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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택 Jan 26. 2021

현대판 노예로 살아가는 법

악의의 경쟁

 지난 주말 친한 친구 한 녀석을 오랜만에 만났다. 만나면 폭풍 수다로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우리는 각자의 바쁜 일상과 코로나로 인하여 한동안 만나지 못해 매우 고달팠다. 이후 카톡과 sns로만 연락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던 우리에게도 드디어 대면할 수 있는 적절한 타이밍이 생겼다. 그동안 밀린 이야기들을 쏟아낼 생각에 녀석을 만나기 전날은 어린 시절 소풍 가기 전 과자를 사는 듯한 설렘을 느꼈다.


 항상 우리는 만나면 밀린 근황 토크를 시작으로 마지막은 각자의 신세한탄을 늘어놓으며 마무리된다. 아무래도 우리의 나이에서 가장 힘든 이야기는 역시나 회사 생활의 이야기이다. 근래 둘 다 너무 회사에 너무 치여 어지간히도 힘들었나 보다. 너나 할 것 없이 본인 일이 더 힘들고 더 어렵네 하며 누가 힘든지 경쟁 아닌 경쟁을 하게 되었다. 마치 군필자 남자들끼리 모이면 군부심 부리는 것과 비슷한 맥락이려나?


 노예가 노예로서의 삶이 익숙해지면 이젠 자신의 다리를 묶고 있는 쇠사슬이 더 크니 더 이쁜 하며 자랑한다고 한다. 이렇게 각자 회사 생활이 거지 같고 힘들다고 경쟁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도 회사라는 사회에 귀속된 영락없는 현대판 노예인 셈이다. 내가 남들보다 더 힘들어야만 하는 이유는 뭘까? 내가 너보다 힘들지만 거뜬히 이겨낸 나의 능력을 과시하기 위함 인지, 너도 힘들지만 나의 더 큰 힘듦을 통해 잘 이겨내 보라는 위로 차원인 건지?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간혹 우리 부서가 바쁜 업무 때문에 반 강제적으로 야근을 밥 먹듯이 한다면, 정시 퇴근을 하는 다른 직원들을 나도 모르게 흉을 보거나 괜히 미워지는 경우를 더러 경험했다. 오히려 정시에 퇴근을 못하는 우리 부서가 비정상인데 말이다. 나의 비정상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상대방을 깎아내림으로써 정당화하고 있는 한, 야근이란 자랑스러운 훈장과도 같다며 말하는 상관이 있는 한, 우리의 삶은 노예로부터 벗어 날 수 없을 것이다. 위로와 동정보단 내가 더 힘들었다고 약한 소리 하지 말라고 다그치는 이 사회를 우린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그래도 그날의 노예 대결은 내 친구가 이겼다. 도저히 이기려야 이길 수 없는 사유였다. 괜히 나의 현재가 정상으로 보이는 착시현상이 일어났다. 모든 것은 상대적인 것 같다. 누가 더 힘드니 마니 하더라도 서로에게 신세 한탄을 털어놓은 우리는 그래도 그 순간만큼은 속이 후련했다. 언젠가 우리에게도 '내가 더 땡보네', '내가 더 편하네'로 자랑해도 전혀 부끄럽지 않고 오히려 떳떳한 순간이 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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