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온택 Dec 12. 2020

삶의 변화에 따라 바뀌어 가는 친구들

친구들도 어울리는 시즌이 있다.

나에겐 다음과 같은 인간관계의 종류가 있다.



타입 1. 어린 시절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란 죽마고우들.


어린 시절부터 같은 동네에서 자라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까지 함께 다니며 이어져온 관계다. 멋모르던 어릴 때부터 알다 보니 각자의 집안 사정이나 가족 관계 그리고 감추고 싶은 기억들을 모두 다 알고 지내는 사이다. 어떻게 보면 친구라는 느낌보다 가족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그래서 어떨 때는 얼굴만 봐도 꼴도 보기 싫어 서로 흉보고 욕하기도 하고,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이내 잘 지내기도 한다. 하지만 서로의 가치관이 형성되기 전에 만난 친구들이라 그런지 서로의 취향, 공감대가 매우 다르다. 따라서 서로의 그런 다른 점을 놀리기도 하고 이해하기 어려워하기도 한다. 언제 어디서 만나도 서로에게 부담이 없어 대부분을 흔히 각자 남는 시간에 만나는 친구들도 이쪽 타입이다. 오랜 시간 관계를 맺어온 만큼 가장 소중한 존재는 맞으나 삶에 대한 관점은 확실히 틀려서 하루아침에 남이 되는 경우도 이쪽 타입이었다.



타입 2. 대학시절 만난 건설적이고 진취적인 친구들.



 흔히 대학에서 만나는 친구들은 가식적이고 우정이 상대적으로 덜 하다는 편견들이 있지만 난 그렇지 않았다. 대학 시절을 그저 그렇게 보내는 게 아닌 공모전, 대외 활동, 취업 등 서로 목표와 지향하는 바가 같아 빠르게 친해져 대학시절 내내 함께 노력한 친구들이 이 타입이다. 가치관도 비슷해 함께 많은 것에 도전하고 결과물을 이끌어내어 서로의 능력에 대한 장단점을 가장 객관적이게 볼 줄 아는 친구들이다. 서로 같은 목표를 향해 만나다 보니 서로 대화의 주제가 제법 건설적이고, 억지로 쥐어 짜내지 않아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하게 된다. 취업 이후에도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하며 서로의 직업과 업무를 격려해준다. 하지만 어른이 되어 만난 친구다 보니 각자의 개인 가슴속에 있는 심도 깊은 대화나 사정 까진 헤아리지 못한다. 따라서 자신의 생각과 잣대로 서로를 판단하거나 평가하다 보니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경우도 이따금 있다.


타입 3. 관심사 및 취향이 잘 맞아 함께하면 즐거운 친구들.



 서로의 취향이나 공감대가 잘 맞으면 성별 나이 직업 출신 등을 불문하고 두루두루 잘 어울 릴 수 있다. 이 타입의 친구들도 이러한 경우다. 따라서 앞선 타입과 다른 점이라면 동생 및 형 들도 있어 다양한 연령대를 지녔고, 학교, 학과, 사는 지역도 틀리다. 하지만 서로가 좋아하는 부분들이 너무나도 잘 맞아서 스노보드, 보드, 서핑,  스포츠 관람, 아지트, 봉사활동 운영, 여행 등  체험 및 취미 생활 따위를 함께 할 수 있다. 따라서 함께 있으면 즐거운 일만 있고 만남에 크게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없다. 서로에 대해 비관적이거나 비판적인 자세로 바라보지 않고, 항상 있는 그대로를 리스펙 해준다. 지금 현재까지도 자주 보고 가깝게 지내는 무리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두 타입의 친구들보다는 알고 지낸 기간이 길지 않다.



타입 4. 하나의 집단에 속해 맺어진 인연



 동창들, 군대의 전우들, 직장의  동료들이 여기에 해당된다. 하나의 공통된 집단에서 힘든 시간을 함께 이겨내고 동고동락하며 지내다 보니 서로에게 매우 힘이 되는 존재. 힘들 때마다 이따금 농담도 따먹고 남 욕도 하며 작지만 그 소소한 행복을 함께 나눌 수 있다. 집단에 내에서 자주,  오래 봐서 서로를 잘 알지만 막상 밖에서 만난 시간보다 집단 내에서 지낸 시간이 더 많기 때문에 뭔가 모를 보이지 않는 작은 벽이 있다.  또한 밖에서 본다 한들 그 집단에 속한 이야기가 주로 대화의 주제로 계속된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더욱 자주 보고 관계를 지속하여 집단의 벽을 허물고 더 좋은 관계로 발전해 나간 케이스도 있다.



타입 5. 적당히 알고 지내는 사람들



 어떠한 계기로 알게 되어 지금까지 연락도 하고, 서로 안부를 물으며 관계를 이어온 타입. 대부분 알고 지내는 사람들은 적당히 이쪽 부류의 사람들이지 않을까? 각자의 좋은 점만 알고 있고 서로의 영역을 침해하지 않고 적당한 선과 거리를 그으며 지내는 사람들. 그렇게 득이 되지도 해가 되지도 않는다. 그래도 인연이기에 곁에 두고 지내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또 더 나은 관계로도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닌 사람들.






감정 소모를 겪으며 인간관계에 염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근데 어느 순간부터  즐겁게 만나야 친구들이 만나면 피곤하고, 심지어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우선 상대방의 언짢은 언행이나 코드적인 문제다. 만나기만 하면 부정적인 이야기만 늘어놓아 상대로 하여금 지치게 만든다거나, 상대방을 친구라는 이유로 쉽게 재단하고 평가하며 언행이 적절한 수위를 넘는 일이다. 또한 서로가 처한 상황이나 위치가 점점 달라지다 보니 대화 주제의 접점을 찾기 힘들고, 쉽게 공감하기 어려워 만나면 지루하고 재미가 없어지는 경우다. 다른 측면으로는, 나는 모든 친구들에게 항상 좋은 사람으로 남고 싶고, 누구 하나 버릴 것 없이 소중한 존재들이기에 관계 유지를 위해 나 스스로를 너무 희생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친구들을 볼 때마다 서운한 감정이라든지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부쩍 늘어났고 어느 순간 그 관계에 지쳐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억지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까지 이어져온 관계에 집착하지 않다.


 분명 거미줄 같은 인간관계에서 오는 피로감과 회의감은 마음에 여유가 없는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씩은 느끼고 겪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나도 정신건강과 행복을 위해서 무수한 인간관계 속에서의 선택과 집중을 하려 한다. 그저 이어져 온 관계의 끈을 놓거나 방치한다기보다는 지금 나의 상황과 조건에 맞는 사람만 만나면서 불필요한 감정 소모는 겪지 않으려 한다. 관계라는 것이 오랜 시간을 함께 하고, 많은 추억을 가지고 있어서, 놓지 못하는 것이면 이것이 미련이고 집착이다. 오히려 그런 틀에서 깨고 현재 나의 마음이 가장 편안하고 즐거울 수 있는 위주로 인간관계를 꾸리고 마음을 열어 새로운 인연도 받아들이고 자 한다. 이기적일 수도 있지만, 삶의 환경이나 패턴에 따라 관계가 변하는 것은 당연한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행복의 과정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