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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딩딩 Jul 19. 2020

과로로 산송장이 된 직장인의
고요한 제주 나들이_1화

사람살려


간단하게 만화로 그려서 올릴까 하다가, 귀찮아서 사진과 함께 여행을 되새김하기로 했습니다.

9개월만의 제주입니다. 정말 버티고 버텼습니다. 직장인이라면 다들 느껴봤을 다들 아는 이 기분, 금요일 퇴근과 주말만을 목 빠지게 기다리는 직장인이 바로 나였고 이건 정말 사는 게 아니며 나는 사람이 아니라 산송장이라고 불려도 이상할 게 없는 상태였어요. 그리고 3일 휴가를 냈습니다.



1일차_김포공항 그리고 서귀포 맥주


지칠대로 지쳐서 계획은 커녕 출발 4시간 전까지 짐도 싸지 않았다. 진짜 귀찮아서. 괜히 여행가나 싶을 정도로 무기력한 상태였다. 진짜 귀찮았다. 부랴부랴 대충 짐 싸고 나와서 공항철도를 탔는데 오늘 날씨가 좋더군.



한강을 건너는데 참 예쁘더라.

이 때도 아무 생각 없었다. 아 나 지금 비행기 타러 가는 거 맞는데 그게 뭐 어떻다는거지? 하며.

출발 수속을 끝내고 기내에 들어갔는데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아 비행기 탔다. 끝.

좀 지나서 이륙한다는 안내방송이 나왔고 이번에는 부디 난기류를 만나지 않기를 빌었다. 

지난 제주 여행에서 심한 난기류를 만나서 이대로 죽나 싶었거든.


구글 맵을 실제로 보는 기분이다.


간척지가 보이는 걸로 봐서 인천같아보인다.



날씨가 정말 좋아서 구름 구경하는 재미가 있더라. 

나는 비행기 좌석을 선택할 때 항상 윈도우를 선택한다. 구름이 어둑하든 몽글몽글하든 너무 예쁘기때문에.

(잠깐 졸 때 창가에 고개를 기대서 자기에도 좋다. 항상 혼자 여행을 하니까)


한참동안 구름을 구경하는데 비행기가 점점 아래로 내려간다. 

그리고 이윽고



예쁜 석양과 바다가 나타났다.


그리고 제주국제공항에 도착. 



제주공항에 도착하고 1층 출구에 나오면 항상 있는 그 야자나무는 여전히 건강하게 잘 있었다. 오랜만이야.


늦은 오후 비행기를 타서 그런가 이제 석양이 지고 있었다. 낮은 건물들 덕분에 구름과 하늘을 더 넓게 볼 수 있어 제주를 좋아한다. 사람에 치이고 치이는 서울에 비해 한적한 서귀포 시내가 마음에 들더라

숙소에 짐을 던져놓고 근처에 제주 생맥주만 취급하는 곳이 있다길래 달려가서 맥주를 마셨다.



고기파스타도 굉장히 맛있고, 맥주도 시음이 가능해서 시음도 하고 술도 마시고. 기분 좋은 제주에서의 첫날 :)

이 날 술에 거하게 취한 채로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 잤다. 다음 날 계획? 몰라 내일의 내가 정하겠지 뭐. 오랜만에 아무 걱정 없이 편안하게 잘거니까.


아, 이 곳은 제주약수터라는 맥주집이다. 혼술도 가능하니 나같은 사람들에게도 추천. 

내 기억으로는 열두가지 맥주를 선택할 수 있는데, 종종 메뉴 일부가 변경되는 듯 하다. 

자주 서귀포에 가고싶어지게 ㅋㅋ





2일차_쓰레빠와 2만3천보를




그렇게 퍼마셨는데도 숙취도 없이 가볍게 기상하고 어디를 갈까 하다가 카멜리아 힐에 가기로.

오늘도 날이 좋다. 저 멀리 한라산이 보이네.


