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짝사랑을 crushed라고 하나보다.그렇다 사람에게 치였다.
이 사람과 사귀기 전에는 이전에 나를 스쳐간 많은 남자들처럼 잠깐 연락하다가 또 늘 그랬듯이 나를 간만 보다가 소리없이 연락이 끊기겠지 하며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다.
사실 외국인 남자친구는 생애 처음이라, 내가 아무리 그 나라 사람들의 공통적인 특징을 알고 있어도, 개개인은 다 다르니까 어떻게 맞춰야하나 내심 걱정을 하게 된다.
그와 나의 공통점은 서로 같은 언어로 대화를 할 수 있다는 것.
이 남자가 나를 간보는 것 같았지만, 점점 조금씩 다가오더니 훅 들어왔다.
며칠 전, 그는 예상치 못한 야근을 하고 와서, 나와 가벼운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아이시테루요” 라고 말하더니, “한국어로 아이시테루가 ‘사랑해요’ 맞아?”라고 묻는다.
나는 맞다고 대답하고, 나도 그에게 일본어로 사랑한다고 쓰고 전송 버튼을 누르자마자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다.
이런 적은 너무 오랜만이어서요. 거의 2년? 3년?만에 두근거리나?
보통 연인관계가 시작할 때 한쪽이 상대방에게 “우리 사귑시다”식으로 고백을 하는 게 보통?아니 보통은 아니고 연인관계가 시작하는 방법 중 하나인데,
우리는.. 남자친구가 너무 화끈하게 사랑한다고 말해버려서 이렇게 됐다.
사람들마다 사랑고백 방법도 참 다양한 것 같다.
이전 연애의 마음의 상처가 너무 깊게 파여서 이번 연애가 좀 불안하긴 하지만,
너는 이전 연애의 그 남자가 아닌 다른 사람이니까, 다시 한번 너를 믿어봐도 될까?
앞으로의 우리 관계가 어떻게 될 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사람에게 의지하는 경험을 다시한번 해보려고 한다.
혼자서 버티기에는 이 세상이 너무 버겁고 무서워.
아무튼 남자친구는 나와 한국어로 술술 말하고 싶어하길래 이 사람은 나에게 관심이 많다는 걸 느꼈다.
보통은 상대방이 쓰는 외국어는 안 배우려고 하잖아.
천천히 한국어 배우자고 제안했고, 말 그대로 일상생활 한국어 문장을 하나씩 알려주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한국어를.. 아주 천천히 배웠으면 좋겠다. 한국어를 쓰는 나는 일본어를 쓰는 나보다 굉장히 거칠어서 보여주고 싶지 않다 ㅋㅋ)
친오빠가 이 소식을 듣고 나온 대답은 “일본인은 안돼”라며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직업 특성상 잠시 생각을 하더니 “한국인 남자보다는 나을 수도 있겠다.”라며 말을 바꾼다. 무슨 말인지 이해한다. 이전 연애에서 나는 상대방에게 죽을 뻔 했으니까 오빠 입장에서는...
뭐 아무튼 남자친구가 취미생활(낚시)을 하러 가면 장시간 연락을 할 수 없는데, 옛날 이전 연애에서는 이런 상황에서 은근히라도 불안했었는데 지금은 불안하지 않다.
정말 그냥 순수하게 “재미있게 놀다와!”라고 말할 수 있다. 그가 노는 동안 나도 나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점에서는 잘 만난 것 같다.
그가 많이많이 보고싶다. 음성통화와 영상통화로 데이트를 하는 이 안타까운 상황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다.
그는 이미 ‘보고싶다’를 외워버렸다. 귀엽다.
나는 다시 이직 생활 하느라 좀 많이 지치지만 서로의 물리적 거리는 굉장히 멀어도 정신적 거리로 치면 우리는 이미 서로의 곁에 있으니 괜찮을 것이다.
코로나가 많이 안정되는 그 시기가 온다면 우리의 거리는 더 가까워지겠지.
언젠가 그의 한국어가 능숙해지고 이 글을 읽을 수 있게 된다면 어떤 반응을 할까? 기대된다. 읽을 수 있게 되었구나, 축하해 남자친구야 :)
(항상 우중충한 이야기만 쓰다가 오랜만에 밝은 이야기를 쓸 수 있어서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