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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딩딩 Apr 18. 2021

항상 제목을 정하지 못한다

요 근래 한달동안 무슨 일이 있었냐면, 이직한 회사1을 일주일 다니다가 그만뒀다. 

이 회사에는 디자인도 하는 퍼블리셔로 입사했는데, 웹 쪽을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사수가 없었다. 과거에 웹 에이전시에서 무슨 직군으로 있었는 지는 모르지만 근무한 적이 있었다고 하는 팀장만 한명이 전부.

아무튼 배너 이미지를 만들어달라면서 텍스트 파일만 넘겨주고 알아서 만들라는 식이었고, 레퍼런스도 없었다. 만들어줘도 돌아오는 건 다른 소스를 찾아보자는 말 뿐. 

입사 이틀 쯤에 대표가 경력이라고 뽑았는데 실망했다며 빨리 만들라고 재촉을 했다. 이 때부터 도망쳐야하나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배너 이미지 리젝을 10번 이상 당하고, 그만 두기로 결정했다. 입사 일주일만에 귀갓길 버스에서 공황발작이 날 정도였고 자괴감도 심하고 우울이 너무 심해졌기 때문이다..

혹시나해서 핀터레스트에 검색한 이미지와 똑같이 만들어줘도 아니라고 하니 나보고 어쩌라는 것일까?

나는 사람의 생각을 읽는 능력이 없다. 저 팀장이나 대표한테 있는지는 몰라도 나는 없다. 


한번은 회사의 수익 결과 이미지를 만들어야해서 팀장에게 전달받은 자료를 기준으로 이미지를 제작해서 대리에게 전달했는데, 대리가 메신저로 대뜸 ㅡㅡ 이모티콘을 쓰며 수익 금액이 너무 적다고 내게 따지는 것이다. 그러더니 갑자기 내 자리로 와서 화를 낸다. 나는 그저 어이가 없다. 


그리고 회사 랜딩 페이지를 수정하려고 서버에 들어가보니 php 5버전이었다. 지금은 보통 7버전을 쓰는데..

이건 아니다. 도망쳤다. 

회사를 자세히 알아보니 사짜들이 모인 회사였다. 금융쪽으로말이다. 본인들은 사기집단이 아니라고 주장하지만 사기를 치는 사람들의 말을 어떻게 믿지. 


사표 수리가 되고 바로 부산으로 떠났다. 

부모에게는 비밀로 하고말이다. 내가 해외여행을 하든 국내여행을 하든 전화를 그렇게 하신다. 

혼자 쉬러 떠났는데 쉴 수가 없기 때문에.

부산에 도착하고 숙소 체크인 후 가방을 깔고 앉아 밤바다를 멍하니 바라봤다. 털어낼 게 너무 많고 응어리가 복잡하게 얽혀있어 정리가 되지 않았다. 혼자 2박 3일을 돌아다녔다. 계획도 없이 돌아다니고 감천문화마을을 걸어서 올라가고, 만개한 벚꽃을 멍하니 바라보고. 바다가 가까이에 있어서 부산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다.


한번은 혼자 바에서 칵테일을 마시는데 옆 테이블 남자가 말을 건다. 혼자 왔냐면서 일행 중 한명이 내가 너무 마음에 들어한다며 작업...을 거는데 술김에 "내가 왜요????????"를 반복했더니 나가떨어졌다.

와 내가 낯선 사람에게 거절을 했다! 괜히 기분 좋았다.

다른 이야기지만 부산 갔다오고 그 다음 주에 마트에서 장을 보는데 어떤 남자가 다가와서 뭐 좀 물어봐도 되냐길래 뭐냐고 하니까 아까부터 지켜봤는데 너무 예쁘고 본인 스타일이셔서 그런데요 남자친구 있냐는 말을 하더라. 없다고 하고 거절 후 마트에서 도망쳤다. 무서웠다. 이제 장도 맘편히 못보네 짜증나게.


아무튼 바로 다른 회사2로 입사 했고 근무 3주째인데, 여기도 만만치 않은 막막한 회사다.

직원들 말로는 월급일이 계속 밀리고 있다고 하고, 내 업무쪽으로는... 원래 소스를 짠 사람이 있었는데 그걸 나에게 넘기며 이걸 기반으로 다시 사이트를 만들라는 지시가 내려왔다. 2주째 혼자서 끙끙 앓다가 마감이 임박했고, 너무 느리다는 이유로 다시 원래 소스를 짠 사람에게 파일이 넘어갔다. 

내 잘못일까. 아니면 지시를 개같이 한 코딩 하나도 모르는 디자이너 상사의 잘못일까.

상사는 업무 힘들면 말을 하라고 하지만 입사한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어떻게 자유롭게 말을 하지?


그리고 수정사항이 있을 경우, 디자이너라면 말로 하는 게 아니라 수정 시안을 줘야 하는 게 아닌가? 

내가 업무 순서를 잘못 알고 있는가?

이전에 도망친 회사에 있던 사람들과 같이 본인의 생각을 바로 파악하길 바라는 것 같아.

지시를 하는 사람은 디자이너가 맞나? 웹 디자이너가 맞는가? 웹 계열인데 코딩 기초를 하나도 모르는게 말이 되는가? 도무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나도 디자인 했었는데.


여러가지로 업무쪽으로 너무 짜증이 나는 이 회사를 옮길 생각이 아직은 없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진행되고 월급일이 밀린다면 어쩔 수 없이 옮기는 수 밖에 없다. 20대 중반 때처럼 억지로 버티며 병을 악화시키기에는 이제 내 시간과 몸이 안타까우니까.


지난 주 금요일에 2주동안 개삽질 한게 너무 허탈해서 퇴근하자마자 여의도 공원에 갔다.

마포대교에 자살시도를 하러 간 이후로 한번도 안 갔었는데 이번에는 다시 가봤다. 한강물이 가까워질수록 무서워졌고 그냥 다시 여의도역으로 돌아갈까 했지만 눈 딱 감고 다리를 건넜다. 


한달 사이에 그냥 이런 일이 있었다. 그냥.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왜 지 멋대로 설레하며 내게 다가오다가 피할까. 비겁해라... 이래서 남자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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