중문관광단지에 도착하고 걷다보니 익숙한 영감님이 해녀복을 입고 서있었다.


중문관광단지에 도착은 하긴 했는데, 근처에 뭐더라 중문해수욕장이 있다길래 가려는데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초콜릿 박물관 근처 숲속에 갔는데 아무도 없어서 산책하기에 정말 좋더라. 



여긴 뭐 스타벅스도 예쁘네 



저 아래에 해수욕장이 있는 것 같은데...

좀 돌아다니다가.. 일단 가려던 카멜리아 힐에 가기로.



카멜리아 힐


아니 근데 가다가 버스 환승해야하는데 버스가 없는거야.

그래서 택시 불러서 카멜리아 힐에 도착했고 입구 지나오니까 카페가 있는데 뷰가 엄청나더라



일단 구좌 당근주스 주문하고 마시면서 바깥 구경하니까 너무 좋았다.

카페에 들어가자마자 물 머금은 풀냄새가 났는데 벽에 현무암을 설치하고 이끼와 양치식물을 키우고 있었다. 그 특유의 신선한 공기와 냄새를 오랜만에 맡으니 제대로 휴식하는 기분이 들더라.


이곳에는 여름이니까 수국이 굉장히 많이 있었다.

나는 수국을 정말 좋아해서 돌아다니는 내내 너무 행복했다.

중간에 수국밭이 있었는데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_-


그렇지만 수국은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지는 꽃이지. 



치자꽃.

인공적으로 만든 치자꽃 향기는 맡아봤는데 생화 향기는 처음 맡아본다. 정말 진하다. 

인공적으로 구현한 향기도 좋지만 생화가 더 좋다.


아래부터 수국 사진이 대부분입니다.



카멜리아 힐에서 혼자 2시간 정도 돌아다니다가 쉬다가를 반복했다. 

마침 내가 갔을 때는 중간에 비가 와서 비 맞으면서 돌아다녔지만 그것조차 좋았다. 여행이니까 이 정도야.

공기가 맑아서 행복한 순간이었다. 하늘을 뒤덮는 고층빌딩도, 바글거리는 사람들도 없고, 자주 들리는 클락션 소리와 사람들의 수다 떠는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 이 순간이 귀하다. 

나는 어떤 간섭도 받지 않고 새가 지저귀는 소리와 벌레의 울음소리, 물 소리가 가득한 곳이 그리웠던 것이었다. 


여행할 때마다 느끼는 건데, 나는 외지에서 철저하게 외부인으로 있는 순간을 좋아한다는 것.

이 느낌이 외롭다고 느낀 적이 없다. 오히려 너무 편안하다고 느낀다.

그래서 여행은 항상 혼자서 한다. 둘이서도 다녀봤지만 생각보다 싫더라고.


아무튼 중간에 아까 갔던 중문관광단지에 다시 가서 해변을 보기로 했지요.

(어떻게 갔는지는 거 참.. 쉴롸호떼루노 토리시마리야꾸노 ㅇㅂㅈ님 마꼬또니모-시와께고자이마셍 ㅠㅠ 

잠깐 거기 호텔 뒤에 길이 있길래 따라서 해변으로 갔습니다ㅠㅠ 다음에 서귀포 묵을 때는 쉴롸리조또에 묵겠읍니다 ㅠㅠㅠㅠ)


아무튼 깊은 풀속을 헤치고 가는 도중에 고개를 돌려보니 중문색달해수욕장이 보이는군요.



도착 ^_^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파도치는 소리 라이브.

바닷속에 들어가서 놀아보고 싶었지만 해도 지고 있고 여벌 옷도 없으니 파도에 발이나 담그고 놀았지 뭐.

