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빠른 변화에 유연히 대처 하기
지난여름, 이효리, 유재석, 비의 싹쓸이 신드롬 이후 여러 곳에서 90년대 가요들을 심심치 않게 들을 수 있다. 비트 중심의 요즘 노래와 다르게 멜로디 중심의 노래와 직관적이고 감수성 짙은 가사들이 눈에 띈다. 그리고 노래를 듣고 있자면 이따금 당시의 시대상을 반영하는 가사들이 나와 그땐 그랬지 하고 실소를 짓게 된다. 그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가장 반가웠던 몇 가지 가사의 소재를 이야기하고 싶다..
1. 삐삐
1990년대
일부러 피하는 거니 (No) 삐삐 쳐도 아무 소식 없는 너
(Oh no) 싫으면 그냥 싫다고 솔직하게 말해봐
쿨 - 애상
온종일 전화만 열심히 쳐다보지만 잠든 전화기 깨워도 깜깜무소식
아무 일 없듯이 너무 말짱하던 삐삐 인사말 내가 먼저 전화하면 안 돼 참아내야 해
젝스키스 - 말괄량이 길들이기
그래 우연히 카페에서 널 봤어 낯익은 얼굴이 낯설지가 않아 따가웠던 시선에서 무엇인가 통하는 것
같아 얘길 했어 너의 취미 혈액형 내 스타일과 사는 동네까지 집 전화번호 삐삐 번호와 내 맘까지 다
터보 - 선택
90년대 핸드폰이 대중적으로 보급되기 전 '무선호출기' , 즉 삐삐라는 기기를 사용했다. 아버지들은 항상 오른쪽 벨트에 삐삐를 무슨 권총 마냥 차고 다니셨는데 허리춤에서 삐삑 하고 호출이 오면 근처 공중전화나 아무 가게에 들어가서 "삐삐 호출이 와서 전화 한 번만 쓰겠습니다." 하고 사용했다.
삐삐는 말 그대로 '여기로 전화 좀 해주세요' 하고 호출하는 방식이다. 이마저도 시간이 지나면서 발전이 되어서 연결했을 때 내가 녹음해서 인사말도 녹음할 수 있었고 작은 액정에 표시되는 번호(8282, 486, 7942)로 마음을 표현하기도 했다. 나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엄마가 삐삐를 사주셨다. 근데 거의 삐삐 끝물에 사주셔서 거의 제대로 활용도 못해보고 친한 친구들 삐삐에 음성 녹음해서 장난쳤던 정도의 기억만 남아 있다.
가요는 시대를 담는다고 90년대 가요는 당시 흥했던 삐삐에 관한 가사를 많이 볼 수 있었다.
2. 미니홈피
2000년대
oh baby 매일 들어가는 미니홈피 달콤한 향기
oh baby 내 사랑을 전하기엔 짧은 문자메시지
빅뱅 - 천국
얼마 전에 너의 미니홈피 들어가 봤어 사진이 보이지 않아 왜일까 생각해봤어 맞아 너와 나는 일촌이 아니었어
왜 나랑 일촌 끊었어 괜히 끊었어 괜히 끊었던 걱정하지 마 다시 일촌 하면 돼 뭐라고 할까 뭐라고 할까 예전 그때처럼 내 사랑 유세윤으로
UV - 쿨하지 못해 미안해
우리 사진으로 도배된 미니홈피 우리 둘만 재미있는 유치한 놀이
hey luv U - U A-Yo 느낄 수 있니? 취미 말투 미소 모두가 점점 닮아가는 너와 나
마이티 마우스 - 사랑해(feat. 윤은혜)
무려 페이스북보다 빨랐다는 개인 SNS의 조상 격. 버디버디, 세이클럽 등 과 같은 채팅 관련 서비스에서 개개인의 사생활을 노출시키고 주변 친구들과 교류하는 현 SNS의 플랫폼으로 갈아타게 된 시초. 뭔가 미니홈피라는 타이틀답게 프로필 사진, 문구, 다이어리 , 배경음 등으로 나만의 공간과 메시지를 표현할 수 있는 수단들이 많았다. 따라서 당시 도토리니, 일촌명이니 일촌평이니 하는 가사들을 담은 노래들을 쉽게 들을 수 있다. 가까이 지금 10대 들은 저런 감성의 가사를 이해 못 할 것이라 생각하니 뭔가 나도 많이 늙었다는 생각과 돌아오지 않는 우리의 추억이라 생각하니 울컥하기도 한다.
3. 인스타그램, 카톡
2010~
내일이 올 걸 아는데 난 핸드폰을 놓지 못해
잠은 올 생각이 없대, yeah 다시 인스타그램 인스타그램 하네
딘 - 인스타그램
그냥 보고 싶다 말해 전화해도 되냐는 카톡에 남은 내 감정을 모른 채 하길 아가 대체 무슨 일인데
I Can't say anything 그냥 널 보내주려면 늘 널 잊고 산 척 한 내가 추하고 바보같이 이런 식이 되네
오반 - 취한 밤
현재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를 반영하는 가사는 당연히 인스타그램과 카카오톡이지 않을까 싶다. 과거 친구들이랑 인스타그램은 과연 몇 년 갈까 하고 이야기 나눈 적이 있는데 당시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롱런하고 있어서 놀랍다. 또다시 생각해보는 것은 이렇게 수없이 변해가는 플랫폼 속에서 나는 과연 언제까지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다. 분명 언젠가 시간이 흐르면 노래 가사 속에 인스타그램, 카톡 이 들리면 아 추억이구나 싶은 순간이 올 것이란 말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