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 공백기가 있다는 게 하자가 많다는 뜻이 되었나
1.
"물류쪽 지원하셨죠?"
"네"
- 중략 -
"그럼 내일부터 출근하시겠어요?"
"(갑자기?) 죄송하지만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해도 괜찮을까요?"
"아... 뭐 그래도 되는데~ 그 사이에 다른 지원자들이 들어오면 자리가 없을걸요. 어떡할래요?(비웃음이 약간 섞여있는 목소리였다)"
얼떨결에 내일 출근하겠다고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야, 왜 빼려고 하냐? 너 없어도 올 사람 많아!' 하며 반쯤 협박하는게 너무 불쾌해서 계약을 취소했다.
2.
"대학 졸업 후에 이 업계에 오기 전까지 좀 길게 공백기가 있네요. 어떤 일 하셨는 지 알 수 있을까요?"
"장기간 공무원 시험을 준비를 하거나 타 업계에서 근무했었습니다."
"흠... 그리고 또 과거 공백기가 5개월 정도 있었네요, 이 때도 그냥 쉬었나요?"
"네."
"그리고 이번에도 공백기가 좀 길어요. 직전 회사 퇴사 후에도 이전처럼 똑같이 쉬고 계시는건가요?"
"네. (사실은 회사한테 사기당해서 바로 퇴사했지만)"
"음.. 희망 연봉이요, 직전 연봉보다 대략 n%이상을 기재하셨는데, 공백기가 너무 길어서 사실 많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어요."
"네~"
예전부터 오랫동안 생각하는 건데, '공백기'라는 이 괴상한 단어말이다.
이상하지, 한국은 묵시적으로 사람이 쉬는 걸 용납 못하는 사회여서 그런가. 이 단어는 보통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근래들어 사람들도 워라밸을 중요시하고 번아웃이라는 단어에도 관심이 많아지고 실제로 앓고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이상하게 채용시장에서는 돈을 벌고 싶으면 잠깐이라도 쉬면 안된다는 암묵적인 룰이 한국을 더 숨막히게 하는 듯. 그래서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이직을 하려면 어지간하면 (안전하게 경제활동을 하기 위해)환승이직을 하라고 하고, 공백기는 길어질 수록 폐급이 된다는...인식이 많은 느낌.
그런데 적당한 쉼은 필요한건 같은 사회적 노예인 월급 받는 직장인이라면, 인사팀 사람들도 잘 알고 있을텐데 매번 공백기로 사람을 공격하더라. 면접에서 공백기에는 뭐 했냐는 질문의 의도가 '오, 이거 네 약점이네? 채용 과정에서 어떻게든 이걸로 너를 깎아내릴거야. 너의 흠을 뜯어낼거야. 억울해? 날 설득해봐.'로 이해되고는 한다.
경제활동을 다른 분야에 도전하고 싶어서, 쉬고싶어서 쉬는 사람도 있지만 원하지 않게 회사의 경영악화, 가정사, 개인의 질병 등 많은 사유로 공백기가 있는 사람들도 많은데 구직자가 공백기가 있다는 이유로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공백기가 많은 사람 = 하자 많은 사람으로 본다는게... 구직자 입장에서는 좀 억울하지. 그런데 이거에 관해 인사, 채용담당들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좀 고쳐야 할 사고방식이라고 봅니다 ^^... 구한말조선사람 사고방식같아요.
기업이 구직자에게 말하는 "공백기가 좀 있네요?" 의 질문의 속뜻은 "공백 기간동안 뭔가 하지 않았어? 솔직히 남에게 증명할 뭐라도 해야했던거 아냐? 그럼 넌 그 기간 동안 자기계발도 안 하고 뭐했어? 경력 있으면 뭐해? 다른 사람들은 공백기에 학원 다니거나 자격증 공부도 하던데 니가 뭔데 아무것도 안 하고 놀아? 너 하자가 많구나?"로 들린다. 혹시 읽는 분들 중에 담당하시는 분 계시면 의견이 궁금하니 반박 환영합니다. 부탁드립니다.
채용하는 쪽에서 구직자에게 공백기 질문을 하는 의도는 알겠지만(건강하고 열!정!적이며 효율적으로 잘 써먹을 직원을 뽑고 싶은거 누가 모르겠어요) 다른 질문에 비중을 높여줬으면..
구직자의 공백기가 길면 궁금할 수 있고 물어볼 수 있다지만 이게 그렇게까지 채용에 영향이 갈 정도로 흠인가, 그렇게까지 사생활까지 자세히 알고싶어요? 아직 한국에 노동가능인구가 많으니 대체 인력도 있으니까 이것에 좀 깊은 생각, 고찰을 못하나? 왜 못쉬게하나요? 노예근성인가요? 숨막히고 여유없는 사회를 누가 만들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