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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같은 암스테르담

by 파묵칼레

암스테르담은 ‘암스텔강의 댐’이라는 뜻이다. 암스텔강을 막아 바다를 메우고 세운 계획도시로, 네덜란드의 최대 도시이자 경제·산업·문화·교통의 중심지다.

다섯 개의 커다란 운하로 둘러싸인 구시가지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1983년, 네덜란드는 다민족 사회를 공식적으로 허용하면서 지금은 180개 국적의 사람들이 어울려 사는 나라가 되었다.


끊임없이 범람하는 물과 사투하며 풍차로 척박한 자연을 극복한 네덜란드이다.


염분으로 생명이 움틀 수 없었던 낮은 땅, 죽음의 땅이라 불리던 곳에서 사람들은 불가능 위에 기적을 세웠다.


신이 버린 땅 위에 인간의 의지로 꽃을 피운 곳, 그 땅의 수도 암스테르담의 문화를 만난다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린다.


네덜란드의 상징물이자 관문인 암스테르담 센트럴역이 눈부시게 다가온다. 이토록 기품 있고 아름다운 역은 처음이다.


네덜란드 전통의 붉은 벽돌로 지어진 르네상스 양식의 건물은, 도시의 역사와 품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역에서 담 광장(Dam Square)으로 이어지는 담락 거리(Damrak Street)를 걸었다.


거리 양편에는 각종 편의시설과 쇼핑몰, 백화점, 유명 브랜드 로드숍들이 늘어서 있다. 활기찬 인파와 다채로운 상점들, 흥겨운 음악 소리가 뒤섞인 풍경은 마치 서울의 명동거리 같다.


가는 길에 꼭 들러야 할 집이 있다. 바로 유명한 감자튀김 가게 ‘만네켄피스’이다. 역시나 웨이팅 줄이 길게 늘어서 있다. 감자튀김의 크기와 소스 종류만 해도 무려 24가지나 되어서 미리 무엇을 고를지 정해 두는 것이 좋다.


테이크아웃 전문점이지만 직원들의 분업화가 잘되어 긴 줄에 비해 기다림은 짧다.


야외 테이블에 앉아 오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며 감자튀김을 먹었다. 스몰사이즈임에도 양이 푸짐하다.


바삭바삭한 겉과 포슬포슬한 속이 조화를 이루며, 고소한 감자 향이 입안을 가득 채운다.


네덜란드식 스트룹와플(Stroopwafel) 세 개를 샀다. 구운 와플 사이에 캐러멜 시럽을 얇게 발라 붙인 전통 과자이다. 쫀득쫀득하면서도 달콤한 맛이 아메리카노와 절묘하게 어울린다. 따뜻한 커피잔 위에 와플을 덮어 시럽이 녹아내릴 때의 향긋한 맛은 일품이다. 이렇게 맛집을 찾아 즐길 수 있는 것도 다 여행의 베스트 파트너 딸아이 덕분이다.


북적이는 여행객들 틈을 헤치며 걷다 보니, 어느새 암스테르담의 심장이라 불리는 담 광장(Dam Square)에 도착했다. 광장 한가운데 서자, 네덜란드 황금시대의 영광을 상징하는 왕궁이 위풍당당하게 시선을 사로잡는다. 행사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일반에게 늘 개방되어 있다.


왕궁 옆으로는 고딕양식의 신교회와 마담투소 박물관 등 오래된 건축물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다. 마치 한 폭의 갤러리 속을 걷는 듯하다.


특히 마담투소는 세계 각지에 지점을 둔 세계 최대 규모의 밀랍인형 박물관이다. 역사적 인물들을 사실적으로 재현해 전시하고 있다.


광장은 여행객과 거리의 예술가들로 활기가 넘친다. 음악과 웃음소리로 가득한 그 사이를 비둘기들이 유유히 오가며 사람들을 맞이한다.


왕궁 맞은편에는 흰색 오벨리스크가 우뚝 솟아 있다. 1956년에 세워진 이 위령탑은 제2차 세계대전 전몰자와 레지스탕스 운동을 기념하는 상징물이다.


암스테르담은 마약과 매춘이 합법화된 도시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유명한 집창촌 ‘드 발렌’ 홍등가는 도심에 자리하며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로 알려졌다. 단순한 유흥가를 넘어, 도시 문화의 한 단면으로 자리잡았다는 사실이 새삼 인상적이었다.


호기심 반, 어색함 반으로 거리를 걸었다. 다행히 관광객이 많아 불안감이 조금 누그러졌다.


