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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택 Jan 23. 2021

작은 사치가 주는 행복

300원 짜리 필터

 최근 처남에게 블루보틀 드리퍼를 선물 받았다. 지난번 처남댁과 내려왔을 때 잘 챙겨주셔서 고맙다고 선물을 보낸 것이다. 평소 집에서 커피 내려마시는 걸 좋아하는 나에게는 이보다 마음에 드는 선물은 없었다. 설렘을 가득 안고 블루보틀 드리퍼로 커피를 한 잔 내려 마셔 보기로 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기존에 쓰던 종이 필터와 블루보틀의 드리퍼와 규격이 맞지 않았다. 결국 블루보틀 전용 필터를 따로 구매해야 했다.


 네이버 창을 열어 블루보틀 필터를 검색했다.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일반적인 필터에 비해서 상당히 비쌌다. 인터넷 최저가 기준으로 30장에 6,800원 정도의 가격으로 거래되었다. 게다가 택배비는 별도다. 애써 계산해본다면 필터 1장당 310원 정도가 되는 셈이다. 싸게는 100매에 2천 원도 안 하는 게  커피 필터인데 이 것과 비교해본다면 제법 사치를 하게 되는 거다.


‘친환경 대나무 소재로 제작되어 커피를 내리기 전 별도의 린싱(헹굼) 작업이 필요 없는 혁신적인 필터입니다’


 ‘음.. 그래? 그럼 그렇지! 역시 블루보틀이야.’ 하며 납득을 하고 있는 나 자신이 순간 속물처럼 느껴졌다. 그래도 모든 제품엔 순정 이란 게 있고 제 짝이 있는 거니깐, 이왕이면 제대로 준비해보기로 하고 과감히 60장을 구매했다. 물론 아내를 납득시키기 위해 블루 보틀의 기원과 추출 방식에 대한 공부를 하게 된 것은 덤이다.


 전자저울과 타이머까지 사용해 추출되는 커피의 한 방울방울 하나까지 섬세하게 신경 쓰며 커피 한 잔을 만들었다. 매일 아침 출근 전 항상 텀블러에 커피를 내려가는 것과 비교한다면 정말  천지개벽 수준이다. 필터 한 장 한 장이 소중하다 생각하니 한잔 한잔을 FM대로 최선을 다해 만들게 되었다. 마치 익숙한 디지털카메라를 사용하여 수많은 컷 중 한 컷을 낸다기 보단, 필름 카메라를 사용하는 것과 비슷했다. 한정된 36판의 필름은 한 컷 한 컷이 소중하다 보니 확실한 순간이 아니면 셔터를 아끼는 것처럼 말이다.


 단순히 몇백 원을  주고 내려 마시는 커피지만 내가 느끼는 만족감은 몇백 원을 넘어 몇만 원의 가치를 맛보게 했다. 할애되는 시간, 비용, 노동, 조금은 힘들고 귀찮더라고  작은 사치가 주는 행복감은 굉장히 컸다. 지친 일상과 막막한 현실 , 소소하지만 작은 행복으로 극복하며 살아가는 나의 일상이다.




 최근 친한 친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고민할 것도 없이 웰컴 드링크로 블루 보틀 필터를 이용해 정성껏 커피 한잔을 내려 주었다. 호로록 마시는 친구의 모습을 보니 뿌듯했다.


“뭐고? 이거 말고, 그냥 믹스 커피 없나?”


 간혹 내 행복이 상대방의 행복과 비례하진 않았다.


"야! 너 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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