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이 인격이다."
영업사원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내가 자주 듣던 말이다. 월말이 되면 진행되던 영업마감회의에서 선배들이 자조섞인 얘기로 자주 했었다. 매출 목표를 달성하는 것이 영업사원에게 숙명과 같은 것이라는 의미이다. 나는 첫 사회생활을 시작했던 20대 후반부터 4년 동안이나 영업부서에서 근무했다. 나에게 첫 직업으로서 영업은 그리 좋은 기억이 많지 않다. 권위적인 팀장님과 선배들, 그들의 불합리한 요구들, 거래처와의 제로섬 밀당들, 그리고 술. 그 당시에는 힘들기만 했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의미없이 시간만을 보낸 것은 아니다. 나쁜 경험은 하나도 없다고 누군가 얘기하지 않았나.
영업은 매출이 전부일까?
영업이 무엇인지 깊이있게 고민해 본 사람이라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안다. 내가 알게 된 영업은 이런 것이다. 당연하지만 영업은 사람을 만나는 접점에서 하는 일이다. 어떤 방식으로든 사람을 만나야 한다. 매장에서건, 전화나 인터넷으로건 고객을 만나서 진행하는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영업을 하는 사람은 사람을 좋아해야 한다. 나와 함께 영업사원으로 입사했던 여자 동기가 있었다. 그녀는 서울에서 여대를 나온 20대 중반의 젊은 여성이였다. 그녀의 성격은 내성적이라서 사람들 앞에 나서는 것 보다는 혼자 일하는 것을 좋아했다. 그렇기 때문에 거래처에 나가거나 새로운 매장을 방문하는 것을 매우 어려워했다. 결국 그녀는 1년 만에 지원부서로 이동을 하게 되었다. 영업은 당연하게도 사람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 사람을 만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면 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두 번째로 영업은 부가가치를 만드는 일이다. 보통 영업은 제품을 싸게 사서 이윤을 남기고 파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단순히 물건을 유통하는 일이 영업의 전부가 아니다. 서울 사람들에게 제주도의 신선한 갈치를 맛볼 수 있게 하는 것, 강원도 사람들에게 목포의 뻘 낙지를 먹을 수 있게 하는 것, 한국 아이들에게 필리핀산 망고를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 영업이다. 필요한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통해 가치를 부가하는 것이 영업이여야 한다. 단순한 유통을 넘어서서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세 번째로 영업은 이익을 내는 일이다. 4년 동안 영업부서에 일하면서 좋았던 것보다 안좋았던 기억이 더 많았다. 거래하던 영업거래처를 폐점해야 했고, 담당하던 백화점 매장을 정리해야 했다. 영업은 아무리 좋은 제품과 직원이 있더라도 이익을 내지 못하면 지속할 수 없다. 방문판매 대리점을 하던 어떤 사장님은 매출은 괜찮았지만 현금흐름을 고려하지 못하고 과도하게 투자했다가 폐업을 했다. 매출 뿐만 아니라 이익을 관리해서 사업을 지속할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영업이다.
마지막으로 영업은 사람의 감정과 관련된 일이다. 이성적으로 모두 설명되지 않는 일이 영업이다. 어느 날 각 조직의 임원들이 모여서 전략회의를 하는데, 마케팅 전무님이 논리적인 접근으로 영업의 문제를 제기했던 적이 있었다. 한참 듣고 있고 영업 전무님은 한 마디를 던지고 회의실을 나가버리셨다. "영업은 원래 그런 것입니다." 영업은 이성으로만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미국 백화점 노드스트롬은 자기 매장에서 팔지 않았던 타이어를 교환해 달라는 고객의 요구를 들어주었다. 모 제약회사 영업사원은 거래처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 정성이 담긴 손편지와 작은 선물을 때마다 보내드렸다. 사람은 머리가 아니라 마음이 움직여야 행동을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영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일이다.
시대에 따라 영업의 방식도 변화해간다. 화장품의 경우에만 봐도 대리점, 방문판매, 로드샵, 백화점, 마트 등을 거쳐 최근에는 디지털 채널이 부각되고 있다. 특히 코로나 유행으로 인해 고객들이 비대면 구매를 선호하게 되면서 오프라인의 전통채널은 갈수록 줄어들고 디지털을 활용한 온라인 시장은 점차 확대되고 있다. 많은 기업들은 이에 대응하기 위해 디지털을 통해 고객을 잡기 위한 노력에 집중하고 있다. 그렇다면 영업에서 중요하게 생각되었던 것들도 변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영업은 사람과 소통하고 그들의 감정을 움직이여 하며, 단순한 유통이 아니라 부가가치를 만들고, 지속가능하도록 이익을 내야 한다. 과거에 중요했던 것이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것이다.
우리는 아침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일을 시작한다. 저녁이 되면 가족들과 시간을 보낸 후에 하루를 마무리하고 잠자리에 든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의 모습은 변했지만 인간의 삶 자체는 과거와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우리가 해야 하는 것은 세상의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면서도 본질을 놓치지 않는 것이다. 음식을 담는 그릇에만 집중해서는 음식을 먹는 고객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음식을 맛있게 만드는 것, 본질에 집중하는 노력이 먼저 이뤄져야 한다. 우리가 영업을 한다면 앞서 언급한 영업에서 중요한 것들에 집중해야 한다. 그것이 영업의 본질이 아닐까.
C코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