거리를 따라 유흥업소가 즐비하고, 커튼이 쳐진 창문들이 이곳이 성매매 거리임을 드러낸다. 쾌락의 이면에 어둠이 공존하는 곳, 묘하게 우울한 기운이 감돌았다.


사진을 찍는 부주의한 행동은 삼가야 한다. 이곳에서는 그것이 예의다.


거리에는 풀잎이 타는 듯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대마초 냄새였다. 순간 머리가 띵해졌다.


‘Coffee shop’이라는 간판은 단순한 카페가 아니다. 대마초와 관련 물건을 판매하는 곳이다. 커피 한 잔이 마시고 싶다면 ‘Cafe’를 찾아야 한다.


개방적인 성문화, 이색적인 풍경을 뒤로하고 조금 더 걷자, 운하가 나타났다. 잔잔한 물결을 바라보니 복잡한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


네덜란드는 자동차길, 보행자길, 자전거길이 명확히 구분되어 있다.


암스테르담에서는 자전거가 사람보다 많다.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삶의 방식이자 문화 그 자체다.


도심 곳곳을 촘촘히 잇는 자전거 도로망을 보고 놀랐다. 이곳에서 도로의 우선순위는 자동차가 아니라 자전거였다. 이용자들에게 최대한의 편의를 제공하기 위한 인프라가 완벽하게 잘 갖추어져 있다.


암스테르담에 발을 디디자, 거리를 가득 메운 자전거 행렬이 눈앞에 펼쳐졌다. 바람을 가르며 질주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절로 탄성이 나왔다.

“이것이 사람 사는 모습이구나.”

진정한 삶의 활력을 느꼈다. 힘찬 페달 소리와 함께 도시 전체가 살아 움직이는 듯했다.


네덜란드 아이들은 걷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자전거 타는 법을 배운다고 한다. 대대로 이어지는 자전거 문화는 이 나라의 일상이자 자부심이다. 아동·청소년 행복지수 1위라는 사실에 그들의 자전거 문화가 단단히 한몫하고 있다.


자유롭게 달리는 자전거들 속에서, 문득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되었다.


암스테르담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운하 크루즈다. 약 한 시간 동안 도심을 가로지르며 항해하는 여정은, 도시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수면 위를 미끄러지듯 나아가면 그림 같은 풍치가 연이어 펼쳐진다.


암스테르담은 다섯 개의 큰 운하가 도심을 감싸고, 그 사이로 작은 운하들이 거미줄처럼 뻗어있다. 영어 설명이 끝나면 한국어, 불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순으로 오디오 가이드가 이어진다. 자세한 해설을 들으며 풍경을 바라보니, 도시의 역사와 미감이 한층 깊게 다가온다.


운하를 따라 늘어선 건축물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고, 독특한 풍광에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터져 나온다. 마치 그림책 속에 들어온 듯, 아름다운 감상에 저절로 빠져든다.


17세기 네덜란드 황금시대, 부유해진 시민들에게 정부는 세금을 부과했다. 그 기준이 다소 독특했다 — 집의 너비, 현관 계단의 수, 창문에 드리워진 레이스 커튼의 길이였다.


세금을 줄이기 위해 사람들은 집을 폭이 좁고 길쭉하게 지었다. 그래서 지금도 운하 옆에는 서로 기대어 서 있는, 폭이 좁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다. 약한 지반 위에서 서로를 지탱하며 세월을 견뎌온 그 모습이 인상 깊다.


영화 <007 다이아몬드는 영원히>에 등장해 유명해진 마헤레 다리도 직접 보았다. 배가 지나갈 때 다리 중앙이 들어 올려지는 개폐교인데, 아직도 기계가 아닌 사람의 힘으로 작동한다고 한다. 크루즈가 절정에 이르자, 황홀한 전경을 놓칠세라 온통 사진 찍기에 정신없었다.


운하 위에서 바라본 암스테르담은 또 다른 매력을 선사한다.


풍부한 역사를 지닌 건축물들, 운치 있는 다리들, 수면 위에 떠 있는 하우스보트들, 그리고 도시를 감싸는 운하의 조화로운 풍경에 경탄을 금할 길이 없다.


뮤지엄이 많고, 자전거가 도심을 수놓는 이 도시. 열정과 낭만이 용광로처럼 녹아 있는 암스테르담은 여행자들에게 잊지 못할 인상을 남긴다.


다음 여정, 반 고흐 미술관이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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