다.(며칠 전에 아트 바젤 홍콩이 막을 내렸다.)


내가 바젤에 방문한 지금은 2월. 

다른 전시 열리고 있었지만 전시장 앞은 환승을 기다리는 사람만이 몇몇 보일 뿐 아트 바젤이 열리는 6월의 열기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아트 바젤은 1970년 바젤에서 활동하는 화상들의 주도로 시작되었는데, 이 화상들 중 한 명이 바로 지금 가는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의 그 '바이엘러(Ernst Beyeler 1921~2010)'이다.



# 바이엘러 파운데이션 Beyeler Foundation (1997, 2000)


재단의 설립자인 바이엘러는 바젤 출신의 세계적인 미술품 수집가로 바이엘러 뮤지엄은 그가 오랫동안 수집해온 현대미술의 거장들(폴 세잔, 반 고흐, 클로드 모네, 알베르토 자코메티, 파블로 피카소, 피에트 몬드리안, 앙리 마티스, 앤디 워홀, 로이 리히텐슈타인, 프란시스 베이컨, 알렉산더 칼더 )의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건립되었다.


바젤 외곽에 위치한 리헨 Riehen 역에 내리면 길을 따라 기다랗게 이어진 붉은 담장이 보인다. 담장이 만든 경계를 넘어서면 공원의 녹음 속에 담장과 같은 붉은 돌의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이 그 모습을 드러낸다.

이 건물은 롱샹성당의 게이트 하우스를 설계한 렌조 피아노(1937~)의 작품이다.


©hybridKIM


건축가들은 콘텍스트라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 중 하나로 해당 지역에서 생산되거나 그 지역을 상징하는 소재를 건축물의 재료로 사용하는데,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은 바젤 대성당(Basel Munster)에서 볼 수 있는 붉은 반암(Porphyry)을 사용해 자신이 이 도시의 일부임을 이야기하고 있다.


붉은 석재가 눈에 띄는 요소이긴 하지만 가볍고 투명하면서도 자연이라는 대전제를 압도하지 않는 모습이 롱샹의 게이트하우스에서 보여준 그것을 닮아있다.

바젤 대성당(Basel Munster) ©hybridKIM
공원을 향해 열려 있고, 프레임이 최소화된 엘리베이터가 있는 바이엘러 파운데이션. ©hybridKIM

여행을 하면서 날씨에 크게 연연하는 편은 아니다.

어차피 여행은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정도로 귀결되니까. 하지만 날씨를 신경 쓰게 되는 장소가 가끔 나타나는데 롱샹이 그랬고,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이 그렇다.


이유는 '빛' 때문이다.

건축주 바이엘러는 작품이 온전히 자연광으로 조명되는 미술관을 원했고 건축가는 그 요구에 충실한 결과물을 만들어낸 것으로 명성이 자자한지라 이왕이면 해가 온전히 떠 있는 날의 ‘전시공간’을 감상하고 싶었다.

해가 온전히 뜬 맑은 날 렌조 피아노가 만든 공간에서 모네와 자코메티의 작품을 보는 것은 40개가 넘는다는 바젤의 미술관들 중에서도 바이엘러 파운데이션에 오기로 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였다.

 

출처 https://www.fondationbeyeler.ch


직사광선을 필터링 해 전시공간에 활용할 수 있도록 레이어드 된 천창 ©hybridKIM


비가 오는 바젤 ©hybridKIM


떠나기 전 상상했던 모습. 수련이 피는 계절에는 연못에  핀 수련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출처 https://fr.news.yahoo.com


하지만 오늘의 날씨는 '비'

거기다 우리가 방문한 기간 동안 바이엘러에서는 기획전으로 피카소 전(The Young Picasso - Blue and Rose Periods)이 열리고 있었고 상설전에서 볼 수  모네와 자코메티는   없었다. 결국 두 가지 계획 모두 무산되었지만 피카소 전의 방대한 작품들을 소화하느라 당연히 아쉬워할 새도 없었다.


실제로 본 풍경 ©hybridKIM
©hybridKIM
오르세를 거쳐서 이곳에 상륙한 The Young Picasso - Blue and Rose Periods ©hybridKIM


거창한 콘셉트와 화려한 조형으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기 위해 애쓰는 많은 건축물들이 있다. 당연히 거기에도 나름의 존재 이유가 있지만 렌조 피아노는 미술관이라는 본질에 충실한 설계로 건축 자체보다 예술작품을 드러내면서 역으로 건축의 존재감을 보여주는 방식을 취했다. 이 미술관의 매력은 여기에 있다.

©hybridKIM


바이엘러 미술관은 늘어나는 소장품으로 인한 전시공간의 부족과

휴식, 교육, 오락의 기능을 겸비한 사회적 공간으로 그 역할이 변화하고 있는 21세기형 미술관으로의 도약을 위해 증축을 앞두고 있다.

자연과 건축, 예술의 비범한 조화를 보여준 렌조 피아노를 잇는 다음 건축가는 바젤 출신의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 1943~).

