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 편-절기] 깨어 나는 일

- 경칩인 듯, 우수 아닌, 입춘 같은 글

by 무혜한 하루

30대가 되고, 새로이 좋아진 것 중 하나는 절기를 세는 일이다.


봄꽃이 이르기도, 여름비가 잦아지기도, 가을단풍이 사라지기도, 겨울눈이 쏟아지기도 하는 세상이지만,

절기만은 그때에 맞춰서 올곧게 찾아오는 느낌이 들어서다.


오늘은 올해의 세 번째 절기인 '경칩'이다. 지난 입춘과 우수에는 남모르게 조용히 절기를 맞이하고 유유히 흘러 보냈다. 그 기억을 찬찬히 더듬어 본다.


입춘'봄의 시작'이라는 그 뜻풀이와 달리 나는 여느 또래들처럼 서른을 시작하지 못했다. 휴직 기간이 길어지면서 나의 어느 한구석은 조금씩 나아지고, 다른 구석은 자주 아팠다.


어디가 나아지고 아픈지 나조차 알 수가 없어서, 몸을 사라지게 할 작정으로 잔뜩 웅크리거나 가끔은 세상과 나를 향해 잔뜩 날을 세우고 뾰족하게 찔렀다. 그럼에도 숱한 하루들이 지나갔고, 다행히 나는 사라지지 않았다. 아픈 구석들도 연하디 연한 새살이 돋았다. ‘서른의 시작’이었다.


우수는 슬프게도 입춘만큼 유명하지 않아 나는 서른이 되고서야 그 뜻을 비로소 정확히 알았다. '비가 내리고 싹이 튼다'는 우수의 뜻풀이가 퍽 마음에 들었다.


입춘과 우수 사이 나는 어디서도 자리 잡지 못하고, 그저 떠다니는 빗물처럼 세상을 부유했다. 세종과 일산 사이, 가족과 친구 사이, 혼자와 연인 사이, 몸과 마음 사이 등등... 그 사이사이를 숨 가쁘게 들고 나며, 나는 조금씩 움트고 있었다.


"머리를 쓰면 몸이 편한 것처럼, 몸을 쓰면 마음이 편할 거야."


어느 날 동생은 밥상머리에 말을 올렸다. 동생의 여느 때 같은 밥맛 없는 화법처럼, 재수 없게 툭하니 올린 것이다. 재수 없는 남동생이지만, 나는 알았다. 듣는 순간 이 말이 아주 오래 내 마음에 들 것임을. 흥, 정말 재수 없어.


다음날 나는 집 앞 요가원으로 향했다. 한 시간의 체험 수업을 마치고, 선생님은 등록 여부를 여쭈었다. 나는 '생각 없이' 주 5회 등록을 했고, 이 '생각 없음'은 보통의 '생각 있음'보다 잘한 결정이었다.


요가 선생님은 요가를 통해 이루고자 하는 바가 있는지 물었다. 나는 '망설임 없이' 요가를 아주 잘하고 싶다고 했다. (선생님처럼 요가를 잘하고 싶었다...) 특히, 나는 몇 년 전부터 꿈꿔온 '머리로 물구나무서기'를 꼭 하고 싶었다. (이건 부끄러워서 말씀을 드리지 못했다...) 선생님은 싱긋 웃으셨다. 요가원의 주황빛 조명, 은은한 인센스 향과 잘 어울리는 웃음이었다.


요가 3주 차,

지금 나는 '물구나무서기'를 할 수 있느냐?

아니요. 절대요.


무엇이든 쓰는 일은 어렵다. 마음을 쓰고, 머리를 쓰고, 몸을 쓰고, 글을 쓰고... 모두 어렵다. 그중 작심 3일을 넘어 작심 '3주'의 몸을 써본 나는, 처음으로 내 몸을 제대로 알아가는 기분이다.


숨을 마시고 내쉴 때, 나는 코와 가슴과 배를 느낀다. 코로 스치고 나가는 숨결과, 그에 따라 부풀어 오르고 커지는 가슴과 배의 공간감을 느낀다. 나는 발목이 약하구나, 뒷목이 뻣뻣하구나, 불편할 때는 이런 숨을 뱉는구나 등등. 온몸으로 나를 견디는 기분이 든다.


숨을 채우고 비운다. 아직은 물구나무를 서지 못하지만, 나는 분명 볕이 잘 드는 토양에 살포시 심겨지는 중이다. 언젠가는 우수의 절기처럼 싹을 피워 단단히 설 것이다.


지금의 나는 요가를 '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렇다고 '못'하고 싶은 건 아니다...) 문득 이 운동을 오래 하고 싶은 마음이 커져서다.


좋아하는 것, 그중에서도 꾸준히 좋아하는 것의 어려움을 알기에, 어느 지루함을 견디고 결국 좋아하는 것으로 남는 것의 소중함을 알기에, 이제는 반짝이는 '잘'보다 내공이 쌓인 단단한 '꾸준함'이 좋다. 내년의 오늘, 3월 6일에도 요가를 하는 꾸준한 나를 기대해 본다.


그렇다. 오늘은 3월 6일이다. 경칩이다. 미세먼지도 개구리와 함께 깨어난듯하다. 콜록콜록. 개굴개굴. 콜록개굴.


나는 우수가 지나서부터 내내 바스러지는 '경칩'을 기다려 왔다. 경칩은 발음상 경쾌하다. '-칩'이라고 하여 가볍게 입을 다무는 모양새도 어딘가 새침한 구석이 있다. 또 '감자칩, 새우칩'이 떠올라 과자의 바삭거림이 생각난다. 얇은 물건이 톡 하니 깨어진다. 아마도 나는 경칩이 오는 날, 바로 그날 깨어지길 바란 것 같다. 겨울잠에서 깨어나는 개구리처럼, 나도 무언가로부터 깨어나기를.


갓 잠에서 깨어난 개구리는 무슨 생각을 할까. 배가 고플까. 더 자고 싶다는 생각을 할까. 개운할까. 아니면 외로울까.


근래 글을 쓰지 않았다. 매일 쓰던 일기도, 가끔 끄적이던 메모장도, 하루를 정리하던 SNS도. 써나가지 않으니 글이 쌓인다. 봄의 기운처럼 어깨에 쌓여 몸과 마음이 찌뿌둥하다.


낮잠을 자고 일어났다. 개구리처럼. 작동하는 게 신기한 낡은 노트북의 키보드 위 손가락이 폴짝폴짝 움직인다. 개구리처럼.


작은 글들이 누군가의 마음속에서 폴짝폴짝 뛰어다니면 좋겠다. 이왕이면 기분 좋게. 우연히 발견한 개구리처럼.


[다음 이야기]

- 춘분: 낮이 길어지기 시작 (2023. 3. 21.)

- 낮은 길어지되, 글은 오늘처럼 주저리주저리 길어지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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