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 없는 장모님의 요리

남의 집밥에 대한 거부감

by 온택



나에겐 남들과 조금 다른 특이한 습성 하나가 있다. 바로 '남의 집 음식'에 대한 거부감이다. 정확히 언제부터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거부감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초등학교 시절부터이다. 학교를 마치고 친구네 집으로 놀러 가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놀 때가 있다. 어느새 쨍쨍하던 해는 뉘엿뉘엿 사라지고 배꼽시계가 울릴 때 즈음이면 친구 어머님께서는 저녁을 먹고 가라 시며 한상 가득 차려주신다. 근데 뭔가 우리 집과 다른 반찬의 구성 때문인지, 김치 같은 젓갈 특유의 냄새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친구네 집 밥에서 뭔가 모를 역함이 느껴졌다. 한 숟갈 한 숟갈 삼키는 게 고역이어서 결국 대부분의 밥의 남기 고야 말았다.


중학교 시절에는 위탁 도시락 업체가 선정되기 전까지 도시락을 싸서 다녔다. 친한 친구들과 오순도순 모여 도시락 반찬을 나눠 먹었지만 절대 친구들의 반찬엔 손을 대는 일이 없었다. 학창 시절 수많은 음식과 관련된 경험을 통해 성인이 되고 난 후, 남의 집 음식에 대한 거부감은 의구심을 넘어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제는 집들이와 같이 남의 집에서 집 밥을 먹어야 하는 경우가 생기면 불편함을 넘어 스트레스를 받기 일쑤였다.


솔직히 내가 왜 이런 습성을 지니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분명 외식을 하거나 회사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는 데는 전혀 불편함이 없는데 말이다. 이런 나를 두고 주변 사람들은 지독스레 까탈스러운 녀석이라며 혀를 내두른다. 그다지 유난스럽지도 그렇다고 예민하지도 않은데 왜 유독 남의 집 밥에 대해서만 거부감을 가지는 걸까? 어릴 적 다른 집에서 먹은 집 밥에서 안 좋은 기억이 남아 무의식적으로 트라우마가 된 것인지, 아니면 평소 냄새에 민감한 탓일 수도 있는 것일까? 그렇다 해도 이제까지 살면서 크게 문제가 된 적은 없었다. 먹어야 할 상황을 회피해도 되고, 적절한 핑계를 대며 먹지 않으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나의 습성도 결국 큰 장벽을 만나게 되었다. 바로 장모님이 차려준 집 밥이다.


결혼 이후 장모님 댁에 찾아가면 장모님은 사위를 위해 정말 '상다리 휘어질 정도'로 음식을 차려주신다. 하지만 솔직히 장모님의 음식도 나에겐 그저 남의 집 밥일 뿐이었다. 게다가 가끔 집으로 돌아갈 때 반찬을 싸주시곤 하는데, 아무리 집에 먹을 게 없어도 이상하게 장모님의 반찬엔 손이 가질 않았다. 그래도 장모님 앞에서 음식을 거부하는 행위는 있을 수 없기에 남의 집 밥을 거부했던 지난 세월들을 무색할 만큼 행복한 표정을 지으며 꾸역꾸역 삼켜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결혼한 지 1년이 지난 무렵, 어느 순간 장모님이 차려주신 집 밥이 꽤나 잘 넘어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무엇인가 홀린 듯 밥이며 국이며 젓갈이 들어간 김치까지, 이제껏 느껴왔던 거부감은 어느새 말끔히 사라지게 된 것이다. 그토록 남의 집 밥에 거부반응을 일으켰던 내가 장모님의 음식을 이토록 잘 먹게 된 것은 무슨 이유에서였을까? 불가항력적으로 장모님의 음식을 억지로 집어삼키다 보니 나의 미세한 촉각들이 적응하게 된 것일까? 아니면 장모님의 요리에 무슨 마법이라도 있었던 걸까?


결혼 초반, 아직은 장모님이라는 호칭이 입 밖으로 나오기가 어색했던 시절, 자대 배치받은 신병처럼 꼿꼿이 정자세를 유지하고 말수를 아꼈었다. 불편해 보이는 사위를 위해 장모님은 언제나 신경 써주시고 배려해 주셨다. 그래서일까. 소심하고 내성적인 사위를 위해 부단히 노력하시는 장모님을 보며 나도 어느새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게 되었고, 어느덧 시간이 흘러 장모님 댁에 방문하는 게 한결 편해지게 되었다. 장모님의 집 밥을 거부감 없이 잘 먹게 된 것은 적응도, 그 어떤 마법도 아닌 장모님을 '남'이 아닌 엄마와 같은 '가족'으로 받아들인 순간부터가 아니었을까? 나의 지독하고 유별났던 음식 습관은 비로소 나 스스로가 장모님을 진정 가족으로 맞이한 순간에서부터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결국, 우리는 한 집에 함께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식구'가 되었다.



TV속 한 프로그램에서 유병재도 남의 집 밥을 못 먹는다고 말했다. 실제 인터넷에 검색해보니 생각보다 나와 같은 습성을 지닌 사람이 생각보다 많아 안도감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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