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요.
오랜만에 글을 써요. 상태가 많이 나아졌거든요.
그리고 유도를 시작했어요.
유도를 시작한 지 이제 2주 가까이 되어갑니다.
오랜만에 글을 쓰는데 갑자기 유도를 왜 시작했는지 의아할 수도 있겠습니다.
작년쯤부터 주짓수를 배우고 싶었어요. 그 당시에도 배우고 싶은 이유는 '그냥', 그런데 왜 시작을 하지 못했냐면 주짓수 도장 등록을 하려고 했지만 부상 위험이 너무 크다는 이유로 마음을 접었었어요.
그리고 올해, 생각보다 긴 공백 기간을 가지면서 무기력과 우울감, 공황, 불안감이 심해지면서 집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매일 기본 13시간은 잠만 잤습니다. 눈 뜨면 오후 3시나 4시경이었어요. 어떨 때는 오후 6시.
그래서 자전거를 왕복 45km를 타봤어요. 별로였어요. 엉덩이만 아플 뿐이고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어요.
조깅을 해봤고, 집에 있는 바벨로 데드리프트를 해봤어요. 말하기에 앞서 이 운동들을 깎아내리려는 의도가 아니고, 저한테는 일시적으로 기분장애 증상을 마취시킬 뿐이었어요.
그리고 운동이 우울증에 도움이 된다는 말들에 냉소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타 SNS에서 우연히 유도를 하는 사람들의 글을 읽었습니다.
읽다 보니 요즘의 제 또래와는 다르게 덩치도 크고, 키도 큰 편인 저한테 맞는 운동 같아 보였어요.
그리고 망설였어요. 돈이 얼마 없으니까 유도를 1개월만 등록해볼까? 그런데, 괜찮을까?
너무 충동적인 행동이 아닐까? 하며 거의 일주일 넘게 고민을 했습니다.
사실은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내가, 나 같은 정신병자가 대뜸 유도라니, 수습할 수 없는 일만 크게 저지르는 게 아닌가 싶었어요. 사람도 싫어하고 사람 만나는 것도 무서워하는 내가? 정말 괜찮을까? 하면서요.
잠시 다른 이야기를 하자면, 저는 삼십 대가 되어서야 저라는 사람을 서서히 분석할 수 있게 되었어요.
나는 이런 점을 가지고 있어서 장점이고, 저런 점도 가지고 있어서 장점이 될 수도 있고 단점이 될 수도 있다 이런 거요. (우울장애가 이렇게 해롭습니다...)
제 장점 중 하나는 행동력이 좋아요. 뭔가 해야 한다고 판단하면 바로 행동으로 옮겨요.
아무튼 돌아와서, 이 장점이 빛을 발하게 되었어요.
아 모르겠다 홧김에 집 근처 유도관에 등록하기로 했어요.
유도관이 있는 건물을 찾아 유도관 입구에 들어가려는데 여전히 무서웠어요. 무서워요. 그냥 아무 이유 없이 두려워요. '진짜 이거 해도 될까? 난 너무 뚱뚱한데, 유도관 안에서 들려오는 매트 마찰음이 무서워. 어떡해. 그냥 집에 갈까? 사람한테 말 어떻게 걸지? 표정관리 어떻게 하지?' 이게 계속 머릿속에 맴돌았지만 눈 딱 감고 입구에 들어갔고 등록을 시작했어요. 정신 차려보니 1개월 등록을 마쳤어요.
그리고 지금 현재.. 음.. 살은 빠지지 않았어요. 그런데 좋아요. 내 몸이 가볍고 기분도 좋아요. 매일매일이 즐거워졌어요. 작년에 헬스를 하지 말고 유도를 하면 좋았을 텐데 할 정도로 일찍 시작하지 않은 걸 후회할 정도예요. 아직 많이 서툴어요. 당연하죠.
저번 주에 유도를 하다가 저 자신한테 굉장히 화가 나던 날이 있었어요.
뭐 때문에 화가 났었냐면, 내가 내 의지대로 몸을 움직이는 법을 여태까지 몰랐다는 걸 이제야 알았다는 거예요. 내가 허리를 오른쪽으로 비틀었는지, 다리를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지 아예 감각이 없는 상태였어요.
그러니까.. 나는 이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그저 걷고, 뛰고, 페달을 밟고, 다리로 물장구를 치는 방법밖에 몰랐다는 거예요. 이게 뭐가 문제냐고 생각할 수 있어요. 뭐라고 말을 해야 하지.. 아, 미세하게 내 몸의 일부를 움직이는 법, 근육을 움직이는 법도 모르고 인지를 할 줄 몰랐다는 게 너무 화가 났어요.
나 여태까지 뭐 어떻게 살아온 거지, 회의감과 분노가 들었어요. 내 나이는 젊었지만 그냥 시체처럼 살아왔었구나 싶었어요. 지금은 다행히도 부정적인 감정이 덜해요.
저 생각이 든 후로 여러 가지로 반성을 많이 하고 매일 소소하게라도 몸을 움직이고 있어요.
앞으로 이 운동을 언제까지 하게 될지는 모르겠어요. 나는 꽤 변덕이 심한 성격이라서요.
개인적으로는 이 운동이 평생 운동이 되었으면 해요. 덕분에 일상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신기하게도 유도를 시작하고 나서 입사 지원하는 회사마다 최종 합격을 하고 있어요. 무슨 우연일까요.
내가 이런 개운한 기분을 느껴도 되는 걸까, 낯선 기분이 드는 요즘이에요.
그저 눈 딱 감고, 공백기간이 길기도 하고 사람을 만날 기회가 없으니 체력도 기를 겸 시작한 운동이 내 몸과 정신을 개운하게 해 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어요. 여태까지 했던 다른 운동과 똑같이 일시적인 기분장애 마취제가 아닌, 나한테 맞는 운동을 드디어 찾았네요.
아무튼 저는 월요일에 오랜만에 출근을 해요. 이번 회사는 정말 오래 다니고 싶어요. 정말 많은 것을 바라지 않으니 무난하게, 괜찮기를 바라며. 결국 내가 나를 구원했어요. 앞으로도 내가 날 살릴 거예요. 이러면서 스스로 삶을 살아가는 힘을 서서히 기르는 과정이라고 믿으며.
(+ 낙법을 배우니까 넘어지는 두려움이 서서히 사라지고 있어서 좋은 운동같아요. 그거랑.. 너무 힘을 많이 쓴다고 유리한 게 아닌, 중심을 잘 잡고 흐트러지지 않는 연습을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처음이라 어렵지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