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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ybridKIM Mar 23. 2023

05 경계 없는 집에 사는 덩치 큰 가구

슬라툼 SLATTUM 침대

1.

5시 반 기상.

방탄커피를 만들어 마시고 수영장에 간다. 수영이 끝나면 돌아와 창문을 열어 밤사이 묵은 공기를 내보내며 이부자리를 정리한다.


이것은 ‘갓생’을 살고 있는 mz의 리추얼이 아니다. 침실의 문을 닫을 수 없는 어느 원룸 생활자의 이야기다.


어느 날 집을 나서기 전 이 루틴을 반복하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내가 정리에 취미가 있는 사람은 아닌데, 이부자리를 꼬박꼬박 정리하다니.

하지만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2.

나는 원룸에 살고 있다.

원룸에 산다는 것은 거실과 침실과 주방이 경계 없이 모여있는 곳에 산다는 뜻이고 집에 들어오자마자 이 모든 것이 한눈에 읽힌다는 의미이다.


그중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것은 침실이다. 모든 가구 중 침대가 가장 덩치가 크기 때문이다.

현관문을 열고 수납장이 있는 복도를 몇 발짝만 들어서면 내 침실이 그대로 보인다는 것은 어쩐지 어색하고 민망한 일이었다.


3.

고민이 시작된 것은 이사를 하고 새로운 침대를 사면서부터다.

처음엔 침실을 보이지 않게 가리는 방법을 생각했다. 벽이나, 기둥, 파티션, 커튼, 블라인드... 같은 것들로 말이다.

그렇지만 원래 좁은 집을 굳이 나누는 건 답답해 보일 수 있는 데다 공사가 필요하거나 혼자 힘으로 통제가 불가능한 방식은 소극적인 임차인에게는 아무래도 부담스럽다.

파티션으로 공간을 구획할 수 있다. 출처 한샘

그렇다면 어차피 사야 할 침대, 다른 가구들과 한데 모여 있어도 어울리는 디자인의 침대를 고르기로 했다. 그리고 이부자리 정리도 게을리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4.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매트리스와 수면의 질의 상관관계를 몸소 체험한 이후

‘다음번’엔 꼭 시몬스를 사야겠다고 줄 곧 생각해 왔다.

‘다음번’이 언제가 될지 구체적으로 생각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마도 그건 나의 집이 생겨서 나에게 좀 더 좋은 침대를 허락해도 되는 시점이었을 거다.

그런데 침대를 바꿔야 하는 그 ‘다음번’이 왔는데도 여전히 내 집이 없었다.    

내 집도 없었지만, 때마침 경제적인 여유도 없었다는 것은 어쩌면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큰 고민 없이 그냥 이케아에서 침대를 사기로 했다.


5.

10평 남짓한 작은 집에 들일 침대를 고를 때에는 사이즈의 문제를 피해 갈 수 없다.

침대를 이용하는 동안의 안락함을 고려한다면 최소 더블사이즈 정도는 되어야 했다.

처음 이 집을 보러 왔을 때 방안에는 이전에 살던 사람의 가구가 놓여있었다. 침대, 책상, 소파 정도가 전부였지만 유독 침대가 커서 집이 더욱 좁아 보였다.


원하는 사이즈를 슈퍼싱글로 하향 조정했다.


나와 함께 이 문제를 고민해 주던 친구는 현재 집이 좁다는 점, 침대 프레임이 커지면 매트리스도 커지기 때문에 가격이 껑충 뛴다는 점 등을 들며 ‘다음번’ 집에서의 크고 좋은 침대를 위해 이번엔 싱글침대가 좋겠다는 의견을 냈다.

일리 있는 주장이다. 하지만 싱글사이즈는 아무래도 너무 좁다.

언제 올지 알 수 없는 ‘다음번’을 생각하며 너무 많은 것을 유보하고 싶지는 않았다.


사이즈는 슈퍼싱글로 결정했다.

이케아에서 슈퍼싱글 사이즈의 침대를 꼭 사야 하는 이유가 있다면, 120*200 사이즈로 우리나라 브랜드의 슈퍼싱글보다 보다 폭이 10cm 더 넓기 때문이다.

처음 고려했던 더블사이즈보다야 작지만 이미 슈퍼싱글로 눈높이를 낮춘 후에 이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생각지도 못한 10cm를 더 확보한 셈이다.


6.

우리 집에 가장 어울리는 침대는 어떤 기준으로 선발해야 할까?

이미 가지고 있는 회색의 패브릭 소파와 이제 사려고 마음에 두고 있는 메달 프레임의 선반 같은 것들을 생각해 봤다.

침대 헤드가 살짝 올라온, 패브릭으로 마감된 쿠션형 침대라면 다른 가구들과 어울리면서 전체적으로 균형 있는 집을 만들어줄 것 같았다.

침실이 너무 강조되어 보이는 건 싫으니까 침대헤드는 높지 않아야 했다.

이왕이면 채도가 낮은 컬러로 악센트와 무게감을 동시에 주고 싶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

예를 들면 이런 것. wekino의 보이드 베드

그렇지만 이것은 나의 예산과 거리가 멀었고, 마침 이케아에는 상대적으로 저렴한 가격대의 쿠션형 침대가 있었다.

슬라툼 SLATTUM 침대가 그것이다.

재질과 컬러가 완벽하게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비슷한 가격대에서는 대안이 없었다.

슬라툼 SLATTUM. 출처 IKEA

   

프레임은 슬라툼 SLATTUM 슈퍼싱글 사이즈, 매트리스는 발레보그 VALEVAG의 매우 단단함으로 선택했다.(이케아의 매트리스는 단단함/매우 단단함 두 가지가 있다.)


슬라툼은 여러모로 장점이 많은 침대이다.

일단 부드러운 패브릭으로 마감되어 편안하고 아늑한 느낌을 준다.

적당한 높이의 침대헤드는 잠들기 전 침대에서 넷플릭스를 보거나 독서를 할 때 등받이가 되어 주므로 유용하다.

침대 아래에는 수납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 이케아에서 판매하는 다양한 스타일의 수납상자들을 이용하면 옷장이 터져나갈 때쯤 할렐루야를 외치게 될지도 모른다.

나는 회색 슬라툼으로 구매했는데 다양한 컬러나 패턴의 침구 및 쿠션들과 매치하기 좋다.

그리고 발레보그 VALEVAG 매트리스도 딱히 흠잡을 데 없이 편안하다.


혼자서 조립은 힘들 수 있다. 그러나 가능하다. 나도 혼자 했으니까. 다만 시간은 좀 걸렸다.

스스로 조립해야 하는 상황이 온다면 조립할 때 핸드폰은 바닥에 두지 마시길 권한다.

혼자서 고군분투하는 중에 침대 프레임이 쓰러지면서 핸드폰을 깨뜨렸다. 사진이나 연락처를 동기화해놓지 않은 나 같은 사람이라면 아찔함과 막막함으로 조립하는 도중에 재충전의 시간이 ‘상당히 많이’ 필요할 수 있다. 핸드폰을 깨뜨리지 않는다면? 조립 시간을 단축할 수 있다.


침대 하부에 수납이 가능하다. 출처 IKEA
경계 없는 집. ©hybridKIM


7.

오늘도 수영을 다녀와 이부자리를 정리했다.

창문을 열고 이불의 먼지를 턴다. 이불과 베개를 평평하게 정돈하고 그 위에 침대 스프레드를 깔고 쿠션을 올려두었다.


출근을 하러 현관문을 나서기 전 집을 한 번 돌아본다.


잘들 있거라. 내가 돌아올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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