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에 앉은 이유

by 온택

모니터는 27인치, 로지텍의 최고급 무선 키보드와 마우스, 의자는 허먼밀러. 누가 봐도 완벽한 데스크톱 환경을 갖추어 놓았다. 앉기만 하면 세상에서 가장 쾌적한 작업 공간이 펼쳐지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노트북과 충전기를 가방에 챙겨 굳이 카페로 향한다.


집보다 불편하고, 화면은 작고, 커피값은 비싸다. 합리적으로 따져보면 집에서 일하는 게 훨씬 낫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카페에 앉아 있으면, 나는 괜히 뭔가를 해낸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옆자리 대화, 커피머신 소리, 잔이 부딪히는 소리 같은 백색소음이 묘하게 배경음악이 되어주고, 노트북 화면 앞에서 웹서핑만 해도, 블로그에 몇 줄 끄적이기만 해도, 카페라는 무대 위에서는 근면 성실한 ‘노력파’로 보인다. 사실 카페는 효율의 공간이라기보다, 내 스스로를 속여서라도 움직이게 만드는 자기합리화의 극장이다.


그런데 신기한 일은, 그 자기합리화의 무대 위에서 의외로 많은 것을 해냈다는 점이다. 대학 시절 취업 준비를 하던 때도, 자격증 시험을 앞두고 벼락치기를 하던 때도, 진급을 위한 보고서를 붙잡고 씨름하던 순간도, 심지어 이직을 고민하며 자기소개서를 고쳐 쓰던 밤도 늘 카페가 내 곁에 있었다. 커피 한 잔 값으로 빌린 그 자리에서 나는 초조함을 달래고, 불안을 버티며, 결국 다음 계단을 밟아 올라갔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완벽한 데스크톱을 뒤로 하고 카페로 향한다. 누군가는 이해 못할 선택일지 몰라도, 나에게 카페는 작은 무대이자 은신처다. 여기서는 작은 노력도 조금 더 크게 보이고, 아무 일 없는 순간도 괜히 의미 있어진다. 그 착시와 위안이 모여, 결국 나를 다시 움직이게 만든다. 내게 카페란, 완벽하지 않아도 충분히 버틸 수 있는 삶의 배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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