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원예를 전공했는데요
나는 고등학생 때는 문과였는데 대학교에 진학하며 원예를 전공했다. 전공에 불만이 많았다. 원래 법학이나 지리학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성적이 되지않아서 원예를 선택했다. 입학하고 1년 간, 많은 방황을 했다. 반수를 할 것인지, 아니면 다 포기하고 공무원을 준비할 것인지 여러 고민을 하며 놀기에 바빴다.
교내 식물원에 가서 실습을 하는 전공 필수과목이 있었다. 직접 씨를 파종하고 키우며 관찰일지를 쓰거나 식물원 내의 다양한 수목을 관찰하며 전공 지식을 넓히는 수업이 주를 이루었다. 그 당시에는 정말 싫고 귀찮았다. 혼자서 식물원을 다니며 설명을 듣지 않고 여러 식물들을 보고싶었다. 그 다음에 수업을 들으면 좋았겠지만, 글쎄, 그 때는 지금보다 생각이 없어서 그랬을까, 그냥 혼자 고독을 씹는게 더 좋았던 것 같다. 이 덕분에 남들보다 관찰은 잘 하게 되었다.
대학교 2학년이 되고 그제서야 전공에 애착을 갖게 되었다. 1학년 때는 학교의 모든 것이 정말 싫었다.
지금 되돌아보면 그 당시의 나는 오만했다. 내가 왜 이런 후진 학교에 들어와서 수업시간에 떠드는 애들이 가득한 강의실에서 수업을 들어야하나? 하는 생각이 가득했다. 사람들이 어떻든 더 즐겼어야했고 공부했어야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과 전혀 관계없는 회사에 입사했는데, 상사들이 내 전공을 알게되자 사무실의 동양란,서양란과 고무나무, 크로톤 같은 사무실의 흔한 식물들을 키우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전공지식이 희미했지만 그래도 어느정도 기억이 남아있어서 다행히 잘 키울 수 있었다.
정말 심했던 경우는, 가망이 없어보이는 동양란을 어떻게든 살려내라고 강요했던 상사였다. 결국 어떻게 살리긴 했지만 그런 상사는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다. 전공을 했다고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던 사람이었다.
좋은 사람은 아니었다. (심지어 내가 퇴사할 때 회사 일 관련하여 대포통장을 권유하던 사람이었다. 법을 전공했던 사람이었는데도.)
원예를 전공하고 나서부터, 세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다.
나뭇잎과 주변 풀들을 보며 계절의 변화를 더 깊게 느낄 수 있다는 것. 공부하기 전에는 잘 보지 않았던 잡초조차도 흥미롭게 바라볼 수 있다. 심지어 곤충조차도. 바퀴벌레가 나타나도 무서워하지 않고 관찰을 할 정도이다. 무섭기보다는 어디서 왔는지, 대략 몇 센치인지 등등 관찰을 하게 된다. 곤충들도 각자의 아름다움이 있어서 더 자세히 보고싶어진다.
여름이 되면 자귀나무, 산딸나무, 수국, 닭의 장풀 등 좋아하는 식물들이 주변 곳곳에 보여서 기분이 좋아진다.
덥지만 여름이 좋다. 다 살아있다고 외치는 계절이라서. 생물들이 살아있다고 외치는 계절 속에서 내 우울증도 많이 나아지고 있다. 전공을 부끄러워 하지 않기로 했다. 살아있어서 기분 좋은 나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