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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bridKIM Apr 30. 2019

15 마침내, 에필로그

건축가와 디자이너의 바젤 여행기


친구를 만나러 다녀온 취리히에서 바젤 SBB역까지는 한 시간이 채 걸리지 않다. 취리히에서 저녁식사까지 마친 후 기차를 탔지만 바젤에 도착한 시각은 저녁 8시 반.

기차가 속도를 줄이기 시작하자 창 밖으로 익숙한 풍경들이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밖은 이미 어두웠지만 한눈에 알 수 있는 풍경들. 기차에서 내려 역사로 들어서자 드디어 집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든다.  

취리히는 사실상 이번 여행의 마지막 일정이었고 당장 내일 아침 다시 짐을 꾸려 진짜 우리집이 있는 서울로 돌아가야 할 일만 남았는데 우리는 어느새 바젤에 익숙해져 있었다.


Come back home. 취리히에서 돌아온 바젤 SBB. ©hybridKIM


아프로 헤어를 한 유쾌한 서버가 있는 바에서 마지막 밤의 아쉬움을 달래며 몇 잔의 술을 마시고, 쌀쌀한 2월의 밤이 내려앉은 라인강으로 나가 아직 끝나지 않은 이 여행에 대해 이야기한다.

라인강은 도착 첫날 잠시 속도를 늦추고 걸으며 바라본 것 말고는 매일 두 번씩 트램을 타고 건너기만 했 뿐인데, 바라보고 있자니 이곳에서 가장 그리운 것이 어쩌면 강이 될지도 모르겠다는 맥락 없 생각이 든다.


라인강 ©hybridKIM


흠흠


'때가 되었는데 왜 글이 올라오지 않느냐'는 함축적 의미가 담긴 작가 J의 카톡이 지구 반대편 호주로부터 날아왔다. 우리에게 브런치 작가로 글을 쓸 자격이 생기면서부터 이 매거진의 마지막까지 초심을 잃지 않은 작가 J의 독려 덕에 드디어 우리는 에필로그라는 걸 쓰게 되었다.


이 여행기는 2월 초 여행을 다녀온 후 시차에 완전히 적응되지 않는 상태에서 시작해 2달여의 시간을 꼬박 매진해 온 결과다.

매거진이 스위스 관광청 눈에 띄어 바젤의 매력을 널리 알린 공로를 인정받아 바젤에 한 번 더 초대되면 좋겠다는 가벼운 농담으로 시작했지만, 너무나 당연하게도  고통이 찾아왔다. 글쓰기계의 무지렁이이자 회사원인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으로 정한 마감 때마다 스스로의 한계에 직면해야 했다.

그럼에도 함께 무언가를 만들어간다는 건 즐거운 경험이었고, 마침내 에필로그를 쓰고 있다는 것 자체로 대만족 중인 상태. J는 벌써 끝이냐며 정색했지만, 끝이다.


연차를 쪼개어 징검다리 휴일을 이리저리 이어 붙여 긴 시간을 날아온 여행자들답게 성실하게 일정을 소화했음에도 불구하고 여행을 정리하고 보니 아쉬움이 남는 것들을 나열해 본다.


한번 더 바젤에 오게 된다면,

노바티스 캠퍼스 투어가 가능한 주를 고르겠다.

동네 주민들이 가득 들어 차 있는 페이퍼 뮤지엄의 레스토랑과 전시는 놓치지 말아야지.

취리히에 가서는 크리스트 & 간텐바인의 스위스 국립미술관을 보고, 프라이탁 매장을 조금 더 진지하게 둘러볼 거다. 그리고 이번엔 내가 친구에게 밥을 사야겠다.

다음 바젤 여행에는 바이엘러에서 비트라에 이르는 아름다운 길을 걸어볼 수 있는 계절이면 좋겠다.

그 계절에는 모네의 수련이 걸린 전시실 앞 연못에 수련이 가득할 것이다. 모네가 있으니 자코메티도 있겠지. 

라인강과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할 예정이다.

라인강은 물살이 세니까 수영은 좀 더 생각해 봐야겠다. 대신 노천카페에 앉아서 라인강을 지겹게 바라봐야지. (헤르조그 아저씨를 만나게 될지 모르니까)


바이엘러에서 비트라로 걸어가는 코스. 스위스/독일 국경을 넘고 포도밭을 지나는 매력적인 길인데, 지도에 따뜻한 기운이 가득하다.   출처 https://www.24stops.in


적고 보니 많은 것들이 따뜻할 때 가능한 일들이다.

그런데, 그렇게 추운 날 왜 바젤에 갔냐고?

이 매거진의 글들이 그 질문에 대한 답이 되면 좋겠다.


건축가 K의 바젤 여행기,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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