원래 모래밭에 앉아서 한라산 소주병 나발불면서 생각 정리나 하려고 했는데 

그냥 수평선이나 보며, 파도소리 들으면서 이 순간을 모든 감각을 동원해서 즐겼지 뭐

내가 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건 즐기는거지 일하러 온게 아니잖아 ㅎㅎ


바다를 멍하니 보면서 엄청 꼬여있던 생각의 실타래를 살살 풀어봤는데,

일단 코로나 사태로 채용시장이 불황이지만 얼른 이직을 하기로했어. 내가 이 지경이 된건 회사 때문이야.

아무리 열심히 일해도 인센티브 딱 한 번 쥐꼬리만큼 주고, 내 커리어에 도움이 되지 않아.

이 회사에 머무르기에는 내가 너무 잘났어. 재수없지만 사실이고 회사 동료들도 대체 너는 여기에 왜 있는거냐면서 의심할 정도로 인정하고 있어. (하긴 나 신입 때 회사 동료들이 나보고 경쟁사 스파이냐고 했으니)


두번째로 연애는 뭐 기회가 되면 하겠지만 결혼은 되도록이면 하지 않기로 했어.

연애도 사실 꺼림칙해서 하고싶지않네. 미안해 내가 스쳐지나간 사람들에 비해 직업으로나 성격으로도 

너무 잘난거 이제 인정할게. 내가 왜 나를 깎아내리고 있었을까. 나 진짜 능력도 좋고 잘난 사람인데. 

자신감을 더 가지기로 해. 


세번째. 인간관계에 대하여.

그래 내가 올해들어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바닥이 나버렸는데, 이건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어.

그렇지만 현실에서 이런 상태를 남에게 드러내지 않을래. 나도 먹고는 살아야지.


네번째. 전남친을 죽을 때 까지 저주는 하되 적당히 저주하자. 근데 범죄자가 안 죽고 뭐한대? 

여전히 주변에 돈 빌리고 다니니? 일단 저지르고 본인의 심신미약을 이유로 미안하다고 하고 다니니? 

정신이 붕괴되었다는 이유로 그런 개같은 행동은 참작되지 않습니다. 

상대방에게 어떤 행동을 하고 나서 미안하다고 말하기 전에 생각을 하고 행동을 해야지 선생이라는 사람이 그럼 못씁니다. 쓰레기가 교양있는 사람인 척 하고 다니느라 오늘도 고생 많으시네요. 


다섯번째. 정기적으로 여행을 다니기로.

어디든 좋아. 환경적인 환기의 중요성을 느꼈다. 

도시의 한강, 숲으로도 신제적인, 정신적인 환기가 되지 않는다면 다른 지역 혹은 나라에서 환기를 하는게 제일 좋다는 것. 



아니 그리고 카카오맵 너무한거 아니예요?ㅠ.ㅠ

카카오맵이 도보로 길 안내 해주는 곳 따라갔다가 큰일날 뻔 했다구요. 

안내하는 길 따라갔는데 완전 어두컴컴한, 본능적으로 여기 들어가면 분명 사고난다는 느낌이 드는 숲길이 내 앞에 있는데 어떻게 가요...아무리 내가 겁이 없어도 이건 아니라고 판단하고 도로를 따라서 좀 돌아서 갔지요. 그리고 이미 이 때 2만보를 넘게 걷고 있었네요!


아무튼 무조건 지도가 안내하는 길을 믿으면 안됩니다!



숙소 근처의 동네 가게! 육지의 도시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데 오랜만에 옛날 생각이 났어요.

그리고 또 술 마시러 갔어요.(ㅋㅋㅋ)



직원분이 저를 알아보시더니, "마저 못드셔본 거 있으시면 말씀해주세요."라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또 시음 주문을 했어요 :)



여기 진짜 맛있어요! 맥주 좋아하시면 꼭 드셔보세요!


혼자 신나게 술을 마시면서 제주에서의 이틀차의 밤이 저물어갔어요.

그래서 3일차에는 어디를 가나..하다가 대충 성산일출봉이나 가야지 하구 술에 취한 채 비틀비틀 숙소에 

도착하자마자 잠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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