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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택 Dec 13. 2020

군대에서 배워온 쓸만한 일

임무분담제

 다들 군 복무 시절을 떠올리자면 치가 떨리지만 기억은 미화되어 추억이 된다고, 가끔은 그 시절이 그리울 때도 있다. 그 강렬했던 2년이란 시간 동안 분명 지금까지도 영향을 준 것들이 있는데 그중 한 가지를 꼽자면 바로 '임무분담제'이다.


 임무 분담제란 청소를 할 때 계급에 관계없이 각자 맡은 구역에서 책임을 지고 일 하는 방식이다. 예컨대 김 병장은 내부반 바닥을 닦고 이상병은 화장실 세면대 박일병은 복도 등 말이다. 군대 자체가 개인의 공간이 아닌 단체 생활을 하는 곳이기 때문에 전원에게 책임감을 부여하고 전우애를 다질 수 있는 좋은 정책 중 하나였다. 내가 입대했던 그 시절엔 군대 내 부조리 척결과 선진병영 문화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노력을 했고 그중의 하나가 바로 임무 분담제였다.


 이러한 임무분담제를 겪고 사회에 나와보니 온 세상이 임무 분담 필요 투성이었다. 분명 우리는 대부분의 곳에서 단체 생활로 살고 있고, 각자의 역할이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한날, 친한 지인 형 동생들과 홍콩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남자 4명이서 모이다 보니 분명 다들 군필자에 군대에서 임무분담제를 배우고 온 사람들일 테니 딱히 누가 시키거나 말하지 않아도 각자 본인이 잘할 수 있는 부분에 임무를 맡기 시작했다. 영어를 잘하는 한 형은 계산을 해야 하니 총무 겸 통역, 등치가 좋고 체력이 좋은 동생은 짐 꾼, 길눈이 밝은 한 친구는 구글 지도와 노선을 보며 길잡이를, 나는 그들을 하나하나 나의 카메라로 촬영해주는 사진기사. 이렇게 임무를 분산하고 본인의 맡은 부분에서만 최선을 다 하다 보니 여행에 신경 써야 할 것들에 대해 부담감이 덜했고 불평불만이 없어졌다.


살다 보면 임무 분담의 순간들을 맞이한다. 무임승차원을 미연에 방지해 서로 얼굴을 붉힐 리 없고, 본인이 맡은 임무에 성취감과 보람 감을 느끼며 유용하게 사용해야 할 기술인 임무분담제, 군대에서 배워온 쓸만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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