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 편-절기] 춘분한 하루

- 당신의 춘분은 충분하셨나요?

by 무혜한 하루

3월 21일. 춘분이 왔습니다.


절기상 '춘분'은 24 절기 중 네 번째 절기입니다. 태양이 남에서 북으로 향하며 적도를 통과하는 지점인 오늘은 태양이 적도의 바로 위에 있어 양과 음이, 낮과 밤이, 더위와 추위가 딱 반반이 되는 날입니다. 그러니까 춘분의 '분'은 나눌 분(分)으로 그 한자에 걸맞게 딱 '반반'을 뜻합니다.


봄이 왔습니다. 구태여 말하지 않아도 여기저기서 들려오듯 곳곳에 봄이 완연합니다. 나무는 어느새 잎을 보일 준비를 합니다. 나뭇가지는 그 마디마디마다 잎의 자리를 견고히 만들고 있습니다. 그 잎자리에서는 연둣빛 잎이 드문드문 자라고, 조금 더 지나면 여린 꽃도 피워내겠지요.


요즘의 봄은 요즘 사람들을 닮았습니다. 바삐 서두르는 모양새와 잔뜩 기운을 내다가도 어느새 제풀에 지쳐 보이는 게 꼭 닮아 있습니다. 그래서 숨 가쁜 봄의 시간은 봄이 당도한 날과 봄이 지나간 날들 그 사이에 ‘반’씩 걸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봄이 남긴 자욱에 꽤 오래 머무르며 봄을 기다리나 봅니다.


많은 이들은 하얀 벚꽃의 흩날림으로 봄을 기억하지만, 저에게 봄은 그보다 앞선 산수유꽃으로 기억됩니다. 노오란 산수유꽃이 조그만 꽃망울을 여기저기 피워낼 때 꼭 ‘어린아이’ 같습니다. 벚꽃처럼 하나의 꽃송이를 피우지 않고, 알갱이 같은 꽃들을 무리 지어 피워 내는 그 꽃의 어설픔이 어쩐지 '시작'과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어린이와 시작하는 이는 서투르지만 사랑스럽습니다. 노오란 산수유처럼요.


그렇게 산수유꽃은 여기저기 종알종알 봄의 시작을 알립니다. 시작이 '반'이라 하였으니, 올해의 봄도 절반쯤 다가왔으며 흘러가고 있습니다. 춘분의 '반반'에 어울리만치요.


춘분에는 돗자리를 들고 집 근처 공원으로 향했습니다. 제 몸 하나 겨우 누일 몇 안 되는 공간에서 저는 꽤나 행복하다고 느꼈습니다. 눈을 뜨고 감고. 숨을 들이켜고 내쉬고. 몸을 접었다 펼치고. 맘을 읽고 쓰고.


저는 그 자리에서 꼼지락거리며 살아 있었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니 모든 게 살아 있더군요. 봄바람의 한 자락이 얼굴을 스치듯 지나갑니다. 바람과 함께, 풀 한 포기와 낙엽 몇 개가 살포시 돗자리에 눌러앉습니다. 비로소 절반짜리 행복이 아닌 충분한 춘분입니다.


[다음 이야기]

- 청명: 하늘이 차츰 맑아지는 시기로, 봄 농사를 준비함 (2023. 4. 5.)

- 본격적으로 씨앗을 뿌리는 때가 옵니다. 저도 제대로 심을 무언가를 준비해야겠습니다.


[자투리]

사실 춘분은 빛의 굴절 현상 때문에 낮의 길이가 밤보다 조금 더 길다고 합니다. 누군가의 밤도 너무 길지만은 않기를 바랍니다. 꼭 알맞은 크기의, 절반치의 밤이기를요.


사진 <산수유, 예쁘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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