‘사람’이라는 새로운 키워드를 페터 춤토르가 어떤 방식으로 보여주게 될지, 다시 이곳에 와서 확인할 수 있을까.

서울에서 만날 수 있는 렌조 피아노의 작품. 광화문 KT 사옥. 교보문고 옆이다. 출처 http://www.rpbw.com


# 팅겔리 뮤지엄 Tinguely Museum(2003)


피카소 작품의 방대함에 넋을 잃고 여행자의 특권인 점심 식사와 낮술을 즐기는 사이 시간은 오후 4시를 향하고 있었다.
그다음 일정인 비트라를 소화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던 우리는 이동시간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미술관 안내데스크에 요청해 택시를 불렀다. 아마도 무척 비쌀 것으로 예상되는 택시는 일정에 쫓기는 우리의 마음과는 상관없이 십 분이 지나도 오질 않는다. 두 번째 가는 날이긴 하지만 두 시간 만에 비트라를 볼 수는 없지.
택시를 취소하고 일정을 변경 팅겔리 뮤지엄 가기로 했다.
팅겔리 뮤지엄이라면 가벼운 마음만 장착하면 된다.

바젤을 소개하는 많은 글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이 장 팅겔리 Jean Tinguely (1925-1991)라는 인물은 빛, 소리, 움직임, 색채 등을 종합적으로 다루는 키네틱 아티스트이다.
현대사회가 쓰다 버린 망가진 기계 등을 주워 모아 기계문명의 부조리를 이야기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사실 바젤에 오기 전에 사진으로 본 팅겔리의 작품은 나에게 그다지 흥미롭지 않아서 팅겔리 뮤지엄은 건너뛰어도 좋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구도심에서 만난 팅겔리 분수를 보고는 생각이 바뀌었는데 끊임없이 물을 퍼올리고 있는 모습이 귀엽고도 애잔하여 그 앞에 한참을 머물게 하는 매력이 있었다.

구도심에서 만난 팅겔리 분수 ©hybridKIM


팅겔리 뮤지엄 Tinguely Museum ©hybridKIM


붉은색 석재, 기하학적 단순함으로 표현된 팅겔리 뮤지엄은 한눈에 마리오 보타의 설계임을 짐작케 한다.
아마도 건축을 하지 않는 이들에게도 어딘지 익숙한 느낌을 줄 것 같은데 서울에서 가장 많은 유동인구를 자랑하는 강남역에 있는 교보타워와 리움미술관이 마리오 보타의 설계로 지어졌다.

리움미술관(2004)과 강남 교보타워(2003) 출처 http://www.botta.ch


티켓팅을 하고 나면 굳이 라인강을 끼 있는 통로를 통해 전시로 향하도록 안내한다.
계단 대신 경사로를 통해 내부 공간과 바깥 풍경의 변화를 천천히 경험하면서 전시를 보기 전에 마음을 가다듬라는 의도이다. 
이것이 마리오 보타가 이야기하는 건축적 산책로인데 롱샹의 건축적 산책로가 대서사시라면, 팅겔리 뮤지엄의 그것은 '건축적 산책로에 대한 사전적 정의'정도 되니 안심하고  산책을 겨도 좋다.
조형적으로는 전체 건물에서 생뚱맞게 튀어나와 형태의 일관성을 거스르는 면이 있지만 라인강의 풍경이 주는 안도감 덕분에 미술관 로비와 전시실을 이어주는 전이 공간으로서 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팅겔리 뮤지엄의 건축적 산책로 ©hybridKIM


시간이 시간인지라 북적거렸던 입구에 비해 전시실은 한산했다.

한눈에 읽히지 않는 복잡한 구조, 덜컥거리고 삐걱거리는 딱히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소리, 느릿느릿한 움직임.

작품들은 버튼을 누르거나 꾹 밟으면 작동하기 시작하는데 덕분에 작품을 감상하는 모두가 작품의 일부로 자연스럽게 참여하게 된다.

E와 나는 신나게 버튼을 누르고 다니며 우리에게 남은 시간을 즐겼다.


한눈에 읽히지 않는 복잡한 구조, 딱히 아름답다고 할 수 없는 소리, 느릿느릿한 움직임. ©hybridKIM


전시를 보고 나오자 미술관 초입에서 만난 아이들이 떠올랐다.
도착한 미술관의 입구에는 미술관으로 소풍을 온 것으로 보이는 한 무리의 아이들이 돌바닥에 앉아 재잘대며 간식을 먹고 있었다. 이렇게 춥고 비가 오는데 괜찮은 것인지 안부를 묻고 싶은 심정이었는 미술관을 한 바퀴 돌고 나오자 머릿속에는 재잘거리는 아이들의 생동감만 남아 있었다.


팅겔리 뮤지엄은 그 풍경의 배경으로 무척이나 어울리는 공간이다.

역시, 춥고 비는 왔지만 오늘의 바젤도 '모든 순간이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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