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일기
남자는 대부분 전역을 하고 나면 앞으로 살아갈 길에 대해 고민한다. 그래서 그런지 복학을 하고 나니 꿈과 낭만으로 가득했던 1학년 때의 느낌과 사뭇 달랐다. 수업을 들으러 가는 발걸음은 무겁고, 교수의 한 마디 한 마디에 크게 동요되었다. 더는 꿈과 희망이 없다며 편입 혹은 현장직 취업으로 타협하는 동기들은 늘어갔다. 아무래도 그럴 것이 우리가 다닌 대학이 지방 사립 대학이다 보니 학벌로 경쟁력이 없다고 판단한 것 같다. 물론 나라고 그런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자퇴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현실을 마주한 것 같았다.
그해 여름 방학, 죽마고우들과 제주도 여행을 가기 위해 단기 알바를 했다. 짧은 시간에 고수익을 올리는 일이다 보니 제법 힘들었다. 함께 일하던 아저씨는
"너희같이 지방대 나와서 취업도 안되고 뭐하겠냐? 빨리 나와서 돈이나 벌어라 부모 등골 휘게 하지 말고"
그해 여름은 더위 때문이 아니라 앞으로 살길의 막막함 때문에 숨이 턱 막혀왔다. 난 어차피 지방대생. 하지만 이렇게 학벌이라는 기준에 나를 옭아매어 루저로 남기는 싫었다. 어떻게는 발버둥 쳐서 살아남길 원했고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미니홈피에서 일촌인 고등학교 동창의 소식을 보게 되었다. 같은 학교 학생이지만 봉사활동, 대외활동, 공모전 등 무언가 즐겁고 필사적으로 대학 생황 하는 녀석의 모습을 보며 답답했던 가슴이 약간은 해소되는 느낌을 받았다. 어쩌면 이것이 우리가 당면한 현실을 조금이나마 탈피할 수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한 번뿐인 인생, 청춘, 학교, 학점, 스펙이라는 것들에 얽매이지 않고 청춘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펼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멋진 20대, 그리고 행복한 대학시절을 만들기 위해 그렇게 우린 뭉쳤다.
각자 마땅한 꿈은 없었다. 단지 특별한 대학시절, 그리고 함께 좋은 추억을 쌓자는 목표는 동일했다. 그리고 우리가 가진 생각 아이디어를 표현하고 증명하는 데는 마케팅과 광고라는 분야가 적합했다. 동현이와 태경이와 나와 준영이. 당시에는 베프라 불릴 정도로 지금처럼 친하진 않았지만 함께 할 수 있는 연결고리가 있기에 마치 10년을 함께 지낸 친구들처럼 빨리 가까워졌다. 그렇게 우리는 항상 공강이나 학교를 마친 뒤면 구닥다리 노트북을 챙겨 카페에 삼삼오오 모였고 대학생 공모전, 대외활동을 담은 대학내일과 같은 책자들을 보며 우리가 함께 도전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았다. 목표가 정해지면 관련 박람회에 참가해 체험도 해보고 아이디어 회의로 밤을 지새우기도 하고 직접 시장에 나가 발품도 팔아보았다. 그 결과, 처음으로 도전했보았던 한 주류사의 마케팅 공모전에서 2등이라는 쾌거를 달성했다.
이후 함께 했던 수많은 대외활동, 공모전들, 물론 좋은 결과도 있었고 실패도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들은 앞으로 우리가 무엇을 어떻게 준비해야 할지 목표와 꿈을 갖게 해 주었다. 우린 대학시절 모두 지방 사립대 이공계를 전공했다. 시간이 흐른 뒤 현재 4명 중 2명은 외국계 기업에 취업, 1명은 금융권 공기업에 취업, 1명은 학원 원장이 되었다. 결과론 적으로는 지난 대학시절 동안 경험했던 수많은 경험과 스펙 수상경력들은 취업을 하는 데는 직접적인 영향을 주진 않았다. 하지만 우리에게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캠퍼스 라이프를 즐겁고 행복한 추억으로 가득 채워주었다. 오늘보다 내일이 기대가 되던 시절... 그립고 또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