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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직딩딩 Jun 02. 2020

최근에 든 생각을 모은 짧은 문단 모듬

생각나는 대로. 주제는 없습니다.

"내가 다 부족해서 그래요."

나를 스쳐지나간 남자들은 하나같이 입을 모아 이 말을 하며 나를 떠났다.

스스로가 부족하다고 느꼈다면 내게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 본인이 부족하다면서 스스로를 방어하며 도망치는 꼴을 보는 내 입장에서는 굉장히 비겁하고 찌질해보인다.

제발 다음 연인은 부족하다고 느낀다면 내게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

스스로의 부족함을 말하는 게 그렇게 자존심 세울 일인가. 우리 사이가 그런 자존심을 세워야할 정도로 먼 사이였나. 그 부족함을 내게 말하면 내가 당신에게 당장 이별을 고할 거라는 착각은 제발 쓰레기통에 버려줬으면 좋겠다. 나는 보기보다 당신의 찌질한 면을 봤다고 해서 이별을 고할 생각을 하는 그런 쪼잔한 쓰레기는 아니다. 오히려 나는 감사하며 당신이 부족하다는 부분을 보듬어주고 도와줄 것이다. 제발 겁을 내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는 애인사이가 아닌가, 나야말로 부족한 부분이 많은 사람인데, 서로가 더 나은 사람이 되고싶은 욕심이 생길 수 있는 건 당연한건데 스스로가 나에 비해 너무 부족하니까 이별을 고하는 사람들의 심리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비겁한 변명이다. 비겁하고 겁 많은, 식어버린 애정을 어정쩡하게 스스로가 부족하다는 말로 포장한 것이 아니고 뭐란 말인가. 당신은 소설 속의 주인공이 아니다. 부디 스스로의 비겁함에 부끄러운 줄 알기를.

앞으로 누구와 함께 앞을 바라볼 지는 모르겠지만, 용기없는 사람이 아니였으면 좋겠다.

정신질환 치료가 막바지에 이르렀다. 복용하는 약을 줄이는 방향으로 치료를 받으며 꾸준하게 상담을 받고 있다. 확실히 많이 나아졌다. 치료를 받으면서 깨달은 것들이 두 가지 있다.

첫번째, 남자친구는 내 삶의 조미료라고 생각을 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그 사람들은 내 삶에서 잠깐 에피소드를 만들어주는 조연이 될지도 모르는 임시 주연일 뿐이다.

잠깐 내 인생에서 즐겁거나 안타까운 에피소드를 만들어주는 사람들이다.

정말 고맙고 짜증나는 역할이라고 보면 되겠다.

이 사람들이 없어도 밍밍한 삶을 살아도 내 삶은 즐겁고 아름다운 것들로 가득차있다.

그러므로, 나는 남자친구가 없어도 내 두 발로 잘 걸어다니며 재밌게 살 수 있다. 사는 게 즐겁다.

남자친구가 있으면 더 좋지만, 없어도 그만이다. 사실 사귀는 건 서로가 행복하려고 하는 관계 아닌가.

조미료 없어도 내 삶은 간이 딱 맞다. 내 입맛에 잘 맞는다.

두번째, 내 시간은 너무 빨리 흐른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흘러서 이러다가는 곧 중년이 될 것 같은 두려움도 들 정도로 너무 빨리 흐른다. 그래서 하루하루 더 충실하게 살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자살하고싶은 생각은 하나도 들지 않는다. 죽는 것이 무서워졌다. (이미 이 생각이 들지 않는 것부터 우울장애가 많이 나아진 것 같다)

언제 어떤 원인으로 내 의식이 끊길 지 모르니까 좀 절박하게, 그렇지만 재미있게 살고 싶어졌다.

할머니에 대하여.

누군가는 할머니라는 단어를 들으면 애틋해하거나 싫어하기도 한다.

나는 두 단어에서 중간쯤의 감정이 든다. 애틋하면서도 싫다.

막둥이로 태어나서 어린 시절에는 할머니 밑에서 자랐는데, 할머니가 나를 보호해주기도 했지만 간섭도 유별나게 심해서 사춘기가 접어들 무렵에는 갈등도 잦았다.

그렇지만 나한테 못되게 군 것만은 아니여서, 어떤 때는 상담사처럼 말도 잘 들어주며 조언도 해주시는 할머니를 떠올리면 여러 감정이 뒤섞인다.

직장을 서울로 잡은 이후에 서울로 따로 살게 되면서 할머니의 보고싶다, 본가에 언제 오냐는 전화가 종종 온다. 서울에서 본가까지는 편도로 두 시간 정도 걸린다. 한번 가기에도 벅차다 사실.

그렇지만, 할머니의 연세는 이제 94세. 최근에는 몸 상태가 더 좋지 않아서 걱정도 들면서도 위에 썼듯이 나한테 그렇게 못되게 굴었는데 아프든 말든 나랑 무슨 상관이람. 하는 못된 생각도 든다.

모르겠다. 그렇지만 살아계시는 동안에는, 좋은 감정 많이 느끼게 해드려야지, 하고 종종 본가에 간다. 최근에는 코로나가 유행을 해서 가기에도 마음에 걸린다. 아주 만약에 혹시 내가 코로나를 옮기면 어떡하지..하고. 열심히 손 씻고 마스크를 쓰고 있지만 제발 종식되었으면 좋겠다.

자유롭던 일상이 그립다. 그 당연하다고 생각한 것들이 당연하지 않게 되었다.

할머니의 존재도 그렇듯이 당연한 존재가 아닌데.

마찬가지로 우리도 당연한 존재가 아니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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