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와 사랑 사이에서

by 온택

가끔 아내와 아이들이 커서 어떤 사람이 될지 이야기할 때가 있다. “혹시 멋진 슈퍼모델이 되면 어떨까?” 농담처럼 웃어넘기지만, 그 안엔 부모라면 누구나 품는 작은 바람이 숨어 있다. 돌아보면 나 역시 부모와 가족의 기대 속에서 자라왔다.


어린 시절 나는 그림을 무척 좋아했다. 책가방보다 무거운 연습장이 집 구석에 수북했고, 연필로 슥슥 그린 스케치는 너덜너덜해도 내겐 하나의 습작집이었다. 연필 흑채가 번져 손바닥은 늘 시커멓게 얼룩졌다. 그러나 장손이라는 이유로,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시선은 언제나 예체능이 아닌 공부에 머물러 있었다. 좋아하던 것을 이어가지 못한 아쉬움은 지금도 마음 한편에 남아 있다.


나는 끝내 그 바람을 이기지 못했고, 내가 원하는 길 대신 부모가 그려놓은 길을 따라야 했다. 그 과정에서 답답함도, 억눌림도 분명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 돌아보니, 그 길이 결국 지금의 삶을 이루는 기반이 되었다는 걸 부인할 수 없다. 좋아하는 걸 내려놓은 아쉬움은 남았지만, 그게 내 삶을 불행하게 만든 건 아니었다. 무엇보다 이제는 안다. 부모의 기대는 결국 나를 더 안정적인 길로 이끌고 싶었던 사랑의 다른 이름이었다는 것을. 애정이 없었다면 기대조차 하지 않았을 테니까.


다만 나는 아이들에게 같은 방식을 물려주고 싶진 않다. 부모의 바람이 지나쳐 아이의 마음을 꺾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질 수 있도록 지켜주고 싶다. 거창한 성공보다 중요한 건 자기 삶을 감당하는 힘이니까.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 흔들려도 결국 자기 길을 걸어갈 수 있는 끈기, 그게 내가 바라는 전부다.


나는 오늘도 조용히 다짐한다. 아이들이 자기만의 길을 찾아 흔들림 없이 걸어가길. 그 길 끝에서 고단했더라도, 결국 환하게 웃을 수 있기를. 그것이 내가 품는 작은 바람이자, 사랑의 또 다른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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